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고 서다/조혜경
마당에 차를 세웠다. 햇살을 뒤집어쓴 네모난 돌 하나가 나를 맞았다. 돌 위에 걸터앉았다. 이른 봄이었다.
노란 꽃망울 부풀린 생강나무 한 그루가 오랜 무심을 항의하며 마당 한 귀퉁이에서 밖을 내다보고 서 있다. 옷 벗은 가지가 방문객에 놀란 듯 마른 팔을 흔들었다. 지붕 끝의 와당 조각이 눈웃음을 흘리고, 기와 틈새에는 와송 무리가 고개를 들었다. 햇볕 따스한 기와들 틈에서 풀들이 여기저기 가늘디가는 허리를 내밀었다. 지붕을 받친 기둥과 대들보도 허망한 마음을 드러낸 채 해바라기 하고 있었다. 한 가닥 바람이 낙엽 두어 개를 싣고 대청마루 구석구석을 굴러다녔다.
할아버지는 식솔들을 줄였다. 말을 타고 행차하던 선친의 위세와 추락하는 아들의 사업 소식이 할아버지의 등을 눌렀을 것이었다. 손가락 마디 굳힌 농사일로 기운 가문을 잇고, 자식들을 후원해야 하는 무게로 허리도 점점 굽었다. 몇십 년 세월을 그리 보낸 조부모님은 나란히 하늘로 소풍을 떠났다.
평생 의지했던 것처럼 일주일을 사이에 떠나자, 아버지는 부모님의 온기가 식지 않은 고향 집을 부지런히 오갔다. 아버지와 동행했을 때, 나는 마당 앞에 놓인 사각 돌에 관해 물었다. 아버지는 궁금해하는 나를 노둣돌에 안아 올렸다. 내릴 때는 팔짝 뛰어내리도록 손을 잡아 주었다. 노둣돌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내릴 때 오르내리기 쉽게 받쳐주던 돌이라며, 아버지는 집 앞에 그 돌이 있음을 뿌듯하게 여겼다.
사랑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댓돌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맨발 아래 찬 기운으로 우둘투둘한 돌 주인의 사연이 가슴을 헤집었다. 흰 고무신 한 켤레가 댓돌 옆에 앉아 늙은 집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바람이 쓸었는지 마루가 정갈했다. 방문까지 길게 뻗친 볕살로 앙상한 줄무늬 마루도 온기가 느껴졌다. 그쯤 초췌한 한 노인이 흑백의 풍경 속에서 걸어 나왔다.
아버지의 삶은 스러진 할아버지의 누마루였다. 그는 도시의 밤낮을 껴안으며 쉴 틈 없이 굴렀다. 중년의 가장은 갖은 사업의 실패로 인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다. 늙은 부모에 대한 죄책감과 한창인 아이들의 뒷바라지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줄달음쳐도 모자랄 지경이었건만 현실은 수렁이었다. 병마까지 온몸을 할퀴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로 짙어졌다.
아버지는 시골로 내려갔다. 고택의 방 두어 칸을 건졌다. 아궁이의 황토를 다시 발랐다. 그는 도시의 작은 집 한 채마저 병원비로 날릴 수 없다고 마음먹은 듯했다.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엄마는 집을 팔아 고3 동생의 학교 옆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3차 행정고시 시험을 남겨두고 있었다. 6개월 후면 열매가 달릴 것을 믿었다.
학창 시절, 나는 가끔 아버지의 고향 집에서 방학을 보냈다. 점차 공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집과 멀어졌다. 노둣돌에 혼자 오르내릴 수 있었을 때, 아버지의 눈가에 어린 절망을 보았다. 아버지는 번져가는 암세포에 힘이 부치자, 고통 속에서도 시골집을 더 살뜰하게 가꾸지 못함에 쉽사리 눈을 감지 못했다. 지켜드리지 못한 부모님인 양 죄스러워했다.
아버지의 고향마을은 오랫동안 허름한 집 몇 채로 버텨온 마을이었다. 옛 명성은 동구 밖 느티나무에 걸어 놓고, 텅 빈 논과 잡초 무성한 밭 가의 햇살만 쌔근거렸다. 첨단 디지털 단지가 들어설 거라는 우편물을 받았다. 몇 달 동안, 도시화의 갈망과 옛것을 지켜야 한다는 얽힌 목소리가 견주다가 사라졌다. 참신한 젊은이들이 고된 노동을 앞질렀다. 방안으로 들어섰다. 헌 가구와 고장 난 물건이 고요에 잠겨있다. 긴긴밤 혼자 외로움을 지키던 tv가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이자 상념의 방해꾼이었으리라.
나의 젊은 시절, 삶에 대한 열정의 바람이 불었다. 성공과 승진의 기대에 불붙기도 했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땐 대인기피증에도 시달렸다. 공중 부양하듯 대박이 났다가 기를 써도 미끄러지고 구덩이에 빠졌다. 방해꾼 돌부리가 고난을 받쳐주기도 했다. 배신의 기억을 지우느라 눈가 주름도 하나둘 늘어갔다. 손발의 검버섯도 여러 개의 추상화를 그렸다.
번잡하던 나의 발걸음도 노둣돌 앞에 서면 숙연해졌다. 아버지는 내가 이곳을 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산다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밟고 내리라며 아버지는 앙상한 등을 내어주었다. 종일 험한 길 걷느라 부르튼 발이 딛고 설 수 있도록, 나를 받쳐주었다.
산천이 영원하지 않듯이, 한낱 인간의 삶이란 퇴화와 노쇠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험난한 세상 견딜 수 있는 것은 제 몸 헌신하며 기다려준 노둣돌 같은 아버지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노둣돌은 자신을 딛고 오르내리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나는 그들의 뜻에 의지한 채, 다시 일어날 기운을 차렸다.
숨을 고른 뒤,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의 따스한 손길과 다독이던 목소리가 맴돈다. 나의 아버지가 내 마음 기댈 곳이었듯이 나는 누군가의 노둣돌이었나 되물어본다. 힘겨운 여정에 나에게 기댈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 삶을 가뿐하게 할 디딤돌이 될 준비를 해야겠다.
저만치서 기척이 난다. 고달픈 삶에 상념의 여유 한 점을 찍고 싶은 이가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른 봄 인사를 마친 꽃잎 하나가 노둣돌에 날아든다. 처진 몸 잠시라도 뉘 수 있도록 가만히 어깨를 눌러준다. 어수선한 내 마음에도 노둣돌 하나 들여놓는다. 계절 틈새를 노리던 햇볕이 허공 속 물기를 말아 올리기 시작했다.
첫댓글 아버지의 추억을 따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독자님의 노년도 결국은 인생의 한궤도겠지요.
간만에 우리 회장님, 좋은 글들많이 올리셨네요. 감사합니다.
궤도를 따라 도는 우리의 삶은 누구나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지요. 건강한 나날 기도합니다.
예전의 가세를 말하는 노둣돌 옆에 말 대신 지동차를 세우면 집안 이야길 들려준다. 부모는 노둣돌, 디딤돌. 주춧돌 역할을 해야...
부모의 무거운 어깨를 느끼고, 나 또한 그러한 부모로서의 길을 되돌이켜 봅니다. 내가 잘 해 왔는지, 잘 하고 있는지... 숙제인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