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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바리새인의 시험(1, 2절)
1. 1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하십니다.
a. “거기서”는 가버나움을 의미하고,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은 갈릴리 호수에서 남쪽으로 사해까지 이르는 요단강 동쪽지역으로 당시에는 베레아(Perea)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이곳을 통과하신 예수님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올라가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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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모여든 무리들에게 전례대로(according to His custom, NASB) 즉, 습관을 쫓아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마지막 길이기에 말씀을 가르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신 것입니다.
2. 2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하십니다.
a. 예수님이 요단강 동쪽 지역을 지나신다는 소식을 듣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이혼 문제를 가지고 시험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한 것이 이번이 네 번째인데, 마가복음 7장 1-5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었다(7:5) 하며 시비를 걸었고, 8장 11절에서는 “하늘로서 온 표적”을 요구하며 시험하였고, 9장 14절에서는 예수님이 변화 산에 올라가 계신 동안 산 밑에 남아 있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하자 이를 힐난하며 시험하였는데, 이번에 또다시 이혼 문제를 가지고 시험한 것입니다.
b. 갈릴리 바다 동쪽인 데가볼리 지역과 그 밑으로 이어지는 요단강 동쪽인 베레아 지역은 분봉왕 헤롯 안디바(Antipas)가 다스리는 땅입니다. 이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아내와 이혼하고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재혼을 했는데, 세례요한이 이를 비판하자 옥에 가두고 목을 잘라 죽인 인물이기도 합니다(6:14-29). 예수님이 이런 헤롯 안디바(Antipas)가 다스리는 지역을 지나실 때, 바리새인들이 의도적으로 찾아와 이혼에 관해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처럼 헤롯에게 미움을 사서 죽임당하길 기대하며 이혼에 관해 물으며 시험했다는 겁니다.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시험하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든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바리새인 서기관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역자가 믿음과 말씀으로 바로 서지 못하면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 마귀의 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즘 ‘디지털 영지주의’라고 해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튜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 이데올로기를 가르쳐 자신의 추종자로 만드는 목사들이 있는데, 이들을 보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은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을 전파하며 순진한 성도들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이들이 바로 현대판 바리새인들이요 사탄의 종이라는 겁니다.
II. 이혼과 결혼에 관한 성경의 교훈들(3-9절)
1. 3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이혼에 관해 묻자, 예수님이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모세 오경은 바리새파뿐 아니라 사두개파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너희가 믿는 모세오경에는 이혼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 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모세 오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혼과 결혼에 관해 설명해주셨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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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절, “가로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하십니다.
a. 이 말씀은 신명기 24장 1절의 말씀에서 근거한 것인데, 여기서 모세는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하셨습니다.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수치되는 일(uncleanness)을 행했을 때”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수치되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율법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의 다른 해석이 있었습니다.
먼저 율법을 엄격히 해석했던 유대교 ‘삼마이(Shammai)’ 학파에서는 “수치되는 일(uncleanness)”을 간음으로 해석하고,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음을 행하였을 땐 이혼할 수 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유대교 학파인 ‘힐렐(Hillel)’ 학파에서는 “수치되는 일(uncleanness)”의 의미를 확대해서 만일 아내에게서 남편이 좋아하지 않는 어떤 일이라도 발견되면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릴 수 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힐렐(Hillel)’ 학파에서는 아내가 간음을 행했을 때뿐 아니라, 남편의 음식을 태우거나 시어머니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수치되는 일(uncleanness)”이라고 해석하며 이혼 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야말로 남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인데, 예수님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 이런 ‘힐렐(Hillel)’ 학파의 해석을 쫓아 함부로 이혼을 했다는 겁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동생 빌립의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이혼한 헤롯 안디바인 것입니다.
b. 본래 신명기 24장 1절에서 남편이 아내와 이혼할 때 이혼증서를 써 주라 한 것은, 그 당시 사회적인 약자였던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구약 시대 당시에는 남편이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아내를 버려도 공식적인 이혼증서가 없으면 여자가 재혼을 할 수도 없었기에, 이렇게 버림받은 아내가 재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이혼증서를 써주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악용하여 모세가 마치 이혼증서만 써주면 남편이 언제든지 아내를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어지는 말씀들을 통해 이혼과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3. 5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하십니다.
