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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 :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11.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 5 :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라는 말은 ‘의 때문에’라는 뜻이다. 의 때문에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즉 하나님의 계명대로 산 것 때문에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확실히 천국 백성이다. 의를 행하는 것이 구원받은 천국 백성의 표라면, 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사람은 의를 사모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아야 하고, 구원받은 자는 그 의를 위해 살고 의를 전파하고 의를 위해 고난과 핍박과 순교도 당해야 한다.
1]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팔복의 마지막 축복이며, 다음 두 구절은 본 절의 설명구에 해당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을 받는다.'란 말씀은 까닭 없이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만 기실 그 이상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고통당하는 것, 우상에게 절하거나 불의와 타협하기를 거부한 일로 고통을 당하는 것,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진력하다가 고초당하는 것,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통제를 받는 것 등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메시지의 흐름을 화평케 하는 일에서 핍박으로 넘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은 증오와 편견을 기뻐하여서 화평케 하는 자가 항상 환영받는 것만은 아니다.
의에 주리거나 긍휼히 여기는 것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표시인 것처럼, 핍박을 받는 것도 예수의 제자가 된 표시이다.
* 요 15: 18-25 –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 행 14: 22 -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벧전 4: 13-14 –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 딤후 3: 12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2]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렇게 핍박받는 자들이 받는 보상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받는 복과 같다(3절). 즉 천국이 저희 것이다. 박해의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의에 굳게 섰으므로 그들이 받은 큰 복은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것이다.
왕이신 메시야의 나라에서 얻어지는 모든 은혜와 은사와 영광은 그들의 것이다. 세상이 그들에게서 무엇을 빼앗든지 그것은 그들로부터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이 하늘나라의 소유에 의해서 보충되고도 남는다. 이로써 천국의 소유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끝맺어지는 8복의 설교가 모두 끝이 난다.
팔복의 처음 네 가지와 다음 네 가지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어 보인다. 심령의 가난함과 남을 긍휼히 여김, 죄를 애통함과 마음의 청결함, 온유함과 화평케 함,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과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음이 서로 통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의'는 앞에 말한 대로 하나님의 뜻과 법에 일치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라는 말은 '의 때문에'라는 뜻이다. '의' 때문에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말씀대로, 그의 법대로 살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들은 확실히 천국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의'를 행하는 것이 천국 백성 즉 구원받은 백성의 표라면, '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마 5 : 11.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예수께서는 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다.
‘나를 인하여’라는 말은 ‘나 때문에’라는 뜻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욕과 핍박을 받을 것을 내다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마 16: 24-25). 그것은 핍박받을 것도 예상되는 길이다.
마귀는 예수님 믿는 자를 미워하고 세상을 충동하여 성도를 핍박케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 믿는 자를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로 비난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말하였다(딤후 3: 12).
1] 나로 말미암아 ...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 구절에서는10절의 핍박을 모욕과 박해와 비방(slander)에 이르기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증오도 포함하고 있다.
* 눅 6: 22-23 –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10절에서는 '의를 위하여'라는 것이 핍박의 이유였으나 여기에서 예수는 '나를 인하여'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 구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로운 삶이라는 것이 바로 예수를 닮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 준다. 동시에 제자들과 예수의 행하신 의를 동일시함으로써, 의로 충만하지 않고는 예수께 충성을 고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
그뿐만 아니라 이 구절은 기독론적인 주장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자들과 비교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충성하였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고,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충성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선지자에 비견(比肩)되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제자들이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있다. 주께서는 구원받은 자의 덕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의 때문에 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욕과 핍박을 받을 것을 내다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
* 마 16: 24-25 –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것은 핍박받을 것도 예상되는 길이다. 마귀는 예수 믿는 자를 미워하고 세상을 충동하여 성도를 핍박하게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자들을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로 비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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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 :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
그러나 주의 제자들은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상급을 말씀하시며 핍박받을 제자들을 격려하셨다.
