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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신실함
제목 :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길
성경 : 창 47:1~12
찬송 : 310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1124 낙양교회 추수감사 주일
창 47: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창 47: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창 47: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창 47: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창 47: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창 47: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창 47: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창 47: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 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 47: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창 47: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1980년대에 작사 작곡되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준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CCM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을 만든 주인공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폐결핵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던 젊은 시절에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면서 이 찬양을 지었습니다.
“매번 도움만 간구하는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이 고백을 담아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내용의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교회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하는 것도 어색해하던 분위기였기에 이 찬양은 잘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원작자의 친구가 합창단에서 부를 노래로 이 곡을 받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작자 미상의 곡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원작자는 교회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가 나오는 것을 듣고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으며 이 찬양을 부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즈음 이웃의 인도로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품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만 바라볼지라”의 원곡자는 박성호집사입니다. 그는 이제 교회 음악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봉사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능히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동시에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변함없는 손길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여러분도 이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라암셋 지도/그림)
야곱 일행이 이주한 애굽은 고대 근동 문명의 중심지요 강대국으로, 외적의 위협에서 비교적 안전했습니다. 또한 야곱 집안이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애굽 왕 바로의 허락으로 정착하게 된 고센 지역은 라암셋이라고도 불리는 이집트 북쪽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땅으로, 람세스 2세 시대에 남쪽에 있는 테베에 이어 애굽의 두 번째 수도가 될 만큼 기후와 환경이 좋았습니다. 또한 군사적으로 방어하기에 유리하고, 목축을 위한 초지가 풍부해 야곱 일행이 정착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가증하게 여겼기에 이 지역에는 사람이 적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걸어서 이틀 정도면 애굽을 빠져 나올 수 있는 지리적 특징은 훗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 땅이지만 ,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이 극심한 기근에서 벗어나도록 애굽에 정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야곱 자손을 번성케 하시며 400년 후 하나님의 구원을 열방 가운데 나타내실 출애굽의 배경을 만들어 가십니다.
√형제들과 바로의 만남(1~6절)
요셉이 형 다섯 명을 택해 바로 앞에 서게 합니다. 이때 바로는 그들에게 무엇을 질문했고, 형들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창 47: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창 47: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창 47: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바로는 요셉의 형들에게 생업, 즉 직업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미리 알려 준 대로 목자라고 대답하면서 고센 땅에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가나안의 이방인 가족이 당시 강대국인 애굽에 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로 당선된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를 철저하게 막겠다고 공언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그 당시 세계 최 강대국이었던 애굽에 정착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서 바로의 신임을 얻고 있으며 요셉의 가족이 애굽에 내려오도록 바로가 초청했음에도(45:18) 살 곳을 얻어 완전히 정착하기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셉은 지혜롭게 일을 진행하는데, 먼저 형 중에서 다섯 명을 택합니다. 이 다섯 명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지만, 바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거나 쓸데없이 긴장감을 주지 않을 성품을 가진 인물들을 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다음 요셉은 바로가 어떤 질문을 할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미리 알려 줍니다(46:33~34).
바로는 요셉의 예상대로 형들에게 생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형들은 그들의 직업을 목자로 밝히며, 양떼를 칠 초지와 거류지를 찾아 이곳에 왔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넌지시 고센 땅을 이야기 하며 그 땅에 거류하기를 청합니다(4절). 이는 바로의 마음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바로는 흔쾌히 허락하며 왕의 가축도 관리하도록 맡깁니다(6절).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애굽 문화와 바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통해 야곱의 가족은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 모든 사건과 결정 위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돌보시는 손길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상의 문제 앞에서 내게 지혜를 주시거나 상황을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요셉은 바로가 아버지 야곱과 모든 형제를 데려 오도록 초청한 사건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신뢰하며 가족이 목축을 유지하면서 정착할 방법을 강구합니다. 요셉의 믿음과 지혜로 말미암아 야곱의 가족은 애굽 중에서도 가장 환경이 좋은 곳에서 정착해 기근 중에도 어렵지 않게 일가를 보존하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삶입니다. 성도의 삶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만물과 역사를 통치하신다는 고백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일상의 작은 문제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 아래 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 일들을 조명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때도 하늘의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은 순종할 길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고 찬양하는 시간이 오게 됩니다.
√야곱과 바로의 만남(7~10절)
√창 47: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창 47: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 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요셉은 형들에 이어서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인도하여 소개합니다. 야곱의 연륜 때문인지 바로와 야곱의 대화는 훨씬 부드러웠습니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겸손하지만 당당한 모습을 보입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했다는 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인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묻는 바로의 질문에 야곱은 ‘나의 나그네 연수’가 130년이라고 대답합니다(9절).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짧지만 험악한’ 나날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에게 갔지만, 라반 밑에서 종처럼 살았고, 가나안으로 돌아와서는 디나 사건을 겪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요셉이 죽은 것으로 알고 20년을 살았습니다. 야곱의 말에는 이러한 삶이 축약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말은 또한 후손들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아갈 것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야곱의 나그네 인생은 애굽에서 ‘거류하려는’ 후손의 삶을 미리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말을 마친 후에 바로를 축복하고 물러납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요약합니다.