이혼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인간의 죄 됨과 악함으로 인해 이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기에 모세가 이를 허락한(Moses permitted, NASB)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명령과 허락은 다른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죄 됨과 연약함으로 인해 혹은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는 것인데, 이혼도 그런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일 아내가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혹은 성적으로 문란한 배우자를 만나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하나님도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이혼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선 뒤에서 조금 더 살펴봅니다.
4. 6절,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하십니다.
a.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이혼’에 관해 물었지만,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이 질문을 받고 ‘결혼’에 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결혼이 무엇인지 알아야 이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첫 번째 제도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이루는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신부로(호세아서) 묘사하고 있고, 신약에 와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마 25장, 열처녀의 비유)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죄된 인생들도 신랑되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b.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6)라는 말씀은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제 3의 성은 없다는 겁니다. 간혹 간성이라고 해서 두 개의 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다운증후군과 같은 유전적 장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성(間性)의 경우엔 염색체 검사를 통해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확인이 되면 수술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동성애자들은 간성의 경우뿐 아니라, 사람의 성이 수십까지나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두 가지 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양성애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타고난 성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성이 진짜 성이라는 주장을 하기에 매번 성을 분류하는 항목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내면을 살피면 동성애자들이 변태적인 성욕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렇듯 복잡하게 성을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6)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계십니다. 제 3의 성은 없다는 겁니다.
5. 7, 8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하십니다.
a.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몸이 될찌니라”(7,8상)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여기서 먼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면 “부모를 떠나라”하십니다. 결혼한 부부는 부부의 관계가 부모와의 관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교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는 부부의 관계보다 부모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경적으로 보면 부부의 관계가 부모와의 관계보다 우선인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되지만 부모와 부부의 관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부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겁니다.
b.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8)하십니다. 하와를 지으실 때 다른 동물들을 창조하실 때처럼 말씀으로 창조하거나, 아담을 창조하실 때처럼 흙으로 만드시지 않으시고, 아담의 갈비대를 취하여 만드셨다 하셨습니다(창 2:21). 부부 된 사람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아담의 머리뼈나 다리뼈를 취하여 하와를 창조하지 않으시고 갈비뼈를 취하여 창조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된 하와의 모습을 처음 보고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 2:23)이라고 고백하였는데, 여하튼 이 고백이 마지막까지 변치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6. 9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더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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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결혼에 대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지만,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으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에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이혼율이 50%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이혼하는 가정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요즘과 같은 때에 온전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부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혼에 관한 말씀으로 알려진 전도서 4장 11, 12절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하셨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부부의 관계를 왜 이겹 줄이 아니라 삼겹줄로 묘사한 것인지 궁금해지는데, 사실 부부라는 이겹 줄만 가지고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두 부부 사이에 하나님이 세 번째 줄이 되어 주셔서 삼겹줄이 될 때, 다시 말해 부부가 믿음으로 하나 될 때, 비로소 부부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 될 수 있다는 겁니다.
III. 제자들의 질문(10-12절)
1. 10절,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묻자온대”하십니다.
바리새인과의 논쟁이 끝난 뒤, 집으로 들어와 예수님과 홀로 되었을 때 제자들이 다시 이 일에 대해서 물었다 하십니다. 젊은 제자들에게도 결혼과 이혼의 문제가 큰 관심사였다는 겁니다. 이에 예수님이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결혼에 관해 조금 더 구체적인 말씀을 주시는데 그 내용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살펴봅니다.
