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초입이지만 꽃샘추위를 두어 번 겪고 나면 계절의 끝자락이 보일 것이다. 겨울의 외곽을 서서히 무너뜨리며 다가온 계절의 봄바람은 향긋하고 아릿한 연둣빛으로 들판을 채록하여 우린 가끔 작년의 봄을 기억하며 그리워할 것이다. 센바람이 물러간 척박한 땅에 솟아나는 파릇한 봄의 전령들이 온천지를 점령하고 겨우내 얼어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것이다. 소생蘇生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한 생명의 재생과 움트는 것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막혀있던 가슴의 한 부분이 환하게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봄은 그런 것이다.
이 무렵 자주 들리는 노래 한 곡이 있다. 송창식 가수의 ‘선운사’라는 노래.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가사 일부를 인용해 보면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라는 가사다.
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本寺)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검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는 사찰이다.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동백꽃이 후드득 지는 겨울 끝자락의 선운사는 앉은 자리 그대로 풍경이 된다. 가수 송창식은 이 노래를 만든 배경에 대해 선운사 동백꽃의 낙화를 보면서 느꼈던 처연함을 노래에 담았다고 한다.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동백꽃을 보면 슬퍼서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내 맘처럼 하도 슬픈 낙화를 보면 당신은 차마 내게 이별을 고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속엔 이별도 받아들여야 하는 다짐이 들어있다.
산다는 것은 늘 만남과 이별이 수반되는 것이지만, 그 이별이란 것이 그렇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이별’ 그 자체가 감정을 자극하고 자극된 감정이 다시 이별을 자극하기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동백꽃이 후드득 지는 것을 눈물을 떨구는 꽃으로 보는 시적 질감도 탁월하지만, 동백꽃 떨어지는 것을 내 마음과 대비하여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성진 노랫가락을 만든 가수의 힘도 위대하다. 유행가 가사는 어떤 유명한 시보다 더 큰 울림을 대중에게 줄 수도 있다. 감각기관 모두를 만족하기에 그렇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 사랑을 해 봤을 것이고 누구나 이별을 해봤을 것이며, 누구나 그리움에 눈물 흘린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려보자. Sentimentalism에서 벗어나 문득 초연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별의 상흔은 남은 사람의 몫이기에 내가 나를 치료해야 한다. 나를 치료하기 전에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모두 내게서 비롯되는 것임을 종종 잊을 때가 많다. 나부터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 그것이 모든 삶의 원천이 되어야 이 연둣빛 봄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이다. 봄이 왔다. 내 마음속 선운사에 나를 놓아두고 오자. 언제든 찾아갈 수 있도록. (김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