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 직전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다. 남이 위험에 처해 있어도 나 살기 위해 36계 줄행랑을 친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교육현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만약 누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뛰어들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옳으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당연하다는 대답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로지 36계 줄행랑이 가장 적절한 처신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외국인에게도 예외는 없다. 수년 전 여름,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의 언론사 특파원단은 후난성 둥팅후의 환경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장도에 올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둥팅후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험준하고 협소한 도로에서 승합차가 10여 미터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일행 10여 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대형사고였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얼마 후 주변 마을 주민들이 손에 전등을 든 채 나타났다. 일행은 이제는 살았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쓰러져 있는 특파원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의 소지품을 몇 가지씩 들고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주민들의 목적은 오로지 사고를 당한 특파원들의 귀중품 탈취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 현장에 있던 한 특파원의 푸념이다.
"그때는 정말 기가 막혔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놔두고 소지품부터 뒤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당시 그 사람들은 사고를 당한 사람의 목숨보다는 주인 잃은 귀중품을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것이 절실했던 것 같았다."
지식인들도 이러한 중국인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비판했다. 중국인들의 극단적 이기주의에 대해 중국인 지식인들도 솔직히 인정한 바 있다.
대문호 루쉰의 아큐정전 같은 불후의 명작에도 이런 기질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중국 최고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사오 다오성 연구원도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99가지의 중국인 성격'이라는 두툼한 책에서 중국인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심리와 직결되는 이 주의는 인색한 기부문화로도 이어진다. 기부액 규모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 0.66%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9%인 미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이타주의는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한다는 극단적인 한탄이 양식있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종종 흘러나올 정도다. 문화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