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수사, 2015]
감독:곽경택
출연:김윤석, 유해진, 송영창, 장영남
줄거리
한 아이가 유괴된 후, 수사가 시작되고 아이 부모의 특별 요청으로 담당이 된 공길용 형사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극비 수사를 진행하기로 한다. 한편, 가족들은 유명한 점술집을 돌아다니며 아이의 생사여부를 확인하지만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절망적인 답만 듣게 되고, 마지막으로 도사 김중산을 찾아간다. 아이의 사주를 풀어보던 김도사는 아직 아이가 살아있고, 보름 째 되는 날 범인으로부터 첫 연락이 온다고 확신한다. 보름째 되는 날, 김도사의 말대로 연락이 오고, 범인이 보낸 단서로 아이가 살아있음을 확신한 공형사는 김도사의 말을 믿게 된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수사는 진전되지 않고, 모두가 아이의 생사 보다 범인 찾기에 혈안이 된 상황 속에 공형사와 김도사 두 사람만이 아이를 살리기 위한 수사를 계속 진행하는데…
역사적 사건의 배경에는 진짜 주인공들이 가려져 있기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결정지은 배경에는 비밀리에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했던 수학자들이 있었고, 이란에 고립된 미국인 인질들 구출 작전에는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했던 CIA 요원이 있었다. 이러한 흥미로운 사실들은 영화의 좋은 소재로 사용돼 비운의 주인공 이었던 이들은 다시금 재조명돼 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극비수사]는 오래전 유괴된 아이를 구출했지만 여러 배경적인 이유로 조명받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그린 실화 극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들은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 '형사', 비이성적인 '점'을 통해 운명을 바라보는 점쟁이. 전대미문이 될 수 있었던 유괴사건을 해결한 '영웅'들이라 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다. '유괴'를 전문으로 다룰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논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극비수사]는 이전의 스릴러물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울리지 않은 이 두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 인간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다룬 인상적인 휴먼극을 지향하려 한 것이다.
주인공 공길용 형사와 김중산은 전혀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묘한 공통점이 있다. 공길용은 한국 영화 형사 캐릭터의 전형을 드러내고 있다. 추리보다 특유의 감을 믿고 행동으로 사건을 처리하면서, 조그마한 '뒷돈'을 챙기는 불의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사건에 접근 할 때는 진지하고 냉철하게 접근해 계획을 짜는 의외의 주도면밀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김중산 에게도 발견되는 비슷한 특징이다. 다른 점쟁이들이 눈에 보이는 '점'에 신경 쓰는 것과 달리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의 세세한 한자 이름, 관상, 철저한 '영'적인 힘을 종합해 사람의 운명을 진지하게 대하려 한다. 유괴된 아이의 가족이 다른 점집에서 '아이의 죽음'만을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이 실습했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아이의 '행방'을 찾아낸다.
공길용과 김중산은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을 지닌 인물들이다. 소신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철학과 신념을 지키는 데 있어 고집스러운 면을 가졌다는 뜻으로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경찰)과 동료(스승)에게 아웃사이더 취급을 당한다. 그리고 이들이 유괴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결정적인 공통점에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자 '가장'이라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 [극비수사]는 유괴 사건 해결 과정에서 만난 어색한 두 캐릭터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해 문제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휴먼드라마 형식과 합쳐지게 된다.
정통 스릴러라면 '유괴범이 누군인가?'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진행하겠지만, 영화는 이와 달리 '유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전자가 추리적 요소가 강한 반면, 후자는 스릴러보다는 광범위한 장르적 요소를 포함하는 식이다. 그래서 영화가 다루는 유괴 사건은 평이한 수준에 그친다. 유괴범은 전화로만 모든 것을 지시하고 형사들은 유괴범이 지시한 장소에서 범인을 급습하려는 위장 수사를 진행하려는 전형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잔혹한 묘사나 극적인 반전과 같은 스릴러 적인 흥미 요소는 배제된 채 오로지 사건의 흐름에만 집중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와 사건 해결 방식을 고수한 탓에 이야기는 너무 낡고 평범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도 [극비수사]는 지루하거나 흥미가 떨어지진 않는다. 곽경택 감독은 스릴러의 '형식'만을 유지한 채 자신의 장기인 유머, 드라마, 캐릭터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드러내 이를통해 다양한 흥밋거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적인 수사물과 비이성적인 '점괘' 방식이 조화를 이뤄야 할 영화의 특징상 필요한 설정이다. 현실적인 수사의 관점만을 고집하던 공길용이 김중산의 점괘가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형사와 점쟁이는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콤비'가 되고, 이를통해 [극비수사]만이 지닌 '점괘' 수사물의 특징을 완성하게 된다.
사건의 현실만을 바라보는 공길용과 사람의 내면과 정체까지 파헤치는 김중산의 장기는 의외의 흥미 요소가 되고, 예상 못 한 웃음, 따뜻한 정서로 연결된다. 그 때문에 스릴러적인 시각에서는 사건의 실체와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아쉬움이 눈에 띈다. 물론 이러한 의도는 실화의 틀을 깨고 싶지 않았던 곽경택 감독의 진심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불합리와 폭력이 만연했던 7,80년 대의 시대상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낸 공길용과 김중산을 통해 시대가 바라는 진정한 영웅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추억 또는 비화속에 얽힌 이야기를 따뜻한 휴먼 스릴러로 완성된 [극비수사]는 오랜만에 이야기와 방향성이 분명한 잘 만든 한국 영화를 보는듯했다. 완성도를 떠나 곽경택 감독 같은 이야기꾼과 특유의 개성을 유지하는 연출자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 한국 영화계의 '희망'이자 좋은 '표본'이라 생각한다.
[극비수사]는 6월 18일 개봉한다.
작품성:★★★
오락성:★★★☆
연출력:★★★
연기력:★★★★
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