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3] 차상순 (車相淳) - 이 생명 다하도록 5. 선생님의 투옥 - 2
11 다음 날부터는 여전히 나는 노동 품팔이를 나가야 했다. 매일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면회를 가지 못하고 옥세현(玉世賢) 씨와 나의 아내가 늘 사식을 준비해 가지고 면회를 하러 가곤 했다.
12 선생님은 형을 받으신 후 1개월 반가량 평양형무소(平壤刑務所)에 계시다가 멀리 흥남감옥(興南監獄)으로 옮기시게 되었다.
13 옥중의 옥이라고 하는 흥남감옥(興南監獄)에서 약 3년간 옥고를 치르시고, 6.25 동란의 발발과 국군들이 북진함에 따라 1950년 10월 14일 출감하게 되셨다.
14 출옥 후에 보행으로 흥남에서 평양까지 여러 날만에 도착하셨다. 김원필(金元弼) 씨가 선생님께서 나오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15 우리 내외는 따로따로 선생님을 가서 뵈었다. 나는 노동을 하고 밤에 집에 돌아오면 쓰러지고 마니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16 그리고 40여 명의 식구들은 신앙이 없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원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평양에서도 독실히 믿는 신자들이 많았다.
17 그때도 뜻이 3년이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선생님이 투옥되게 되니 대부분의 식구들은 낙심하게 되었다.
18 그들이 신앙이 없어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하늘은 아시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고 뜻을 따라 나온 분도 많다.
19 그중에서 원필(元弼) 씨는 요생(瑤笙)처럼 믿음이 강했고, 지승도(池承道) 씨와 옥세현(玉世賢) 씨는 시몬, 안나와 같이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20 그리고 기성교회의 모진 압력과 가정으로부터의 핍박, 사회적 냉대도 뿌리치고 나온 정달옥(鄭達玉) 씨와 김인주(金仁珠) 씨는 예수님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