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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존재하는가-프롤로그
바쁜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무 대신에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신속한 증명
무(nothing)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아무 법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칙도 무언가(something)이기 때문이다.
아무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nothing would be forbidden).
그래서 무가 존재한다면, 무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는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
증명 끝.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에 관한 짐 홀트와의 인터뷰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자신의 새 책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Why Does the World Exists?)
Q.
한 권의 책에 대해 더 야심찬 제목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이 탐구하는 문제를 어떻게 요약하시겠습니까?
A.
우주는 왜 모든 괴로움을 겪으며 존재하는 것일까요?
왜 무 대신에 무언가가 존재할까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것을 "철학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라고 불렀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는 세계의 현존이 경이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불가사의한 것은 세계에서 사물들이 어떠한지가 아니라,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는 이런 경이감을 공유하며, 그리고 저는 인간 정신이 존재의 신비를 꿰뚫고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Q.
당신은 스스로 이 문제를 처음 생각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A.
저는 종교적 가정에서 자랐고, 그래서 판에 박힌 대답은 신이 세계를 만들었고, 신 자신은 자체의 본성에
의해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십대 때 저는 이런 신학적 이야기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실존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어
Q.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 철학적 접근방식에 더 끌린다고 느끼십니까, 아니면 과학적 접근방식에 더 끌린
다고 느끼십니까?
달리 말하자면, 최종적인 대답에 대한 탐색에 비하여 얼마나 많이 그것이 요구하는 즐거운 사고실험들
때문에 그 질문에 흥미를 느끼십니까?
A.
이 책에서 저는 둘 다를 같은 정도로 다루었습니다.
우리 우주 같은 우주가 어떻게 거의 무에서 발생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 현대물리학이 말해주는 것은
정말로 저를 매혹시켰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관찰, 그리고 그것에 바탕을 둔 이론들은 존재의 신비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 당신을 딱
그만큼만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데릭 파핏(Derek Parfit)이 제게 말했듯이, 당신이 실재를 지배하는 최고 원리를
찾고 있다면, 철학과 과학 사이에는 명료한 경계가 없습니다.
Q.
당신은 "궁극적 기원 문제는 형이상학적 문제인데, 과학이 물을 수는 있지만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작가 로이 에이브러햄 바기즈(Roy Abraham Varghese)의 글을 인용합니다.
이 책을 저술한 이후에 당신은 그 말에 동의하십니까?
A. 바기즈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종교를 위한 신비를 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에 흡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저는 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가 자신의 책 <무로부터의 우주(A
Universe from Nothing)
Q. 이 책은 제가 터무니없는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당신이 이 책 제목과
관련된 문제에 "정신병 환자들이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고 적고 있을 때 그렇습니다.
이 문제를 너무 오래 동안 숙고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위험합니까?
A. 영국의 한 천문학자가 "왜 무 대신에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를 숙고하는 것은 "정신을 갈가리
찢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하이데거를 혼란시켰던 것처럼 보입니다.
1930년대에 그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독일인들에게 존재를 다시 알릴"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비슷하게 미친 듯한 것을 하나도 말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Q.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이 결정적인 대답을 제공할 것입니까?
A.
그것은 빅뱅이 영원한 다중 우주에서 일어난 국소적인 한 사건일 뿐이고, 공간과 시간 자체가 더 근본적인
실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나,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와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 둘 다가 제게 강조했듯이, "최종 이론"조차도 그 이론이 왜 그런 형식을 취해야 했는지, 또는 그것이 어떻게 세계가 존재하도록 이끌
었는지 걸코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Q.
그가 죽기 대략 일 년 전에 당신과 대단한 인터뷰를 가졌었던 존 업다이크(John Updike)는 빅뱅을 받아
들이는 것은 종교적 설명들을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신앙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늘날 끈 이론 같은 어떤 과학적 접근방식들이 종교에 의해 요구되는 신앙과 유사한 신앙에 의존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저는 그 점에 있어서 업다이크가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끈 이론 같은 사변적인 것도 신앙이 아니라 희망, 즉 언제가 경험적으로 시험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에 근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끈 이론이 물리학의 막다른 길로 판명될지라도, 그것은 순수 수학에서 많은 진보를 낳았습니다.
