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대책으로 인공강우라도 뿌릴 수는 없을까?
너무 가물다. 너무 덥다. 숨 쉬기도 버겁다. 이러다가는 답답증과 소갈증으로 스트레스가 쌓여 지레 죽겠다. 정부에서는 생활전선에서 패배한 영세민 노약자 백수들과 인구 증가책 어린이 양육책 교육현장지원책 등등의 선심성 정책에 마구재비로 돈을 뿌려댄다. 통일을 위한 비용이며 국방비 복지비 교육문화사업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하늘이 성질을 내어 장마도 태풍도 보슬비마저도 한반도를 외면한 지 오래이다. 해마다 10일 정도이던 열대야는 오늘로 20여일이 되었고 처서도 보름이 더 남은 상태이다.
이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세월호 후속조치, 미투, 비핵화, 종전선언, 남북화해, 사법부 농단, 최저임금, 전직 두 대통령 탈법, 총체적 적패청산, 기무사 위법, 부동산 보유세 등등 할 일이 태산이나 그 보다 가뭄해소에 국력을 기우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먼저 국민이 폭염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생산을 최대한 늘리고 누진제를 철폐함과 동시에 50% 정도 전기요금을 인하해야 제대로 숨을 쉬고 살아날 것 같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열대야 기간 동안 재앙지역으로 선포하고 인공강우를 적절히 생산하여 가뭄해소에 국력을 쏟아야 하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런 긴박한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민심이 요동치기 전에 이반되기 전에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기도하는 것 기우제를 지내는 것 미신일 수 없다.’
유사 이래 가뭄을 해결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가공할 정도로 눈물겨운 바 있었다. 성탕은 하나라(bc 2070~1600)의 폭군인 걸왕을 쫓아내고 상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7년이나 가뭄이 계속되었다. 천문을 관장하는 태사관이 점을 치니 “사람을 희생물로 하여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응답을 얻었다. 그러자 성탕은 손수 제물이 되겠다고 나섰다. 목욕재계하고 손톱을 잘랐으며 머리를 깎고 흰 띠 풀을 깔았으며, 그 위에 누워 스스로 희생물을 자처했다. 그러자 단비가 쏟아져 사방 수천 리의 땅을 촉촉히 적셔주었다고 기록으로 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500여 년 전 조선시대에 음력 5월10일에 연례행사처럼 내리는 비가 있었다. 소위 ‘태종우(太宗雨)’란 것이다. 태종 임금이 내려준 비라는 뜻이다. 조선말기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 ‘문헌지장’편을 보면
“5월 10일은 태종의 기일이다. 태종 만년에 승하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날이 몹시 가물었다. 나라 전체가 기우제를 지내느라 부산을 떨었다. 이때 태종이 근심하여 이르기를 이렇게 가뭄이 드니 백성들이 어찌 살라는 것인가. 과인이 하늘에 올라가 천제에게 즉시 단비를 내려달라고 말해야 하겠다. 그렇게 말하고 태종이 붕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태종 임금이 승하하고 나서 곧 단비가 경기도 일원에 내려 풍년이 들었다. 이후로 해마다 5월10일 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으므로, 사람들이 이를 일컬어 ‘태종우’라 했다.”
“1764년 5월10일 비가 약간 내렸다. 영조는 ‘이는 조상(태종)의 덕분’이라고 했다. 해마다 이날이면 문득 비가 내리니, 사람들이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렀다. 그래서 임금이 언급한 것이다.”
선조~인조 때의 문신인 박동량(1569~1635)이 쓴 <기재잡기>에는 이르기를
“1591년 5월 10일 근 200년 만에 처음으로 태종우가 내리지 않아 식자들이 은근히 걱정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태종의 승하(1422년) 이후 1590년까지 해마다 5월10일이면 어김없이 태종우가 내렸다는 얘기이다. 그런 불상사가 있고 이듬해 4월 임진왜란이 발발했으니 태종우가 내리지 않은 조짐이 전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에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여 비를 기원하고 고통 받는 농민을 위로하고자 옥천·보은·세종·정읍·상주·문경에서 기우제를 드렸다.(2016년 8. 25일 자 신문 전국종합=연합뉴스)
기우제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비를 기원하던 의식이다. 적당한 비가 풍년 농사의 필수조건이다 보니 가뭄이 들면 임금이 나서서 직접 기우제를 드렸다. 이는 황폐한 들녘을 지켜보면서 애태우는 농심을 달래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가뭄을 해소코자 지방자치단체 등이 앞장서서 기우제를 드리면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가뭄으로 고통 받는 농민들을 위로하는 차원이니 고도의 정치행위로 이해해서 잘못이 아닐 것이다.
