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직지사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임진왜란때
전소되었다가 1735년(영조11년)에 중건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든 번뇌를 쓸어버리고 깨달음을
얻었기에 위대한 영웅이라 해서 대웅(大雄)이라
일컬었고 그래서 이분을 모신곳을 대웅전이라 했다.
통일신라 때까지는 불상을 모신곳을 통칭해서 금당
(金堂)이라 했는데 고려시대 이후부터 사찰 건축물이
세분화되면서 대웅전이란 말이 등장했다.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밖에서
볼 때 우측이 약사여래, 좌측이 아미타부처님이시다.
이 세분을 함께 모신 경우 그 격을 높혀 대웅보전이라
한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부처님은 원래 인도 히말라야
산맥 아래 소국 석가국의 왕자로서 세속의 영화를
버리고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영웅이므로 다른
이름으로 대웅(大雄)이라 한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불전을 대웅전이라 한다.
아미타여래불: 아미타(阿彌陀)라고 하는 것은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 광명을 가진자”라는 뜻으로
서방정토의 극락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을 구제
한다는 큰 서원을 세운 부처로 광명의 끝을 이루 다 셀
수도 없다하여 무량수(無量壽)라고도 하며 아미타불
을 주존으로 모신 불전을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이라 한다.
이 부처를 믿고 염불을 외면 죽은뒤에 극락정토에 태어난다고 하여 가장 흔한 염불인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로 나타난다.
뒤로 보이는 후불탱화 3점은 1744년 완성되었으며
보물 670호로서 벽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천에 그려진
걸개그림이다. 대웅전 내부의 천정에는 연꽃무늬를
비롯한 화려한 단청조각과 함께 닫집 또는 감실
(監室)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형태의 모형이 있는데
이것은 세속의 왕인 임금과 출세간의 법왕인 부처님의
정수리 위에 설치되는데 통상 절의 닫집이 궁궐의 것보다
훨씬 화려하다
대웅전 시우도(十牛圖)
대웅전 외벽에는 선종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소와 동자
승이 등장하는 열폭의 그림을 볼수있는데 이는 인간의
본성을 찿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찿고
기르는 과정에 비유해 묘사한 선종화의 화제 가운데
하나이다.
직지사 비로전
고려 태조때 능여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진 비로전은
천불상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천불전(千佛殿)으로
불리며 임진왜란때 일주문,천왕문과 함께 병화를
모면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불전으로는 유일하게
소실을 면하였다.
비로전내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좌우에 약사
여래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천불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천불 중에서 현재의 천불을 신앙하는 것이며
14개의 나무계단에 경주 옥돌로 만들어진 천개의
서로 다른 표정을 가진 불상이 모셔져있다.
임진왜란 때 295구가 분실되었던 것을 후에 보완
했다고 한다.천불 가운데 발가벗은 동자상이 비로자
나불 뒤에 서있는데 법당에 들어가서 참배할 때 첫눈
에 바로 이 동자상이 보이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진다.
추풍령휴게소
소재지 : 경북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옛부터 추풍령고개는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준령으로, 억새꽃 핀 둔덕에 앉아 한무제(漢武帝)의
<추풍사(秋風辭)>를 읊조리던 낭만이 어린 지역으로,
임진왜란의 충신 장지현(張智賢)의 호국정신을
되새기며 조국의 산하를 생각한 격전지이기도 하다.
영남 제일문
소재지 : 김천시 대곡동
영남제일문은 높이 12m, 길이 50m의 철근콘크리이트
구조물에 맞배 및 팔작기와지붕 다포식 한식 구조로
건립되었으며 목조부분에는 금모로 단청으로 마무리한
전통 한식구조양식이다.
제일문 중앙에 걸려있는 길이 7m, 높이 1.5m의 嶺南
第一 門 현판은 우리나라 서예 대가이신 여초 김응현
선생이 직접 글을 쓰고 지역출신이자 각장자 이수자인
고원 김각한씨가 서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