√1) 나그네 세월임.
본문 9절에 '내 나그네 세월이 130년이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나이가 많든 적든 그 나이는 나그네 세월입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 말하기를 "나그네 인생"이라고 했으며 2장 11절에서도 인생을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나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시인 괴테가 말했습니다. '인생아! 네 나이가 몇이냐? 짐승으로 산 나이는 짐승의 나이이고 사람으로 산 나이여야 사람의 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으로 산 나이라야 사람의 나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믿음으로 산 나의 나이는 몇이나 될까요? 한 번쯤 물어야 합니다. 어느 날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에 친구가 청탁을 했습니다. '아무개 친구를 보내니 가능하면 요직에 앉힐 수 있기를 바라네.' 소개를 받은 한 사람이 대통령을 만났는데 한 번 쳐다보더니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왜 그 친구 마음에 들지 않던가?'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인상이 좋지 않아 그냥 돌려보냈네.' 덧붙이는 말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의 이력서와 같은 것인데 그 인상에 나이 값을 못 한 것 같아서 돌려보냈다는 것이었답니다.
√2)짤막한 세월임.
본문에 '130년입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130년을 살고도 그 나이가 짧다고 했습니다. 예술은 길지만 인생을 짧습니다. 욥은 욥기 7장 6절에 말하기를 "그 날이 배틀의 북보다 빠르다" 시편 90편 10절에는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새가 빨리 날아가듯이 시냇물이 빨이 흘러가듯이 인생의 나이는 짧고 빠르다는 것입니다. 유수와도 같고 초로와도 같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농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해의 풍년을 만났는데 곡간을 새로 짓고 그곳에 여러 해 쓸 물건과 곡식을 채우고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이 평안이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땝니다. 하나님께서 그 위에다 부고장을 발부하신 것입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니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여기에 오늘밤은 부자 농부가 갑자기 만난 죽음의 밤입니다. 누구 인생에게도 오늘밤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에게 닥쳐오는 밤이 바로 오늘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오늘밤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런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3)험악한 세월임.
본문 9절에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마 야곱은 인생의 뒤안길을 뒤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그의 130년 세월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고백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을 것입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속임수가 있었고 도망치는 시절에 벧엘에서 돌베개하고 노숙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외삼촌의 집에서 20년 동안이나 머슴살이 했던 때도 있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라고 답한 야곱도 결국은 죽었습니다. 창세기 48장 3절에서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라고 그 죽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운이 진하여"라는 말은 원뜻이 '내가 나를 침상에 눕히리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 피곤하다. 이제 누워서 잠을 자야 되겠구나!'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죽음에는 흔히들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이제는 평안히 쉬리라는 것이 야곱의 죽음입니다. 또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라는 말은 무덤으로, 애굽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니라 가나안 땅으로 가리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은 약 속의 땅, 나그네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 천국의 모형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야곱의 죽음처럼 갈등, 두려움, 공포가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1년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께서 또 1년을 형통케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네 나이, 네 연세가 얼마뇨?'라는 것은 나이 값을 하라는 말입니다. 생각하면 나이 값 못하는 위정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 모양입니다. 나이 값 못하는 지도자가 많아서 고통스럽습니다. 생각하면 나이 값 못하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어떻게 나이 값을 해야 합니까?
야곱은 그의 바람대로 애굽에서 남은 인생을 평안하게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궁극적으로 평안과 안식으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고센 정착(11~12절)
√창 47: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창 47: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요셉이 처음부터 계획했던 야곱 일가의 고센 정착은 바로의 공식 명령에 따라 차질 없이 원활하게 진행됩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또 양식을 주어 봉양합니다. 앞에서는 ‘고센 땅’이라고 했던 곳이 11절에서는 ‘좋은 땅 라암셋’이라는 다른 호칭으로 언급됩니다. 훗날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할 때에도 ‘라암셋’을 떠났다는 기록(출 12:37)이 나옵니다.
고센과 라암셋의 관계는 모호합니다. 고센이 지역을 지칭하고 라암셋은 그 가운데 있는 성읍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두 곳이 인접한 지역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야곱 일가는 그들이 거하기에 최적의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이렇게 좋은 땅,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좋은 분이십니다(시 2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보여 줍니다. 한 민족의 역사와 성경 속 수많은 인물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 줍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약속하신 바를 어떻게 이루시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인물입니다(28:13~15). 그는 이기적이고 자기만을 위해 살았지만, 여러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마침내 인생 말년에 바로를 축복하는 선지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경험하고 이를 증거 하는 사명의 길에 서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해석하게 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을 우리 삶에 선물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신뢰와 지식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 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의 패턴은 창세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야곱 가족을 애굽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그분의 광대하신 계획과 섭리를 드러내십니다.
첫째, 목축하기에 적당한 고센 땅에 정착하도록 인도하심으로써 후일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위한 배경을 만드십니다.
둘째, 130세가 된 야곱이 애굽 왕 바로를 축복하게 하심으로써 한 개인의 삶에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하고 따르는 백성에게 그분의 신실하심과 광대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을 먼저 경험하고 세상에 그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며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