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리에 추석이 오다
강길선 <교수, 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다리목마을 천덕암에 전원주택을 거의 충동구매 격으로 마련하여 엄마를 모시고 들어와 생활한지도 12년째가 되어 간다. 오늘은 저녁 늦게 퇴근하여 주차를 하고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떳다. 어느 날은 많이 차 있고 어느 날은 그나마 별이 몇 개 없는 날이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옛날 어렸을 적에 하늘에 지천인 그 많던 별들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다사다난 했던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로 시간이 간다. 그나마 이렇게 전원생활이라도 하니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는 호사를 누린다.
올해 2021년에도 날씨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이가 먹어 가면 갈수록 계절의 흐름도 비정상으로 흐르는 듯 느껴진다. 우선 삼한사온이 없어졌다. 겨울날씨에 삼일은 추우면 사흘은 따뜻해져서 나무들이 월동하기에도 좋았는데, 따뜻한 겨울이 오면 겨우내 따뜻하고, 한파가 한번 오면 영하 15이상이 20일 연속된다. 그러니 나무들이 월동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삼한사온 대신에 삼한 사미 즉, 삼일 따뜻하면 사일은 중국말 미세먼지로 가득 찬다.
가뭄과 장마가 한번 들으면 국지적으로 아주 심히 든다. 가뭄이 한번 오면 정말로 다 타죽을 것과 같이 오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하늘이 구멍 난 것과 같이 쏟아진다. 가뭄 드는 시기와 장마 드는 시기가 일정치 않다. 봄장마, 여름가뭄과 가을장마가 상시화 되어 간다. 오후 3~5시면 어김없이 열대성 스콜과 같은 소낙비가 엄청 쏟아진다. 예년에 그렇게 잘되던 들깨마저도 올해는 그냥 녹아내린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까지 들지를 않아도 지속가능한 기후행동 지구환경을 지켜야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모든 기후가 뒤죽박죽된 것은 인간들이 저질러 놓은 업보임을 알아야 한다.
어쨌거나 그런저런 지구기후위기 걱정을 온몸으로 안으며 초복‧중복‧말복‧입추‧처서‧백로가 어김없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가을이 찾아온다. 그러면 해월리에서 11번째 맞는 추석이 곧 다가온다.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한테는 다 같이 뜻깊은 추억과 뜻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그 옛날 못살았던 유년기의 추석이 참으로 애틋하고 타임머신 한 듯이 과거로 돌아가려 눈을 감고 회상에 빠진다.
60~70년대 국민학교(초등학교 보다는 정겨운 단어이다) 시절에 단 것을 먹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설탕이 귀했기 때문이다. 당원(뉴 슈가라고도 불리웠는데 이는 인공 감미료, 사카린이다)이 설탕을 대신하였다. 손쉬운 것이 벌을 잡아서 꿀을 빼먹는 것이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가 하늘하늘 거리는 코스모스속의 별을 발견하면 잽싸게 낚아챈다. 한 스무 바퀴 전심전력으로 돌려서 패대기를 치면 벌이 정신을 잃는다. 정신 잃은 벌을 위 아래로 잡아당겨 반으로 나누면 벌 허리 부분에서 좁쌀크기 만큼의 꿀이 나타난다. 이 꿀이 그렇게 맛있었다. 이런 맛이 진짜 꿀맛이다. 물론 벌한테는 미안하였다.
아카시아 나무를 낫으로 키의 반 정도 만큼, 들고 다닐 수 있는 최대의 길이로 자르고 아카시아 잎을 다 털어내면 가시가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남는다. 이 아카시아 가시에 코스모스 꽃을 따서 형형색색으로 꽂으면 코스모스 꽃이 핀 아카시아, “아카모스” 가 된다. 두세 개를 만들어 들고 다니면 정말로 부러울 것이 없다. 여러 색끼리 혼합된 코스모스 꽃나무가 푸른 하늘 사이로 둥게 둥게 떠다닌다. 나의 어린 마음도 에메랄드 하늘빛에 투영되어 하얀 뭉게구름사이로 둥둥 떠다닌다.
추석이 오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비롯 온 동네 어르신까지 모여 축제 겸 운동회를 한다. 운동회에서 공연할 곤봉체조, 태권도시범, 신랑각시춤, 매스게임 등의 연습도 아련히 생각난다. 참으로 하기 싫더니... 홍군‧남군으로 나뉘어 승부를 겨룬다. 오재미 주머니를 던져 박 터치기, 50m 달리기, 기마전, 학부모 달리기, 줄다리기, 4명이 이어달리기 등으로 한껏 신나게 놀았다.
뭐니 뭐니 해도 추석과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먹거리가 지천이라는 점이다. 특히 햇과일과 추석음식이 지천임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하고 원색적인 불량식품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쫀대기, 계피맛 테이프, 아폴로, 솜사탕, 밭두렁, 깐돌이, 자야, 뽑기, 뽀빠이 등은 참으로 맛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맛이 있었다. 연탄불 하나 놓고 국자에 설탕을 녹여 소다를 부으면 달고나가 된다. 별모양, 하트모양 등의 모양으로 박아주면 아주 조심스럽게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 갖다 주면, 또 공짜로 할 수 있었다. 실수하여 별모양의 하나라도 부러지면 주인아저씨를 속이기 위해서 침으로 살짝 묻혀서 붙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얼굴에 미소가 절로 감아 돈다.
추석 즈음에 학교에서 내어주는 숙제도 추억거리이다. 성냥곽 한가득 파리 잡아오기, 풀씨 따서 편지봉투에 가득 담아오기, 벼 추수하고 난 후에 논에서 벼이삭 주워오기, 아카시아 잎사귀 따서 새끼줄에 죽 꿰어서 말려오기, 아카시아 씨를 따서 이것도 편지봉투에 한 봉투씩 따가지고 오기 등도 숙제였다. 아카시아 잎은 학교에서 키우는 동물들의 겨울 양식이었고, 바싹 건조시킨 코스모스 씨는 기름 짜서 식용유 만들어 외국에 수출 한다고 하였다. 따간 풀씨는 그 이듬해에 사방관리 측, 무너진 산이나 둑에 뿌려서 지력보강 하는데 쓴다고 하였다.
이렇듯 참으로 못살았었을 때 수준에 딱 맞는 숙제들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우리 아이들한테 해주면 거의 뻥치는 수준으로 이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아이들한테는 거의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지겨웠을지는 모르나, 지금이라도 다시 시키면 기꺼이 할 만큼 그 옛날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음식들과 숙제들이다.
이러한 옛날 생각을 회상하면 막상 못살았을 때의 지겨움 보다는 정겨움을 느끼는 것이 참으로 기이한 것은 요즈음의 물질의 풍요에 넘쳐흐르는 반대로 인정과 세태가 더욱더 각박해짐에 따른 결과이리라. 우리나라는 70여 년 전에는 세계 최빈국에서 2021년에는 선진국에 진입하였음이 공식화되었고 세계 경제대국 6~7위를 달성하는 세계사 전대미문의 신기원을 이루고 있다.
이러면 이러한 풍요로움에 예전의 가난함과 상상하기도 싫은 불량식품, 숙제 등에 싫증도 나기도 하련만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질적인 풍요가 심적으로는 더욱 행복해져야 하건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꼭 세상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는 되는 것이 아닌 것이 인생의 법칙인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 채, 해월리에 2021년의 추석이 또 다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