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1. 주제의 배경
동양인인 우리들은 동양에 대해, 즉 스스로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을까? 동양과 대비되는 서양과의 관련 속에서 '동양적'이라는 말이 우리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인상들은 주로 "비합리적, 비이성적, 비과학적, 정체적, 신비적, 감성적"이라는 수식어들과 관련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소나무 1998)의 저자 우실하씨에 의하면, 동양과 서양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1) '우월한 서양'과 '열등한 동양'이라는 서양 중심주의를 담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고, (2) '물질적 서양'과 '정신적 동양'이라는 개항기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 입각한 사유방식이 지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종의 역할 분담론의 성격을 띠고 있는 동도서기론보다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는 이미지가 더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오리엔탈리즘은 바로 동양인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을 형성하는 것이고, 따라서 동양인들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양인들이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바탕이 되고 있는 바로 이 오리엔탈리즘이란 것이 동양인들이, 스스로가 아니라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원래 서양에서 '동양학' 내지 '동양주의'를 뜻하는 학문 분야를 지칭한다. 그런데 에드워드 W. 사이드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1978)에서 오리엔탈리즘이 단지 순수한 학문분야가 아니라 현실을 지탱해가고 유지시키는 권력의 담론이란 점을 치밀하게 논증한다. 이러한 사이드의 선구적인 작업은 동양학자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반향은 제3세계 지식인들이 서구 제국주의와 전선을 형성하는 '탈 식민주의'를 형성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2. 주요 논점의 정리
1) 지리적 의미에서의 '오리엔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오리엔트'는 인도 인더스 강 유역에서 서쪽으로 지중해 연안까지 펼쳐져 있는 지역을 뜻한다. "이 지역을 규정하는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지만,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이집트․아라비아․아나톨리아․시리아․팔레스타인․이란 등지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오리엔트라는 이름은 라틴어의 오리엔스(oriens : '오르는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어, 원래 '해 뜨는 곳', '동방'이라는 방위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제국 내의 동부지방은 물론 제국 외부, 즉 동쪽에 있는 다른 국가들을 지칭하는 데도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이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서유럽이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옥시덴트(Occident : 라틴어로 '해 지는 곳', '서방'이라는 뜻의 occidens에서 유래)라 부르게 되면서, 이와 대조되는 이질적인 문화를 가지 동방세계라는 뜻이 부가되어,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세계로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근래 들어 유럽인의 지리적 지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그 범위는 더욱더 넓어져 넓은 의미로 쓰일 때는 인도와 중국․한국․일본까지를 포함하는 근동․중동․극동의 총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 오리엔탈리즘이란?
그런데 문제가 되는 오리엔탈리즘은 단지 지역적인 의미보다는 '하나의 사고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사이드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오리엔탈리즘이란 "(세계를 동양과 서양이라고 하는 불균등한 두 가지로 구성하는)지리적인 기본 구분일 뿐만 아니라, 일련의 '관심' 곧 학문적 발견, 문헌학적 재구성, 심리적인 분석, 풍경이나 사회의 서술을 매개로 하여 만들어지거나 또 유지되고 있는 '관심'을 '주도면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오리엔트/옥시덴트의 구분은 자연적이라기보다는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며, 따라서 서양인들의 일정한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다.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세계를 이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배하고, 조종하고, 통합하고자 하는 일정한 '의지'나 '목적의식' 그 자체"이다. 즉 오리엔탈리즘은 하나의 언설(discourse, 혹은 담론)이다. 이러한 언설은 학문적이고 무관심한 객관적 언어의 모양을 할 수도 있고, 각종 사교모임의 수다의 형태로, 혹은 국회에서의 토론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언설은 기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라기보다는 편견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편견은 바로 "구별하고, 차이짓는", 즉 "차별"하는 이해관심과 연관이 있다. 즉 "다종다양한 권력과의 불균형적인 교환과정 속에서 생산되고 또한 그 과정 속에 존재한다."
