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끌려가지 않고 끌고 간다
나는 해가 떨어지면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강연을 요청하는 곳에서는 애써 낮 시간에 일정을 잡는다.
나는 종종 대한민국 남성들의 생산성 저하는 "밤무대 때문이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애꿎은 회식과 이어지는 술자리로 인해 저녁 시간을 허송하는 것은 물론, 이튿날에도 숙취로 인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직접 쓰거나 편집한 영문 서적 일곱 권을 비롯해 나는 1999년부터 2024년까지 25년 동안 줄잡아 국문 저서 50권과 역서 20권을 출간했다.
이른바 '밤무대'를 뛰었으면 절대로 해낼 수 있는 일의 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창의성은 주로 홀로 있으며 몰입할 때 나타난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을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시간관리에 관한 한 나만의 독특한 노하우를 하나 더 갖고 있다.
나의 조금은 남다른 생산성은 스스로 '홀로움'을 추구하는 시간 관리 외에도 '미리 하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내가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는 논객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25년이 넘었다.
그동안 내 글에 잘못 손을 댔다 험한 꼴을 당한 기자들이 제법 많다.
"내가 토씨 하나를 가지고도 얼마나 오래 고민했는데 당신이 대체 뭔데 함부로 내 글을 고치느냐"라며 평소 비교적 온화한 상품인 나는 뜻밖에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신문에 글 한 번 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대개 신문사가 갑이고 필자가 을이건만, 나는 도대체 뭘 믿고 그야말로 길길이 날 뛸 수 있을까?
내가 믿는 구석은 단 하나, 나는 보통 원고를 적어도 2~3일 전에 보낸다.
필자 대부분이 마감 시간에 임박해야 글을 주는 것과 달리 나는 미리 보냈기 때문에 내 글을 수정해야 할 경우 나와 상의할 충분한 시간 여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대개 너더댓새 전에는 탈고하고 거짓말 조금 보태면 적어도 50번은 고치고 다듬고서야 글을 보낸다.
나는 우리 사회에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쓰는 사람이다.
나는 글만 많이 쓰는 게 아니라 강연도 많이 한다.
한때 '국민 강사'라는 별명도 얻었듯이 매년 크고 작은 대중 강연을 적어도 100회 이상 하며 산다.
강연 전에 나를 소개하는 분들은 종종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분을 모셨다"라는 너스레를 떴다.
내가 공식적으로 이 땅에서 제일 바쁜 사람으로 승인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하루 일정을 정식 근무시간, 즉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욱여넣으려고 일과가 늘 빠듯하다.
나는 글만 미리 쓰는 게 아니라 강연 자료도 미리미리 준비해서 보낸다.
결과적으로 내가 기획해 꾸리는 삶은 실제 삶보다 대충 1주일 정도 앞서간다.
매사를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의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이 정해준 일정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끌고 갈 수 있어 나는 늘 여유롭다.
숙론 중에서
최재천 글
첫댓글 끌려가지 않고 끌고가겠습니다~😁
내가 내 삶을 끌고 갈수 있어 나는 늘 여유롭다는 글귀가 자꾸만 맴도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요!!
홀로움~~재충전의 시간이네요~~
오늘도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끌고가기위해 치열해진다~^^공감합니다
자발적외로움도 필요한 요즈음 좋은글입니다~^^
홀로움의 단어가 가슴에 확 다가오는 비온 날의 아침입니다.좋은글 감사합니당 ^^
제주지부장님덕에 카페방문이 즐거워지네요~❤️❤️❤️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