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핵심 성경 본문: 창세기 4장 8-17절, 시편 127편 1-2절
사회철학적·텍스트적 배경: 자크 엘륄(Jacques Ellul)의 『도시의 의미(Sans feu ni lieu: Signification biblique de la grande ville)』 제1부("기원: 첫 번째 건축자 가인")
학문적·신학적 과제: 인류 문명사에서 '도시(City)'의 탄생을 단순한 농경 정착, 잉여 생산물 교환, 또는 자연스러운 사회 진화의 산물로 파악하는 세속 사회학의 환상을 성경 계시의 빛 아래서 해체한다. 성경 최초의 도시 건설자가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카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도시의 심연에 도사린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 '실존적 공포', 그리고 '자율적 자기방어의 의지'를 분석하고, 현대 도시 문명이 번영할수록 깊어지는 소외와 불안의 영적 뿌리를 고발한다.
1. 세속 도시학의 환상 vs 성경의 폭로
세속 인류학과 도시사회학은 도시의 기원을 지극히 기능적이고 낙관적인 시선으로 서술합니다:
인간이 수렵 채집 생활을 끝내고 농경을 시작하면서 잉여 농산물이 발생했다.
교역을 위한 시장이 형성되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둘렀으며, 노동의 분업과 법률 체계가 발전하면서 찬란한 도시 문명이 개화했다.
그러나 20세기 프랑스의 기독교 사회학자 자크 엘륄은 이러한 세속적 설명을 '본질을 가리는 피상적 관찰'로 규정합니다.
성경은 인류 최초의 도시가 세워진 현장을 결코 문명 발전의 승리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최초의 도시는 피 흘림의 살인 현장,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형벌을 거부한 한 인간의 오만한 반역의 산물로 등장합니다.
[인류 최초의 비극적 연쇄]
아벨의 살해 ──> 땅의 저주와 방랑자 선고 ──> 하나님의 보호 표(오트) 거부 ──> '에녹 성' 건축(도시의 탄생)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벽을 쌓고 도시의 초석을 놓은 자는 의로운 아벨이나 경건한 셋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동생의 목을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카인)이었습니다.
이 불편한 성경적 사실은 문명 전체를 향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고 살아가는 이 거대한 도시의 뼛속에는 대체 어떤 영적 DNA가 흐르고 있는가?"
2. 창세기 4장 원문 해체: 방랑을 거부한 살인자의 성채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준엄한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창세기 4장 12, 14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피하며 유리하는 자 (나 와나드):
'누아'는 뿌리가 뽑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뜻하며, '누드'는 일정한 거처 없이 방랑하는 방랑자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깨뜨리고 이웃의 생명을 파괴했을 때 찾아오는 실존적 형벌은 '안식처의 상실'입니다.
가인은 땅 어디에도 안전하게 발을 디딜 수 없는 절대적 고립과 불안에 직면했습니다.
가인의 병적인 공포:
하나님의 낯을 피한 가인의 심장을 지배한 것은 회개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죽일지 모른다"는 극도의 피해망상과 살해 공포였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모든 타인을 잠재적 살인자이자 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떨고 있는 살인자에게조차 뜻밖의 은혜의 조치를 베푸셨습니다.
창세기 4장 15-17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 그가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하나님의 표 (오트):
하나님은 가인의 이마에 '보호의 약속'이자 '은혜의 표식(오트)'을 새겨주셨습니다.
가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록 방랑자의 신세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표를 신뢰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자신의 전존재를 의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무엇을 선택했습니까?
가인은 하나님의 면전(밀리프네 아도나이)을 박차고 떠나 '놋(유리함, 방랑)'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첫 번째 행동은 "성을 쌓는 것(이르 바나)"이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주신 보이지 않는 약속의 표(오트)를 믿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말씀 따위로 어떻게 나를 지킨단 말인가? 나를 지키는 것은 내 손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돌벽과 파수대뿐이다!"
엘륄은 이 지점에서 도시의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도시는 방랑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보호 약속을 비웃으며, 인간 스스로 자신의 안전과 구원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한 집단적 불신앙의 바벨탑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성벽 뒤로 숨었다."
가인이 지은 도시의 이름은 그의 아들의 이름을 딴 '에녹(하노크)'이었습니다. '하노크'는 '봉헌된 자,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하나님 없는 자신만의 왕국, 자기 가문이 주인이 되는 인공적 낙원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3. 기술(Technique)과 도시의 첫 번째 결탁
가인이 세운 에녹 성 안에서 어떤 문명이 싹텄습니까?