Q.
신의 존재를 믿는 영국의 철학자 리처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과 대화를 나눈 후에 당신은 "확산된
만족감에 휩싸여" 거리를 정처없이 내려옵니다.
다른 대답들의 근거가 아무리 과학적이라도 그것들이 똑같이 증명불가능할 때 그것이 제공하는 가능한
만족감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A.
이 책에서 제가 시사했듯이, 그 만족감은 스윈번과 헤어진 후에 옥스퍼드 맥줏집에서 들이켰던 시라즈
포도주와 더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윈번 자신의 종교성은, 그에게 만족감을 제공할 것이지만, 종교적인 지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
습니다.
당신은 그의 전제들을 의문시하거나 거부할 수 있지만―저는 확실히 그랬습니다―그것들은 희망사항이나
값싼 만족감에 빠져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Q.
제가 엄청나게 감명을 받은 당신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장이 있습니다.
당신의 책에서 제기되는 거대한 의문들과 관련하여 도대체 그 일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A.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과 운이 맞습니다.
우주적 현존과 개인적 실존 둘 다 극히 불안합니다.
제가 자아와 죽음에 관한 이 책의 마지막 장들을 적고 있을 바로 그 무렵에 제 어머니가 뜻밖에 돌아가
셨을 때 저는 이것을 자각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저는 병실에서 제 어머니와 함께 홀로 있었습니다.
자아―당신 자신의 존재를 낳았던 바로 그 자아―가 무로 명멸하는 것을 보는 것은 존재의 기묘함을 새롭게
느끼는 것입니다.
Q.
저는 이 책에 참고문헌 목록이 없다는 점에 실망했는데, 당신은 현재 제가 고르는 데 관심이 있는 대략
300에 이르는 작가들과 저작들을 언급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반 독자를 위해, 이 책에서 언급되었던 책들 가운데 다음에 읽을거리로서 두세 권을 추천한다면 어떤
책들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우주의 존재에 관한 물리학자의 시각에 대해서는 알렉스 빌렌킨(Alex Vilenkin)의 한 세계 속의 많은
세계들(Many Worlds in one)신은 존재하는가?(Is There a God?)무한한 정신들(Infinite Minds)왜 무언
가인가? 왜 이것인가?(Why Anything? Why This?)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
우리 우주가 아무튼 어떤 지적인 존재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노골적으로 이상하지는 않더라도
원시적인 듯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적으로 일축하기 전에, 나는 우리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그 어떤
다른 과학자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한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에게 문의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린데는 1990년에 미합중국으로 이민하여 현재 스탠퍼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러시아인 물리학자이다.
모스크바에서 여전히 청년이었던 시절에 그는 세 가지 성가신 의문―무엇이 폭발했는가?
그것은 왜 폭발했는가? 그리고 그것이 폭발하기 전에는 무엇이 진행되고 있었는가?―에 대답하는 새로운
빅뱅 이론을 고안했다.
"혼돈 인플레이션(chaotic inflation)"이라고 불리는 린데의 이론은 공간의 전체 모양과 은하들의 형성을
설명했다.
또한 그것은 1990년대에 COBE 위성이 관찰했던 빅뱅의 잔류물인 배경 복사의 정확한 형태를 예측했다.
린데 이론의 흥미로운 함의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는 우주를 창조하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주적 규모의 자원도 요구되지 않으며, 초자연적인 능력도 요구되지 않는다.
우리 문명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지는 않는 문명의 누군가가 실험실에서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흥미를 끄는 생각을 낳는다.
우리 우주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가?
[...]
