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北개입 황장엽 명단 YS 묵살, -
[단독] “5·18 北개입 황장엽 명단 YS 묵살, CIA는 알았다”
마이클 이 前 CIA 요원 증언
4월28일 발행된 <주간 한미일보> 7호에 게재된 커버스토리입니다. [편집자 주]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이(93·Michael P. Yi)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박사가 지난달 17일 <한미일보>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박사가 작성에 관여한 1980년 5월22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기밀해제 보고서(가운데 아래)에는 계엄사령관의 협상 객체인 시민그룹에 ‘김대중 추종자들(Associates of Kim Dae Jung)’이 섞여 있고 전라도의 ‘내란(insurrection)’이 계엄사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기술돼 있다. 또한 군이 정전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반란(rebellion)’을 잠재우기 위해선 무력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고 CIA가 보고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인 북한 로동신문 1980년 5월22일자에는 광주 시위대-계엄군의 대치 장면과 무기고 습격 및 피탈 장비 현황이 구체적으로 보도돼 있다. 당시 보도통제로 한국 언론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위-오른쪽 아래) 왼쪽 사진은 5·18 기록관 소장 시위대의 모습.
마이클 이 前 CIA 요원 증언
“주한美대사관서 탈북자 심문 때 ‘일치된 증언’ 확보”
“황장엽이 바친 명단, 김영삼이 흙 속에 묻어 버렸다”
김경재 “김영삼 묵살 얘기 들어봤지만 확인은 못 해”
박정희 서거 틈타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이 진두지휘
잠복 간첩들에 1월 지령… 2·3인조 공작대 순차 침투
군인도 일부 차출… 대부분이 고도훈련 받은 민간인
“북한 5월27일 남침 기도… 전남도청 수복되자 포기”
부마사태 때 내려온 간첩들 잔류했다 광주 즉각 합류
광주시민 폭도 매도 안 되지만 反민족세력 가려 내야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내려온 북한 공작대 명단을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제출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묵살한 것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알고 있었다는 전직 한국계 CIA 요원의 증언이 나왔다.
40년간 한국계 미국 정보요원으로 굵직한 대공(對共)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누구보다 가까이 접근하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직접 조사했던 마이클 이(93·Michael P. Yi) 미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박사는 지난 17일 <한미일보>와 만나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며 이같이 폭로했다.
(※ 이 박사는 ‘Michael Yi’를 사용하므로 마이클 이로 번역한다. ‘Lee’를 ‘리’로 번역해 온 한국의 관행에 따라 ‘마이클 리’로 기존에 소개됐던 인사와 동일 인물이다.)
이 박사는 “1985년도부터 1995년까지 10년 동안 서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정무관과 북한 담당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으로 일할 때 많은 탈북자를 심문할 때 일치된 사건이 OO명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라고 북한 공작대 규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비보도)’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밝혀진 사실이 있다”며 “황장엽이 내려와 김영삼에게 바친 OO명단을 제공했는데 김영삼이 국민에게 발표하지 않고 흙 속에 묻어버린 걸 우리 CIA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황장엽 비서에 얽힌 내용을 최근 알게 된 경위와 출처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답했고, 정보 소식통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지 질문하자 “그렇다”고 했다. 26일 현재 미 국무부 또는 CIA에서 새롭게 기밀 해제된 문건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간 7호 마감일 기준. 온라인 보도 시점인 5월5일에도 같음. 편집자 주)
이 대목에서 이 박사는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특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가 OO명의 가묘(假墓·가짜 묘)를 목격했다고 했다.
김 전 총재는 지난 1999년 김대중 특사로 북한에 갔을 때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서 ‘광주에서 전사한 인민군 애국열사들의 가묘’를 봤다고 연합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서옥식 대한언론인회 당시 부회장 겸 편집위원에게 증언했고, 이 내용은 2023년 5월 ‘KNews’를 통해 처음 보도됐다.