3) 오리엔탈리즘의 변천
오리엔탈리즘이란 바로 서양인들이 비서양인들에 대해 갖는 심리적․문화적 표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비서양인들을 언급할 때면 언제나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일종의 상투어(cliche)를 형성한다. 이러한 상투어 내지 편견은 "후진적, 퇴행적, 비문명적, 정체적 등의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리는 다른 민족과 함께 ...비참한 이방인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서양 사회 속의 여러 요소(범죄인, 광인, 여자, 빈민)와 결부되었"으며, "대상을 동양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명백한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의해서 "동양화"되었고, 서양인들은 비서양인들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갔다.
그런데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변화는 18세기 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분수령으로 일어났고, 그때의 변화가 사이드가 "근대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 것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참으로 "과학적으로" 횡령한 사례이고, 이 시기를 전후로 오늘날의 동서양 관계를 규정하는 과정이 급격하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 오리엔탈리즘이 행사한 문화적 헤게모니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한 반면,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그 헤게모니는 미국으로 옮겨졌다고 사이드는 보고 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논의 대상을 이슬람 문화권, 즉 현재의 중동지역으로 한정했지만, 이후 펴낸 <문화와 제국주의>(1993)에서는 논의 대상을 아프리카, 인도, 극동, 오스트레일리아, 카리브해 도서 국가, 아일랜드 등에까지 확장시킨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과 비서양이라는 구별과 배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오리엔탈리즘이란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을 지탱하는 권력의 서열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계층적으로 누적된다. 이러한 과정을 제국주의자였던 <정글 북>의 저자 키플링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즉 "노새, 말, 코끼리는 그것을 부리는 운전병에게 복종한다. 그리고 운전병은 상사에게, 상사는 중위에게 ....장군은 총독에게, 총독은 여왕에게 복종한다."
3. 탈식민주의론에서 옥시덴탈리즘까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비동양인들, 즉 서양인들이 자신의 타자를 어떻게 만들어 왔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왔는가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기점이 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동양학"이라는 명칭의 연구소들은 자신들의 명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는 등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사이드의 이러한 작업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파헤치는 "탈식민주의론"이라는 조류를 형성했다. 좁은 의미로 인도 출신의 스피박이나 바바의 작업을 칭하는 "탈식민주의론"은 아직 국내에서 그 소개나 연구가 미미한 상황이다. 사이드, 스피박, 바바의 탈식민주의론은 사이드가 그러했듯이 그 연구의 기조는 미셀 푸코를 비롯한 프랑스 사상가들의 소위 '고급이론'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이드, 스피박, 바바의 연구가 서구주류이론으로 편입된 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즉 그들의 이론은 "전복적 성격"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이경원 역. 한길사)의 저자 바트 무어-길버트(영국 런던대 교수)는 탈식민주의 "이론가"와 "비평가"를 구분하고,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를 탈식민주의 이론가로 분류한다. 이에 반해 20세기 초 유럽의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범(汎)아프리카주의를 역설한 미국의 흑인 사상가 W.E.B 뒤부아(1868~1963,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박사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큰 영향을 미침)를 비롯해 '흑인 정체성 회복운동(네그리튀드)' 을 일으킨 프랑스의 에메 세제르(88)와 세네갈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95), 알제리의 민족해방운동가인 프란츠 파농(1925~61), 문학을 통해 아프리카의 식민주의 유산의 청산에 앞장서온 치누아 아체베(71,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응구기 와 티옹고(63, 케냐의 소설가),월 소잉카(67, 나이지리아의 작가로 86년 노벨 문학상 수상) 등이 이런 '비평가' 들이다.
또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뒤집어 보는 시각이 등장한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중국문학을 가르치는 샤오메이 천은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저서에서 '동양에 의해 구성되고, 오해되고, 날조된 서양'이라는 시각을 제시했다. 이는 동양의 능동성을 복구하고,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관계를 상호 동등한 것으로 바라보기 위한 동양인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마오쩌뚱 이후 중국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친서양․반전통'의 구호를 사례로 든다. 이런 태도는 중국내 지배체제의 억압에 맞서 이데올로기적 해방을 이루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