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리사와 오산 바로알기 강의는 한신대학교 김준혁 교수님이 해주셨다. 김준혁 교수님과의 인연은 지난 2011년 수원역사를 알아가는 수원탐방에서부터였다. 그러다가 2014년 한신대학교로 오신 후 교내에서 교수님을 뵙고 인사를 드린 이후 문화재지킴이 기본교육과 다른 강의에서도 종종 뵙게 되었다.
이번 강의에서는 "정조를 이해하고 도시를 이해하자!" 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문화재를 이해할 때 문화재가 왜 그곳에 있는지를 알면 전체적인 내용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조는 수원을 개혁의 도시로 만들면서 문무를 겸비한 도시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무는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외영으로 문은 궐리사를 통해 수원을 유교문화 중심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조선시대 후기 궐리사는 노성 궐리사와 화성 궐리사 두 곳이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화성 궐리사만 인정을 했다. 숙종대 세워진 노성의 궐리사가 향촌의 사림을 배경으로 한 공자의 영당이라면 화성 궐리사는 국왕 정조에 의해서 세워진 영당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성 궐리사는 공자뿐 아니라 조선에 정착한 공씨 후손과도 전혀 무관한 곳으로 단지 산과 마을의 이름이 곡부의 것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사당의 공간으로 선택되어진 것이다. 반면 화성 궐리사는 후손의 거주로 인하여 선택된 것이었다. 정조가 공자의 후손을 높이면서 화성 지역에 궐리사를 마련한 것은 이곳에 아버지 사도세자 현륭원을 조성하고 새로운 성곽을 건설하는 등 화성을 육성하려는 구상과 연관된 것이었다. 나아가 조선이 공씨 후손을 우대하며 공자의 학문을 높이는 중화의 계승자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화성 궐리사는 공서린의 생가 옛터에 만들어졌다. 궐리사는 오산이 가진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가치에 비해 궐리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안동을 정신문화의 수도로 만든 것은 안동사람들이었다. 퇴계 이황선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잘 활용한 것이다. 궐리사를 알리는 것은 지역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수원, 화성, 오산 지역간의 교류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