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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주연같은 조연/마 1:18-25
○ 예수의 탄생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눅1:27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신24:1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눅1:35, 사7:14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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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할렐루야!
서로 인사합시다!
“잘 나오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인을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신 성탄절을 앞두고 오늘 저는 본문 말씀을 읽고 <주연같은 조연>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주연만이 크게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스타가 되고자 하죠
그러나 주연은 한 두 사람이고 나머지는 조연에 불과하죠
성탄절에서 주연이라고 하면 누굴까요?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마리아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는 주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조연에 촛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주연이 빠지면 물론 드라마가 되지 않겠지만 조연 역시 없어서는 안된 귀중한 역할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요셉이 주연같은 조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8절)
요셉과 마리아가 육체적으로 성관계를 갖기 전에 이미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어떻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었는가를 보다 자세하게 알려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당시에 관습에 따라 한 쌍의 남녀가 갖게 되는 관계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 가지로 구별되는 관계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약혼(engagement)이고,
둘째는 정혼(espousal)이고,
셋째는 동거(betrothal)입니다.
❃약혼은 어린 시절 그 어느 때라도 가능합니다.
그 때의 결혼은 양가의 부모들의 합의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한 부부가 아들을 낳았는데, 이웃의 친하게 지내는 부부도 비슷한 시기에 딸을 낳았다고 합시다.
이들이 “우리가 서로 비슷한 시기에 아들과 딸을 낳았으니 장래에 우리의 아들과 딸을 결혼을 시킵시다”라고 합의를 하면 당사자들이 어린 아이였지만 약혼이 성립된 것입니다.
자녀들이 자라서 15-16세 정도가 되면 이들은 일년간의 정혼 관계를 거치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서로 간에 멀리하며 자신 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결혼을 준비하게 됩니다.
당사자들도 이 시기에 부모님의 결정을 받아들여 상대방을 자신의 배우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준비와 계획을 위해 일년 정도 지냅니다.
❃정혼 기간 동안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결혼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정혼을 깨는 데에는 파혼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한 상태로 여겨서 일년간 서로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서로에게 충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혼이 아니면 헤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정혼기간이 끝나면 동거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혼 그 자체인 것입니다.
결혼식 날 밤에 신부의 아버지는 딸의 처녀성을 증명하는 흔적을 취해 상자에 넣어 보관해야 합니다.
만일에 사위가 결혼한 후에 “그녀는 내가 결혼할 당시에 처녀가 아니었으므로 이혼하겠소”라고 한다면 딸의 아버지는 그 딸의 처녀성을 증명하는 흔적을 증거물로 내어보여 사위가 거짓 증언을 한다고 고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은 요셉과 마리아가 둘째 관계에 속하는 정혼 기간을 보내어야 하는데 이 둘 사이에 갑자기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즉 마리아가 임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정혼 기간 중의 부정, 다시 말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정혼한 마리아에게 대해 요셉이 직면하게 된 문제였습니다.
요셉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으나 그녀의 갑작스런 임신 사실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자니 자신이 정혼 기간 중에 있는 처녀를 더럽혔다는 낙인이 찍힐 판이고, 동네 방네 알리자니 사랑하는 마리아가 돌에 맞아서 죽을 판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가만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서 요셉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0-21절)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씀을 듣고 마리아를 조용히 끊으려던 생각을 그만두고 마리아를 자신의 집에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천사의 말씀대로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요셉은 비록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있어서 주연은 아닐찌라도 주연같은 조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요셉의 신앙 인격에 대해서 몇 가지로 말씀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진실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요셉에 대해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의롭다는 말의 어원은 ‘디카이오스’인데 이 말은 “곧고 공정하며 청렴한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부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셉 역시 곧고 정직하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용납하지 못하며, 율법대로 행동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가 그 당시의 율법은 신명기 22:23-24절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간음죄를 범한 자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 밖으로 끌려 나가서 돌로 맞아 죽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이 사랑한 약혼녀 마리아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요셉에게는 마리아에 대한 배신으로 입게 된 마음의 상처에 대해 소송을 청구할 수도 있었고, 그녀에 대한 분함과 억울함 때문에 율법대로 처벌을 원하면 돌에 맞아 죽게 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마리아를 진정으로 사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마리아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었기에 태어나실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랑의 사람 요셉의 가문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만인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진실한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는 의는 참된 의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진실한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율법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사랑으로 허물을 덮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진실한 사랑의 사람이 되어 우리의 형제와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며, 이해하고 감싸주어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둘째 요셉은 주의 사자의 말씀을 소중하게 순종하였던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알려주었지만 과연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요셉은 그 말씀을 받아 들이며,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의 사자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복을 받은 인물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 18:1-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보이는 천사를 융숭히 대접함으로 주의 사자인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래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10절)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고 사라의 나이는 90세였던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이루어질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의 웃음은 얼토당토 않는 말씀을 한다고 비웃는 웃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의 사자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으며, 그럴 때에 주의 사자의 말씀은 그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뿐 아니라, 창세기 22:1-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이 때에 얻게 된 아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는 축복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위대한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모세와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갈 바를 알지 못하나 순종하여 나왔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과 땅에서는 그 맛을 알 수 없는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 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승리를 맛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열왕기상 17:13-17절 말씀에 보면 사르밧 과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당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모든 나라가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사르밧 과부는 자신에게 남은 한 끼의 식량을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의 말씀에 순종하여 엘리야에게 대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르밧 과부를 축복하셨고, 엘리야를 통해 비가 다시 내리는 날까지 가루통과 기름병이 비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주의 사자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귀히 여기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에 대해 살전 2:13절은 기록하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자신의 생각, 섭섭함, 배신감, 이해할 수 없는 마음 등등 이 모두를 주의 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 내려놓고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의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고 순종할 때에 진실한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순종할 때에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거룩한 구속 역사를 이루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빌 2:5-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복종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저와 여러분들도 이번 성탄절을 맞아서 요셉처럼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순종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요셉은 구주 탄생의 주연이 아니었지만 주연 이상의 조연으로서 그 소임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특별히 요셉의 삶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며, 세상을 아름답게 환하게 밝히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전종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