이 구절은 또한 천국에서의 상급의 차등을 보인다. 마지막 심판 때에 사람의 죄악에 대한 형벌에 차등이 있을 것이듯이, 선행에 대한 상급에도 차등이 있을 것이다.
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기뻐하다'(*, 카이로)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좋은 감정, 벅찬 기쁨의 상태를 의미한다.
'즐거워하다'(*, 아갈리아오)란 외부로 넘치는 기쁨, 억제할 수 없는 역동적인 환희 등의 뜻으로서 '카이로'보다는 좀 더 점증된 기쁨의 상태를 암시한다.
* 눅 1: 47 -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 눅 10: 21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 요 5: 35 -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2]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예수의 제자들은 핍박 중에 있더라도 기쁨으로 기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받을 그들의 상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의 받을 '상'(*, 미스도스)은 무엇일까? '합당한 보상'이란 그것을 목표로 하는 행동에 결부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국에는 그 행동 자체가 합당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Lewis)고 한다.
신약성경에서 역설하는 보상의 개념은 대부분 이런 범주에 속한다. 진정 우리가 천국의 규범 아래서 살게 되면 자연히 천국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종말에 도래하는 천국에서 넘쳐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본문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박해와 반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자들은 전에 박해받았던 예언자들과 같은 계열에 서 있는 것이다.
* 느 9: 26 -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 행 7: 52 -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 살전 2: 15 -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3]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주께서는 또 “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상 참 선지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단지 그들이 바른말을 했기 때문이고, 그 바른말이 회개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회개치 않는 자들은 참된 목사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사람들을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며 악인들의 악행에 대해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구약의 엘리야,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등 위대한 선지자들을 말한다. 한 예로 예레미야는 채찍을 맞기도 했다.
* 렘 20: 2 –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돌에 맞았다.
* 대하 24: 21 -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유대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가 므낫세 치하 중에 톱으로 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Alford). 그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사도들에 대한 핍박을 위시하여 핍박의 역사는 중단된 적이 없다. 이 구절들은 박해받기를 자칭하라고 권장하는 것이 아니며 박해에서 도피하거나 그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거나 보복하려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구속사('예언자들')와 영원('하늘에서의 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구절들은 합당한 신앙의 응답의 내용을 이룬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 행 5: 41 -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 고후 4: 17 -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벧전 1: 6-9 –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제자직이란 고난 받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부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고난은 기쁨이며 은총의 표시이다(Bonhoeffer).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새로운 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도, 불합리한 것도 아니'(Bonnard)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면서 10장과 24장에서 다시 언급할 박해의 원리를 이야기한다(Carson).
'나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의를 위하여'라는 말과 같이 '나 때문에'라는 뜻이다. 주께서는 이와 같이 구원을 위한 과정의 복, 구원받은 자의 덕의 복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자기 때문에 욕과 핍박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계셨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러므로 의 때문에 받는 핍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핍박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핍박이 따르는 길이다. 마귀는 이 길을 따르는 자들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충동하여 성도를 핍박한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자들을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로 비난한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길이 세상에서는 비난을 받으며, 그 비난 중에는 거짓된 것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에서 가장 복된 일이다. 그것은 참으로 주를 믿고 따르며 섬기는 표가 되며 큰 상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고 오히려 행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뉘우쳐야 하고 어떤 고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바르게, 충성되게 살아야 한다.
여기에 하늘에서의 상급의 차등을 보이는 구절이 있다. 최종 심판 때에는 형벌에도 차등이 있을 것이지만, 상급에도 차등이 있다.
주께서는 부언하시기를 '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다'고 하셨다. 성경의 역사에서 참 선지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바른 말을 하였고, 그 바른 말들이 회개치 않는 악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회개치 않는 사람들은 참된 목사들의 설교를 미워하고 그들을 핍박하고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주께서 그 악행에 대해 보복하실 것이다. '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삶에서 가장 복된 일이다. 그것은 주를 따르는 삶의 절정이요 주를 섬기는 삶의 절정이다. 그것은 참으로 주를 믿고 따르며 섬기는 표가 되며 큰 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통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받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참으로 복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 때문에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자.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힘 있게 살지 못하는 것을 회개하자.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바르고 충성되게 살자.