‘시원한 단비라도 좀 내렸으면’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자 ‘인공강우라도 좀 만들 수 없나’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호 태풍 종다리 소식이 있었지만 한반도를 비껴 가버렸다. 폭염으로 폭폭 삶아대는 마른하늘만 쳐다보는 답답한 상황에서 인공강우의 원리만이라도 알아보자.
인공강우는 1946년 미국 과학자 빈센트 쉐퍼가 냉장고의 온도를 급속히 떨어뜨리기 위해 드라이아이스 분말을 넣자 작은 얼음결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연구가 시작됐다. 그는 구름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리면 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확장해 직접 비행기를 타고 구름에 드라이아이스 살포를 시도했다. 4천m 상공에서 드라이아이스를 뿌리자 이윽고 눈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공강우 항공실험에 결정적으로 성공한 이는 1947년 베나르드 보네거트다. 그는 요오드화은(AGI)이 얼음과 비슷한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착안해서 AGI 연소기를 개발했다. 이런 개발이 있고 인공강우에 대한 발전은 비약적이어서 2008년 중국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을 맑은 날씨에 치르기 위해 인공비를 뿌리기도 했다. 개회식의 화려한 불꽃놀이를 선보이기 위해 당일 오후에 요오드화은을 탑재한 1천100여개의 로켓을 발사했다. 비구름이 아예 베이징 상공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전조치를 취한 것이다. 2016년 12월 20일 중국 산둥성 허쩌시 상공에 인공강우 유도물질을 담은 특수 로켓탄을 발사했고 20분 정도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음날 오후 4시까지 비는 계속됐다. 우리 수도권 면적(1만1천704㎢)보다 조금 큰 허쩌시 전역(1만2천238㎢)에 평균 13.5㎜의 비가 내렸다.
미국은 캘리포니아 등 11개 주에서 인공강우·우박억제·인공증설 등 주로 상업적인 목적에서 날씨조절 사업이 성업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결혼식 패키지 상품으로 날씨 조절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인공강우·강우억제·우박억제·안개저감 등의 실험을 하고 있다. 태국·인도네시아 등도 가뭄 해소 등의 목적으로 인공강우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동향과 달리 우리는 2008년부터 실험을 시작해서 10년째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 한다. 주로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인근에서 태백산맥의 상승기류를 이용해 동풍이 불 때 구름씨를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 2015∼2017년 15차례 인공강우 실험을 진행했지만 그 중 7번만 성공했다.
50% 성공이면 큰 소득인데 인공강우에 투입되는 예산이 결여되어 걸음마 단계라니 부아가 끌어 오른다. 국립기상과학원의 인공강우 연구개발 예산이 겨우 6억원 가량이라니 한심할 노릇이다. 현장에서 인공강우 실험 한 번 하는데 약 1천400만원이 든다 하는데 실험 10번만 해도 1억4천만 원이니 기타 연구비까지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알아본 바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인공강우의 성공은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하늘에서 비를 내려 모든 사람에게 고루고루 혜택을 주기 위한 사업인데 그리 인공강우 예산에 인색해서야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차제에 깊은 연구와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 우리가 가뭄에 단비를 지속적으로 내릴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다면 청년 일자리 창출도 함께 따라올 것으로 예상되니 인공강우의 완전한 기술 확보를 위하여 인공강우학과를 특정대학에 신설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오늘은 소나기라도 한줄기 지나가려나?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라 그리 기대하며 일기예보창을 검색해 보지만 실 날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밤은 또 어찌 찜통 같은 열대야와 싸울지 철부지 손자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숨만 쉴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