기자는 김 전 총재에게 마이클 이 박사가 밝힌 규모에 대해 크로스 체킹을 요청했으나 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김 전 총재는 “내가 본 (남파 북한군) 가묘는 9~11기 정도”라고 했다.
김경재 전 총재는 “황장엽 명단을 김영삼이 묵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나는 사실 확인은 안 해봤다”면서도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 관해서는 황장엽 전 비서가 망명했던 “그 무렵”이라고 오래 전 얻은 주장이었음을 시사했다.
1980년 5월22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위)에 계엄사령관의 협상 객체인 시민그룹에 ‘김대중 추종자들(Associates of Kim Dae Jung)’이 섞여 있다고 기술돼 있다. 전라도의 ‘내란(insurrection)’이 계엄사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왼쪽 아래), 군이 정전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반란(rebellion)’을 잠재우기 위해선 무력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고도 CIA는 보고(오른쪽 아래)했다. CIA 보고서 캡처
앞서 마이클 이 박사는 지난 2023년 10월 기자와의 <스카이데일리> 인터뷰에서 1980년 5·18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기화로 북한 노동당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이 이듬해 1월 지령을 내렸고 2·3인조로 나뉜 민간 공작대가 육·해상으로 광주에 침투한 뒤 대한민국 국가 전복을 목표로 고정간첩과 합세한 북한의 ‘대남공작’이었다는 취지로 증언한 바 있다.
40년간 CIA 등 미 정보당국에서 한국 담당 요원으로 근무한 이 박사는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과 김신조 1.21 사태, 미얀마 아웅산 테러 등 북한이 획책한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의 발단 경위와 배후를 파헤치는 데 깊이 관여했으며 5·18 역시 직접 조사한 뒤 워싱턴에 최초 보고한 미 정보당국의 핵심 ‘북한통’이었다.
“北 대남작전 구체화 첩보 입수… 미국은 이미 소요 예상했다”
마이클 이 박사는 “김중린이 한국에 있는 잠복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린 것은 1980년 정월(1월)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시점을 못 박았다. 북한의 지령 시점은 처음 공개됐다. 당시 김중린은 조선노동당 대남공작 총책이었고 김일성 주석과 지근거리에서 공작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잠복 간첩의 성격을 되묻자 “이미 침투해서 와 있는 간첩들이며 북한은 고정간첩과 잠복 간첩을 합쳐 ‘혁명역량’으로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초 지령이 하달된 뒤 몇 개월 동안 계속 2인조·3인조로 침투한 뒤 (남한에) 잠복해 있었던 간첩들”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5·18을 앞두고 북한의 침투 활동이 극성을 부렸다. 1980년 3월25일 포항 앞바다로 침투한 북한 무장간첩선 1척이 해군의 공격을 받고 침몰해 무장간첩 8명이 숨졌다. 이틀 전 3월23일에는 한강 하류 침투, 3월27일에는 강원도 침투 등 무장공비 출현이 빈발했다.
미 정보당국은 1979년 여름부터 북한의 특이동향을 일찌감치 포착했다. 이전부터 북한의 동태를 주시해 온 미국은 이 시기 북한이 남침에 대비한 특전대 훈련에 돌입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때만 해도 북한의 고질적인 남침 계획 정도로 파악한 당국은 김중린의 동태에 대한 첩보가 쌓이면서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정밀 경계했다고 한다.
마이클 이 박사는 “북한이 대남작전을 구체화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소식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며 “17공수여단과 특전대가 훈련해 온 데다 김중린이 지령을 내린 사실을 입수해 워싱턴에 곧장 보고했다”고 확인했다. 그의 보고로 미국 정부는 1980년에 남한에서 북한이 계획하고 지휘하는 소요가 있을 것을 이미 예상했다고 한다. “이 정보를 한국 정부도 공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는 언급했다.
일본 통일일보가 북한은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틈타 금년봄에 대량의 무장간첩을 남파, 지방도시의 방송국을 점령하는등 본격적인 대남게릴라활동을 벌일 계획으로 있으며, 지난 23일 한강에서의 무장공비 수중침투사건과 25일 포항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