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성지와 부래미마을 지나 생극면에 이르다(안성 죽주산성 입구 – 음성 생극 25km)
- 제9차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 – 도쿄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5
4월 4일(화), 약간 구름 끼어 걷기 좋은 날씨다. 아침 8시에 숙소 앞의 마당에 모여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8시 20분에 숙소를 출발하여 식당으로 향하였다. 가는 길목 죽주산성 입구에 있는 비립거리에서 옛 지방관들의 행적을 살피고 잠시 걸으니 매산리의 석불입상 유적지에 이른다. 매산리 석불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로 미륵당이라는 높은 누각 안에 모셔진 높이 5.6m의 미륵불상, 미륵당에는 향토유적 제20호로 지정된 5층 석탑도 함께 있다. 이를 둘러보고 바로 옆의 식당에서 아침식사, 메뉴는 삼계탕이다. 숙소 주변에 아침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간신히 예약한 것, 일본 참가자들이 아침부터 삼계탕이라며 좋아한다.
숙소 앞의 공터에서 스트레칭하는 모습
오전 9시 반에 식당을 나서 죽양대로 옆의 소로를 따라 한 시간여 걷는 동안 옆에서 걷는 엔요 교코 씨와 가미조 메이코 씨가 잔잔한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곡목은 나의 살던 고향과 만남, 이전에 일본 여성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다. 잠시 더 걸으니 천주교 죽산성지에 이른다. 죽산성지는 천주교 4대 박해 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때 많은 천주교인들이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 있는 죽산 관아에서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이곳에 끌려와 순교한 곳, 기록에 의하면 그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25명이라고 한다. 성지 정문에 세워진 시비(2007년 순교자 성월에 세운 비석)의 첫 구절, ‘죽산에 한 옛날에 천주학 신봉자들 산산이 찢겨지고 뼈골이 부서져도 은공의 주님 사랑 세세에 전하고자 수없는 고통 속에 목숨을 사루었다.’ 한국의 천주교 순교성지가 여러 곳에 있는 것을 설명한 후 그분들 위해 묵념을 제창하니 모두들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목숨 바쳐 지킨 신앙, 하늘의 복 누리소서.
죽산성지에서 나와 한적한 시골길을 한 시간여 걸으니 장암마을 지나 광천마을로 이어진다. 광천마을 버스정류장 앞 음식점의 쉼터가 조선통신사 걷기 일행이 매번 쉬어가던 곳, 잠시 화장실 휴게 후 10여 분 걸으니 안성시 일죽에서 음성군 생극으로 연결되는 38번 국도에 들어선다. 도로변의 벚꽃무리가 화려하고 사료공장, 입시학원, 육류가공공장 등 다양한 업종들이 즐비하다. 입시학원 지나노라니 여학생 여러 명이 손을 흔들며 행선지를 묻는다. 서울 – 도쿄 간 조선통신사 길 걷는 중이라고 설명해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열심히 공부하여 다음세대를 잘 가꾸라.
장암마을 가는 길의 일행 모습
12시 20분에 안성시 일죽면에서 이천시 율면 경계에 이른다. 휴업 중인 주유소 주변에서 간단 휴식, 잠시 걸으니 산양마을에 들어선다. 산양마을 지나면 작은 하천 석교천, 짧은 다리 건너니 ‘돌다리가 있던 마을, 석교촌’이라 적힌 영남길 이야기판이 눈에 띤다. 휴대폰에 담은 사연의 줄거리, ‘석교촌과 산양리 부락 사이를 흐르는 석원천 지류에 오래전부터 돌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 다리가 우리나라 중앙부와 안성, 용인을 거쳐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석교촌에는 안 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어느 날 석교촌에 사는 안 씨 남자가 젊은 아내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몇 달 후 안 씨 아내는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 몸집이 강대하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장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안 장사는 어머니가 밤중에 몰래 외출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연인즉 안 장사의 어머니가 개울건너 아랫마을 외간 남자와 눈이 맞은 것, 어느 추운 겨울날 안 장사는 조용히 어머니를 따라가 보았는데 어머니는 얼음장처럼 시린 개울을 맨발로 건너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한 안 장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산 위에서 큰 돌을 모아다가 다리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이후 이 다리를 안 장사 다리라 하였고 장사가 태어난 마을을 석교촌(石橋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누구나 나름의 삶을 가꾼다. 내 삶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석교촌 지나 부래미 마을, 2년 전 지날 때 도로와 교량공사가 한창이던데 말끔하게 정비된 마을환경이 수려하다. 새로 조성하였는지 전에는 살피지 못한 연못과 깨끗이 단장한 마을회관, 외관이 반듯한 체험관 등이 볼만하다. 내실을 기하면 더 좋으리라.
오밀조밀한 산길 벗어나 큰길(일생로, 일죽 - 생극 간 도로)에 들어서니 오후 2시가 지난다. 조선통신사 걷기 때마다 들른 단골음식점이 지척, 그곳에 들르니 영업시간 끝나고 우리 일행만 받는다. 점심메뉴는 갈비탕, 이틀 전의 갈비탕보다 양질이다.
15시부터 오후 걷기, 음식점에서 나와 잠시 걸으니 사흘 반 동안 걸은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북도에 들어선다. 오늘의 목적지는 음성군 생극면사무소, 한 시간 남짓 거리라 발걸음이 가볍다. 가는 길목의 ‘큰 바위 얼굴 테마파크’ 쉼터에서 잠시 휴식, 이어 곁에서 걷는 가미조 메이코 씨에게 지난 해 보스턴에 머물 때 인근의 뉴햄프셔에 있는 소설 ‘큰 바위 얼굴’의 현장 가까이서 단풍 구경하였던 일과 작가 나다니엘 호손이 살던 집을 찾았던 일 등을 설명해 주니 흥미롭게 듣는다. 소설의 줄거리가 교훈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생극면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면소재지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응천, 응천의 십리벚꽃길이 명소다. 지날 때마다 벚꽃이 피기 전이라 아쉬웠는데 금년은 예년보다 빠른 개화 덕분에 십리벚꽃길을 제대로 감상하누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 느긋이 기다리면 이룰 때가 있으리라.
모처럼 활짝 핀 십리벚꽃길에서
생극면사무소에 이르니 오후 4시 반, 걸은 거리는 25km. 면사무소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생극에는 묵을 만한 숙소가 없어 택시를 타고 5km 상거의 금왕읍으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는 오후 6시부터 숙소 바로 앞 음식점에서, 얼큰한 부대찌개가 입맛을 돋운다. 통역을 맡은 임은 씨의 선배언니가 이곳에 살고 있는데 정성들여 마련한 메밀 전을 한아름 들고 식당으로 찾아오기도. 식당을 나서며 감사인사를 전하였다. 서로 간에 감사가 넘치는 일이 많아지기를.
최종목적지 생극면사무소에 도착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