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암살자 1·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차은정 옮김/민음사 2010년판
캐나다 그리고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에 관한 탐구여정의 시간
1
출발은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부터다. 미래 어떤 시점에 미국이라는 거대국가에서 정치적 상황이 돌변하면서 새로운 정치 형태의 사회집단이 들어서게 되는데, 일종의 신정(神政)정치 사회다. 모든 사회는 폐쇄되고 새로운 형태의-종교 방침에 의거한-철저한 계급 사회가 전개된다는 내용. 특수한 이념에 의거 조직화된 인간 사회와 집단에 대한 특이한 상상력의 소설로 흥미를 자아냈다. 그래서 일단 흥미로운 작가가 발견되면 그 작가의 전 작품을 읽어보라는 대학 시절 읽었던 수필집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약간의 설렘을 지닌 채 집 근처 시립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의 이름으로 국내에 출간된 작품은 의외로 많았다. 그 중 『돈을 다시 생각한다』, 『눈먼 암살자 1·2』, 『시녀 이야기』 후속작인 『증언들』을 빌렸다. 다른 소설 작품집도 많았지만 『시녀 이야기』의 연속선상에서 『증언들』을, 그의 첫 ‘부커상’ 수상작인(『증언들』도 그에게 두 번째 부커상을 안긴 작품) 『눈먼 암살자 1·2』를, 그리고 그녀의 상상력과 비판이 담긴 ‘돈’에 관한 예리한 성찰력이 돋보이는 강론집인 『돈을 다시 생각한다』를 빌리게 되었다.
물론 다 읽었다.
2
캐나다에서 여성으로 삶을 살아가기에 관한 이야기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여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전쟁 이전과 이후의 삶이 확연히 달라진 아버지의 손에서 공교육을 거부하고 가정교사라는 사교육에만 의존한 채 집안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자라는 자매는 집 안에서 오랜 시간 가정일을 돌봐주는 유모의 관심과 애정에만 의존하여 성장기를 보내게 된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고 자라는 자매는 유복했던 가세가 전쟁 이후 급격히 기울면서 자신의 집안 재산을 넘보던 파렴치한 경쟁자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게 되면서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어릴 적부터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던 동생은 언니의 갑작스럽고 불합리한 결혼에 저항하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이 모든 저간의 사정을 파악한 언니는 자신의 삶에서 조여오는 족쇄를 뚫고 인간적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저항한다.
『눈먼 암살자』는 이 작품 속의 또 다른 작품이다. 즉 액자소설의 형태를 띤 작품으로 작중 언니는 한 편의 소설-미래의 상상적인 나라, 달이 여러 개 뜨고, 고대와 미래의 시대를 아우르는 원시 종교적 측면도 등장하는-을 극 중에서 쓴 것이다. 그러나 그 소설은 남녀 간의 진실한 사랑을 다루며, 현대의 거대사회가 개별적 인간에게 여전히 폐해를 끼치는 조직적 폭력-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여성 희생 봉양, 왕국 간 치러지는 전쟁과 약탈 등-을 다루고 있다.
3
캐나다는 지리상으로 먼 북아메리카 지역에 있는 살기 좋고 아름다운 나라로 단순히 기억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와 달리 길고 긴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볼 때 서로 간에 이렇다 할 직접적인 관계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캐나다는 이 땅에서 벌어진 육이오 전쟁 중 참전한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처럼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국이어서 그렇기도 하겠다. 그래서 캐나다 하면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심이 있지 않는 한 잘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문학작품 속으로 들어가 바라본 캐나다 역시 인류가 만든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보편적인 문제로 우리와 비슷한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여 정착하면서 생긴 종교, 여러 문화의 혼합에 따른 갈등, 계급 의식, 인종 갈등, 남녀 차별, 정치 경제적 자유 등등.
4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는 다분히 여성의 인격적 삶에 관해 작품을 오랜 기간 써왔다. 일각에서는 이런 작가에게 현대 페미니즘 사상을 대변하고 부각시킨 대표적인 작가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은 후의 소감으로는 그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놀라운 식견은,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그의 따스한 시각은 그보다 훨씬 깊고 넓다. 또한 섬세하다.
『돈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보여주는 그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예술과 문학적 시공간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시각은 독자들의 기존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신선한 충격과 아울러 변화를 준다(과감하게 일독을 권한다).
이러한 그의 놀라운 지성적 식견과 통찰은 문학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보편성을 획득하며 한 번도 받기 힘든 영국의 세계적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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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눈먼 암살자』로 다시 돌아와 보자. 주인공 언니는 동생의 석연찮은 자살에 의문을 품으면서 그들 자매의 험난했던 삶의 여정을 후손인 손녀에게 기록물로 남겨야겠다는, 평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용기와 의지로 액자소설인 『눈먼 암살자』를 쓰면서 자신의 일대기를 일기 형식으로 남긴다. 그녀의 신산스러웠던 여성적 삶이 손녀에게 되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고스란히 담아. 그것은 곧 독자들에게 한 여성으로서 살기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대 사회를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캐나다란 근대에 건국한 나라의 실상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의 맥락에서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인접한 미국과의 국경을 맞두고 생활이 연결되며 서로 나누는 문화적 연결성과 오늘날 있게 된 캐나다란 나라의 정체성도 일부 들여다볼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지구상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 캐나다가 아닌 서로 간에 비슷한 환경을 껴안고 살아가는 이웃 같은 다정함도 느끼게 된다.
책 표지 바로 뒷면에 실린 그녀의 활짝 웃는 사진에서는 더 이상 거리감은 없게 되고 만나면 언제라도 따스한 미소로 반가이 맞이할 거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건 단순한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