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오년이 넘었을까.
처가 집(전남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 에 다니러 갔을 때, 고갯길에 할미꽃
으로 유명한 ‘한재 공원’을 넘어간 적이 있다.
거기, 끄트머리 바닷가가 전남 장흥군 회진면 신상리이다.
입간판이나 문패(5년 전이라 지금은 모르겠네)도 없어 물어물어 찾아간
집은 비어 있고, 뒤쪽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소설가이자 시인
인 한승원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소설가 한승원 생가
1968년⟨木船목선⟩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다산⟩ ⟨불의 딸⟩ ⟨포구⟩
⟨아제아제 바라아제⟩ ⟨아버지와 아들⟩ ⟨동학제⟩ ⟨원효⟩ ⟨피를 붓다⟩ ⟨초의⟩
⟨해일⟩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 ⟨한승원의 소설 쓰는 법⟩등 한국
문단에서 가장 다작한 소설가 아닌가.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작가들의 생애와 관련이 있는 곳
은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기 마련이다.
한승원 선생의 유년 시절을 보낸 바닷가에는 장편 소설 ⟨해일⟩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한승원의 장편 소설 「해일」
‘그 바다에는 천만년의 신화가 살고 있었다. 흩어지면 별빛 달빛
안개 바람 땅 하늘 벌레 이슬 물결소리가 되고 한데 모이면 유령
같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꿈틀거리고 술렁거리고 앓아대었다.
넓바우는 자그마한 연안이었다. 검푸른 해송 숲이 빽빽하게 들
어 선 두 개의 산굽이가 자주 빛 바위를 디딘 채 바다 깊숙이 묻히
면서 연안을 만들고 있었다. 모래밭 너머로는 솔숲 짙은 계곡이
새텃몰로 넘어가는 잔등의 메밀씨 같은 바위 밑으로 음험하게 패어
들어가 있었다.
「우리 신상이 낳은 큰 作家 한승원님의 文學 業績이
넓고도 높고 구절마다 故鄕의 香氣 넘치기에 故鄕을
지키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이 標石을 세워 오래
기리고자 합니다.」 - 샛터몰 주민 일동 -

후미진 바닷가 끄트머리에서 유명한 소설가를 배출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아들 한동림과 딸 한강이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소설가로 활동
하고 있다.
2005년 ‘이상 문학상’ 수상자로 딸 한강이 선정돼 아버지 한승원에
이어 부녀 2대가 유수의 문학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 딸 한강의 ⟨채식 주의자⟩란 소설이, 5월 세계 3대 문학상 (맨부커 상,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 상) 중 하나인 「맨부커 국제상(Man boo ker
intemational prize)」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맨부커 상’을 수상한 ‘채식 주의자’는 ㈜ 창비 출판사
에서 펴냈다.

1966년 창간된 「창작과 비평」으로 시작된 ‘창비 출판사’는 독자들
에게 가장 신뢰 받는 출판사로 손꼽힌다.
망원역(6호선) 근처 ‘창비’ 서교빌딩 1층 로비에는 ‘채식 주의자’로
온통 차려졌다.
창비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하고 ‘채식 주의자’ 한 권 집어 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

한국에서는 문학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고 ‘맨부커 국제상’
을 받은 소설가 한강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국 문단에 경사가 아닐 수 없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