4]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 마 5: 10-12 )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보셨습니까? 그러나 그 핍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은혜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행복을 누린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다. 스데반 집사를 보라.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이 났다. 그 마음에 벌써 천국이 함께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은 그것이 복덩이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받고 매 맞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없다. 벧전 4: 14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핍박을 육신의 눈으로만 바라보지 말라.
가짜는 진짜를 핍박합한다. 핍박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가짜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귀는 진짜를 한 눈에 알아본다. 그리고 진짜만을 공격한다. 마귀가 공격하는 진짜에는 다음 7가지 부류가 있다.
(1) 성령을 따라 난 자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잘 어울린다. 다른 종교와도 어울린다. 그래서 핍박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핍박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그들과 하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성도를 껄끄러워하고 미워한다.
(2) 믿음을 지키려는 자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자들은 이런 말을 되풀이해왔다. "지금이라도 예수를 부인하고 믿지 않겠다면 살려 주겠다!" 로마의 박해, 공산주의의 박해가 그랬다. 불신의 가족들에게도 핍박을 받는다. 잠시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3) 경건하게 살려는 자다.
* 딤후 3: 12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을 받으리라.
세상이 악해서 경건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동성애를 죄라고 부르지 못한다. 동성애자들에게 뭐라 하면 고발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롯의 때나 노아의 때와 같이 될 것이다. 죄를 죄라고 부르는 자들은 세상의 눈에 가시처럼 될 것이며 공격의 타켓이 되어 핍박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4) 성령 충만을 받은 자다.
찰스 피니는 (기도) 라는 책에서 "성령 충만케 될 때 따르는 결과들" 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당신이 성령 충만할진대 당신은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똑같이 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을 각오해야한다. 교회내의 주도적 인물들이 당신에게 반대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도 그랬다. 당신이 성령 충만하다면 사역자들까지도 당신에게 대적할 것이다. 사탄과도 힘든 다툼을 자주 벌이게 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방언하고 치유한다는 이유로 목사 안수를 거절당하고 소속 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했다. 성령 충만하고 은사 활용했다는 이유로 신비주의라 직통 계시라는 이름으로 표적이 되었고 이단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성령 충만한 자에게 핍박은 예상되는 것이다.
(5) 진리를 타협 없이 전하는 자다.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왜 핍박을 받았습니까?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그대로 전했기 때문이다. 칼빈, 존 후스,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찰스 피니가 왜? 핍박을 받았습니까? 역시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준 높은 진리와 이단 사설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원론의 성화 교리는 조직신학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의 방편에 충실하는 신인 합작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성화를 강조하면 행위 구원을 주장한 것이냐고 따진다. 초보적 진리의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사람들의 핍박이다. 핍박 때문에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하는 사람들이 적다.
(6) 부흥을 위해 쓰임 받는 자다.
부흥을 원합니다. 부흥은 가장 많은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며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흥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때인 동시에 마귀가 발악을 하며 저지하기 위해 역사하는 때다. 그러므로 부흥에는 핍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핍박이 있었다.
(7) 마귀의 왕국에 위협이 되는 자다.
하나님께 강하게 붙들림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탄은 자기에게 위협이 되므로 핍박한다. 사탄은 우리의 온갖 계획과 프로그램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느껴지는 계획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비전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고 반대에 부딪힌다 해도 놀랄 것 없다.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기 위해 앞에 온갖 장애물을 가져다 놓는다. 사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고 다 이루어주신다.
예수님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셨고 구약의 선지자들도 사도들도 핍박을 받았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 26)하셨다. 예수 믿다가 복음 전하다가 받는 핍박은 가장 복이 크다. 우리 모두 핍박 중에도 기뻐하며 끝까지 참 믿음으로 전진하여 하늘의 기쁨과 상을 얻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