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의 역군으로서 숨어 있는 바이어를 찾거나 해외여행 바람을 타고 외국을 많이 다녔다. 그러나 장거리 비행의 권태로움과 체력의 쇠락으로 인한 무력감 때문에 이제는 해외여행을, 자제를 하고 국내 여행을 자주 다닌다. 방방곡곡을 유람하다 보면 어느 곳, 하나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만나고 경이로운 숲과 골짜기를 만난다. 비단을 아름답게 수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인 금수강산, 수많은 강산 중에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는 그곳을 잊을 수가 없다. 금수강산 중의 금수강산 금강산, 가슴 뭉클한 민족의 산, 아무 때나 쉽게 갈 수 없는 한 맺힌 산, 꿈속에라도 가고 싶은 아름다운 산이다.
현대에서 금강산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2003년도부터는 육로여행이 가능했다.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남북 평화의 이정표가 세워지는 것 같아 만사를 제쳐놓고 금강산으로 회갑기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서류 심사를 거쳐 회사 이름과 성명이 새겨진 명찰을 목에 걸고 강원도 고성에서 버스를 타고 남북 분계선을 넘었다. 북한 인민들이 빤히 쳐다보며 검문을 할 때는 간이 콩알만큼이나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금강산행 버스에 올랐다. 차창으로 보이는 북한의 산들이 모두가 민둥산이다. 청산은 간 곳이 없고 발가벗은 산맥이 모두가 황갈색이다. 이따금 씩 군용차량이 인민군을 가득 싣고 지나간다. 아, 여기가 북한 땅. 길은 지척이건만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육십 년이 걸려 오게 되다니. 분단의 아픔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온정리 장전항 바다위에 떠 있는 해금강 선박 호텔에 짐을 풀었다. 휘둥그레 사방을 둘러본다. 좌측으로는 장엄한 집선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노적봉이 우뚝 솟아있다. 신비롭고 수려한 풍광에 가슴이 심하게 진동한다. 온정 각에서 본토 평양냉면을 맛나게 먹고 쿵쾅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관광길에 나섰다. 차도 양쪽으로 금강송이 줄을 섰다. 북한 말투였지만 버스 안내양의 상냥한 멘트와 활짝 핀 미소는 움츠린 마음을 녹여 주었고 한민족 한 핏줄이라는 생각이 조마조마한 가슴을 열어 주었다.
바다 풍경의 극치 해금강보다 산수의 극치인 만물상 코스를 택했다. 신선이 내려와 굳어졌다는 삼선암을 지나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에 올랐다. 천태 만상의 일만 이천 봉이 구름을 타고 중천에 떠 있다. 주봉인 비로봉을 필두로 하여 열량 봉 옥녀봉 상릉 봉이 창공으로 솟아오른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만물상, 과히 절경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황홀감에 눈물이 핑 돈다. 감정이 심하게 솟구치면 감탄사마저도 숨을 죽인다. 모두가 무아지경이다.
목화솜 같은 솜구름이 능선을 타고 강강술래를 하는 일만이천 봉을 만끽하고 아홉 마리의 용이 노닐었다는 구룡폭포로 발길을 돌렸다. 비단필을 주렁주렁 드리운 것 같은 화강암 절벽을 타고 은빛 물결이 물안개 속으로 우렁차게 흘러내린다. 우레와 같은 폭포 물소리, 심산유곡을 타고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장엄한 풍경은 과히 팔선녀가 홀딱 반해 상팔담 에서, 목욕을 할 만큼 비경 중의 비경이었다.
안내원 아가씨가 내 목에 걸린 명찰을 보고 뭐 하는 회사냐고 물었다. 수출하는 회사라고 했더니 “텔레비전은 LG가 좋아요, 삼성이 좋아요?” 하며 묻는다. 어느 나라로 무엇을 수출하냐고 졸졸 따라다니며 자구 자꾸 묻는다. 그곳은 북한 땅, 잘못 말하면 잡혀갈까 봐 두려움이 도져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생긋생긋 웃는 모습이 천연했는데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반공 이념이 그녀를 따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북한 명승지에는 요소마다 붉은 글씨로 김일성 숭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곳은 성역이고 통제 구역이다. 천선대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비경에 넋을 잃고 그만 통제구역 안으로 발을 헛딛고 말았다. 보초를 서고 있던 감시원이 달려왔다. “싸게 싸게 나오시오.” 아내가 급하게 나를 끌어당기며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고 읍소를 한다. 성역을 침범하면 주석 모욕죄로 벌금을 부과했던 그 시절, 아내의 간청이 감시원의 마음을 녹였는지 훈방 조치를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면서도 가슴 시린 민족의 자화상이다.
겸재 정선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담고 싶어 했던 산수의 절경 금강산, 신라의 마지막 왕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에 입신할 때 머리를 삭발했다는 단발령고개가 신라 천년의 슬픔으로 다가왔다. 비단옷이 부끄럽다며 찢어버리고 삼베옷을 걸쳤다 하여 후세에 마의태자로 불리운다. 고려의 쌀밥을 먹느니 차라리 신라의 칡을 먹겠다고 하는 충절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개성공단과 함께 남북협력의 상징사업이었던 금강산 관광은 2008년 초여름 날에 한방의 총성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새벽 산책을 하던 남한 여성을 인민군 초병이 총질을 한 소위 박왕자 사건이다. 내가 금강산을 다녀온 지 삼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남은 여생이 길지 않아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금강산, 십 오 년 전 그날의 그 순간 그 풍경들이 꿈만 같아라.
그 곳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처음보다는 보다 열린 마음으로 기암절벽에 아슬하게 기대 선 나목 한 그루, 영겁의 세월이 묻어나는 돌부리 하나, 일만이천 봉에 떠가는 구름 한 조각 이라도 놓지지 않고 마음에 담고 사진에 담아오고 싶다. 구룡폭포에서 그때 그 안내양을 다시 만나면 다정한 음성으로 말해주고 싶다. 텔레비전은 LG든 삼성이든 모두가 초일류 제품이라고.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민족통일의 그 날까지 힘들어도 참고 견뎌달라고, 그날이 오면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희망의 찬가를 목 놓아 부르자고.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