창세기 4장 후반부는 가인의 후예들이 개척한 도시 문명의 세 가지 핵심 축을 정확히 제시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건설한 도시 문명 (창 4:20-22)]
1. 야발: 장막을 치고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 ──> 대규모 축산 및 '경제적 자본의 축적'
2. 유발: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 ──> 허무와 공포를 잊게 하는 '오락과 예술(Entertainment)'
3. 두발가인: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 ──> 살상 무기와 효율성을 낳는 '금속 기술(Technology)'
도시 문명은 고립된 인간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성벽 안에서 경제(야발)를 축적하여 굶주림의 공포를 이겨내려 했고,
음악과 예술(유발)을 통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의 공허함과 죄책감을 마비시키려 했으며,
금속 무기 기술(두발가인)을 연마하여 외부의 침략자들을 박살 낼 군사력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 문명의 정점에서 울려 퍼진 노래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아니었습니다. 가인의 6대손 라멕의 살인 찬가였습니다.
창세기 4장 23-24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나이를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도시가 발전하고 기술과 무기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더 안전해진 것이 아니라 더 오만해졌고, 더 잔혹해졌으며, 폭력을 무제한으로 정당화하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도시는 본질적으로 '폭력의 통제'를 위해 세워졌으나, 결국 '더 거대한 폭력을 생산하는 기계'로 전락했습니다.
4. 시편 127편: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허망함
시편 기자는 인간이 도시와 성벽을 의지하여 스스로의 안녕을 꾀하는 모든 시도가 왜 근원적인 파산에 이를 수밖에 없는가를 노래합니다.
시편 127편 1-2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임 아도나이 로 이쉬모르 이르):
'이르'는 바로 가인이 세웠던 그 성읍, 도시를 가리킵니다.
인간은 도시의 성벽을 높이 쌓고, 첨단 방범 카메라와 경비 시스템을 갖추며, 수억 원의 보험을 들고, 핵우산을 배치하며 안도를 갈망합니다.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샤웨 샤카드 쇼메르):
그러나 생명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배제한 성벽은 한 줌의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발버둥 쳐도, 하나님 없는 도시는 그 내면에서부터 솟구치는 불안과 공허의 균열을 막아낼 길이 없습니다.
현대 대도시의 마천루를 보십시오.
수천억 원짜리 호화 아파트와 번쩍이는 네온사인 아래에서, 현대인들은 역사상 가장 완벽한 방범과 치안 시스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대 도시인은 역사상 그 어떤 세대보다 더 심각한 불면증, 공황장애, 소외감, 그리고 고독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도시의 기원 자체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쌓아 올린 불안의 도피처"였기 때문입니다.
원천이 오염된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 올릴 수 없듯, 하나님 없는 자율성의 성채 안에서는 결코 참된 평안(샬롬)이 깃들 수 없습니다.
[강의 요약 및 신학적 결론]
『도시의 의미』 제1강은 인간 문명의 화려한 외벽을 걷어내고 도시의 영적 심연을 폭로합니다.
첫째, 도시는 단순한 문명 진화의 결실이 아니라, 살인자 가인이 하나님의 방랑자 선고를 거부하고 불신앙 속에 세운 자기방어의 인공 요새(에녹 성)에서 출발했습니다.
둘째, 가인의 후예들이 발전시킨 경제(야발), 예술(유발), 기술(두발가인)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실존적 공포를 잊기 위한 마취제였으며, 결국 라멕의 잔혹한 폭력성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셋째, 시편 127편은 여호와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는 도성의 파수꾼이 헛되다는 사실을 선언하며, 하나님 없는 도시의 모든 번영은 근원적 불안과 소외의 쳇바퀴일 뿐임을 확증합니다.
그러므로 제1강의 결론은 오늘날 도시 문명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영적 시야를 근본적으로 교정합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최첨단 아파트의 안락함에 속지 마십시오. 그 견고해 보이는 콘크리트 벽 뒤에는 가인 이래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하나님 없는 실존의 떨림과 공포'가 숨어 있습니다.
도시의 시스템이 당신의 영혼을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는 거짓된 환상을 깨뜨리십시오.
우리의 참된 안전은 가인이 쌓아 올린 에녹 성의 벽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참된 언약의 표 아래 거할 때에만 비로소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영원한 영혼의 안식이 시작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