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함
사무엘하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인 다윗의 역사를 기록한다.
[1-4절] 사울의 죽은 후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서 시글락에서 이틀을 유하더니 제3일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저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저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다윗이 가로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너는 내게 고하라. 저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다윗은 시글락으로 돌아온 후 제3일이었을 때에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죽음의 소식을 들었다.
그가 아기스를 따라 그 전쟁에 참여했다가 제3일에 시글락으로 돌아왔었고 또 아말렉 사람들을 치는 데 적어도 하루 종일을 썼으므로(삼상 30장) 그때는 그가 블레셋 군대에 참여하러 나갔을 때로부터 약 7일이 되는 때이었다.
즉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죽은 것이다.
그 전쟁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게 하시기 위한 전쟁이었다. 다윗이 그 전쟁에 블레셋 군대로 참여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이었다.
만일 그가 참여했더라면, 그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울과 요나단과 이스라엘 군사들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5-10절] 다윗이 자기에게 고하는 소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급히] 따르는데 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11-16절]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다윗이 그 고한 소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다윗은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것은 사람이 몹시 슬프고 괴로울 때 하는 행동이었다.
또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했다.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을 알려준 소년이 죽임을 당한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죽였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31:4는 사울이 스스로 칼에 엎어져 죽었다고 증거하지만, 그 소년은 자기가 죽였다고 말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17-20절]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弔喪)하고[애도하고]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17절 이하는 다윗이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哀悼)하는 마음으로 지은 노래이다.
다윗은 이 슬픈 노래로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을 슬퍼하였고 또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했다.
활 노래는 활을 사용해 연주한 노래라는 뜻 같다.
야살의 책은 여호수아 10:13에도 언급된 책으로 옛날부터 내려온 기록물인 것 같다.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이스라엘 나라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길보아 산들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 수치스런 패전의 소식, 곧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이 소식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21-25절]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雨露)[비와 이슬]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같이 됨이로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사울 왕과 요나단은 이전에 여러 전쟁들에서 항상 승리하였으나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한 전투에서 패배했다.
비록 사울 왕이 그의 원수이었지만, 다윗은 사울 왕과 요나단의 장점을 인정했다.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은 평소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한 용사들이었다.
[26-27절]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다윗은 특히 요나단의 사랑을 기억하고 애도했다.
그는 요나단이 자기에게 심히 아름답다고 말했고 또 요나단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그를 사랑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사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는 옷을 찢고 저녁까지 애통하며 금식했고, 그의 죽음을 도왔다고 자랑스레 말한 아말렉 소년을 즉석에서 처단했고 후에 그의 슬픔을 표현한 애가를 지어 유다 사람들에게 부르게 했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였다.
특히 그는 그의 친구 요나단을 사랑하였다. 그는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였다. 또 그가 사울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란자나 배신자의 마음가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하며 그의 나라인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요 13:34).
주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 희생의 사랑의 본을 보이셨으므로 우리도 다른 성도들을 향해 참된 사랑, 온전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2에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는 이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로, 다윗은 오랫동안 자기를 죽이려 했던 원수 사울의 죽음이 그에게 마음의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는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다.
주께서는 우리가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교훈하셨다.
누가복음 6:27-28,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 바울도 같은 교훈을 하였다.
로마서 12:14, 19-21,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리의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를 해치는 원수까지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