2. 11, 12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하십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를 가는 것은 간음을 행하는 것이고, 또 아내된 자도 정당한 이유없이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라 하십니다.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와 그의 아내 헤로디아가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는데, 헤롯 안디바(Antipas)는 지금의 페트라로 알려진 지역을 수도로 삼고 있던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 파샬리스와 결혼을 한 상태였지만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혼을 했고, 헤로디아도 헤롯과 결혼하기 위해 헤롯왕의 이복동생인 빌립과 이혼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쌍으로 콩가루 집안이라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이런 행위를 간음이라 하시며 책망하신 것입니다.
IV. 마태복음 19장 9-12절
마태복음 19장 9절부터 12절에는 예수님이 본문의 말씀에 이어서 제자들에게 이혼과 결혼에 대해 주신 또 다른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들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봅니다.
1. 마 19:9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하십니다.
a. 헤롯 왕같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가는 것은 간음이지만, 배우자에게 음행의 죄가 있다면 이혼할 수 있다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음행’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포르네이아’인데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나뉘어집니다. 그런 해석들 중에 하나가 ‘포르네이아’를 ‘간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결혼의 서약을 어기고 다른 사람과 간음을 행한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인데, 문제는 그런 뜻이라면 예수님이 왜 ‘간음’을 의미하는 ‘모이케이아’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시고, 왜 ‘음행’이라는 의미를 가진 ‘포르네이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사실 ‘음행’으로 번역된 ‘포르네이아’는 ‘쾌락을 쫓아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porn이라는 영어 단어가 파생된 것인데, ‘포르네이아’는 간음을 포함해서 성적인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행하는 동성애, 소아성애, 수간 등이 포함된 음란한 행위들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이런 음행에 매여 신성해야 할 부부관계를 더럽히는 배우자라면 그와 이혼을 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도 간음이 되지 않는다 하신 것입니다.
b.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배우자의 음행이 예수님이 허락하신 이혼의 조건이긴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겁니다. 음행의 죄를 저지른 배우자와 반드시 이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호세아 선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 호세아 선지자에게 몸을 파는 창기를 사서 아내로 삼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받은 호세아가 고멜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문제는 이 고멜이 창기 시절 즐기던 음행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로암미(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아들을 낳고(호 1:20), 이후로 집을 나가 사창굴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고멜을 다시 사 와서 사랑하라고 호세아에게 명하셨다는 겁니다(호 3:1-2). 여기서 고멜은 신랑되신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들과 영적인 간음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교훈하셨다는 겁니다. 영적인 간음을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도 회개하면 받아주신 것처럼, 비록 음행을 행한 배우자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주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라는 겁니다.
2. 마태복음 19장 10절,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찐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하십니다.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막 10:11,12)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찐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라고 반문했다는 겁니다. 이렇듯 결혼의 조건이 까다롭다면 차라리 장가들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냐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에 대해 남성 우월적이고 또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따르고는 있지만, 저들의 가치관이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3. 1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찌니라.”하십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찌니라.”(11)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가 본래 한 몸이었기에 독신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타고난 자들만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독신도 은사라는 말씀인데, 은사도 받지 못한 사람에게 독신을 강요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 사제들에게 억지로 독신을 강요하기에 이들 가운데 소아성애자들이 생겨나는 것이고, 수녀와 성관계를 맺고 사생아를 낳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4. 12절,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찌어다”(12) 하십니다.
날때부터 고자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환관들처럼 사람이 만든 고자들도 있고, 사도 바울처럼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는 것인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것은 “타고난 자” 즉, 은사를 받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 7:9)하십니다. 사도 바울처럼 독신의 은사를 받지 않았다면 베드로처럼 결혼을 해서 사역을 감당하면 된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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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는 빈손으로 왔기에 세상에서 얻는 것은 모두 "덤"이다.
욕심 내지 말고 마음 비우는 오늘 이시길 바라며 늘 ~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