"제가 혼돈 인플레이션 이론을 고안했을 때, 저는 우리 우주와 같은 우주가 시작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것
은 수십 만 분의 일 그램의 물질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린데는 러시아어 억양의 영어로 내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바라보는 수십 억의 수십 억 개의 은하들로 폭발하는 작은 덩어리의 진공을 만들
어내는 데 충분합니다.
사기를 치는 듯 보이겠지만, 그것이 인플레이션 이론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중력장의 음의 에너지로부터 생성됩니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가 실험실에서 우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신처럼 될 것입니다."
[...] 그는, 최소한 원칙적으로, 이런 실험대 위에서의 우주 생성 시나리오가 실행가능하다고 내게 단언헀다.
"제 증명에는 몇 가지 간극이 있습니다."
그는 인정했다.
"그러나 제가 증명했던 바―그리고 이 문제를 생각했던 앨런 구스[인플레이션 이 론의 공동개발자]와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는 우리 자신의 우주가 그냥 그 일을 하고 싶었던 다른 한 우주에 사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나는 이 도식에 어떤 장애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실험실에서 빅뱅을 시작했다면, 여러분이 만들어낸 아기 우주가 여러분 자신의 우주로
팽창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들을 무너뜨리는 등의 사태를 일으키지 않을까?
린데는 그런 위험은 전혀 없다고 내게 단언했다.
"새로운 우주는 그것 자체 속으로 팽창할 것입니다."
그는 말했다.
"그것의 공간은 매우 구부러져서 창조자에게 그것은 기본 입자만큼 매우 작게 보일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결국 창조자 자신의 세계에서 전적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 린데의 창조자는 볼테르와 미합중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선호했던 이신론적 신 개념―우리 우주를
작동시켰지만 그 후에 그것이나 그것의 생명체들에 더 이상 아무 관심도 갖지 않는 존재자―과 매우 흡사
한 듯 보였다.
"당신은 핵심을 포착했습니다."
재미있는 듯이 약간 콧소리를 내며 린데가 말했다.
"처음에 저는 창조주가 새로운 우주 속에 정보―그것의 생명체들에게 어떻게 행동할지 가르치고, 그들이
자연 법칙들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를 송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아기 우주가 순식간에 풍선처럼 폭발한다고 말합니다.
창조자가 풍선 표면에 "내가 너를 만들었다는 것을 제발 기억하라"와 같은 것을 쓰려고 했다고 가정합
시다.
인플레이션적 팽창 때문에 이 메시지는 기하급수적으로 거대해질 것입니다.
한 글자의 매우 작은 구석에서 살고 있는 새로운 우주의 생명체들은 전체 메시지를 결코 읽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린데는 창조자와 창조물 사이의 다른 한 통신 채널―그가 말할 수 있는 한, 가능한
유일한 것―에 관해 생각했다.
창조자는, 올바른 방식으로 씨앗 우주를 조작함으로써, 자신이 생성하는 우주의 어떤 물리적 매개변수들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전자 질량과 양성자 질량의 수치 비가 얼마일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상수라고 불리는 그런 수들은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임의적인 듯 보이는데, 왜 그것들이 어떤 다른
값이 아니고 지금의 값을 취해야 하는지 명백한 이유가 전혀 없다. [...]
그러나 창조자는, 이런 상수들에 대해 어떤 값들로 결정함으로써, 우주의 바로 그 구조 속에 미묘한 메시지를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린데가 분명히 즐기면서 지적했듯이, 그런 메시지는 물리학자들만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농담을 하고 있었을까?
"당신은 이것을 농담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는 말했다. "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왜 그렇게 기묘한지, 왜 그렇게 완전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것입니다.
증거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신성한 존재자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물리학자 해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철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린데의 작은 이야기는 우리 우주 배후에 있는 창조력이, 만약에 있다면, 전통
적인 신의 이미지―전능하고, 전지적이고, 무한히 자비롭고, 기타 등등―에 부합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의
위험을 강조합니다.
우리 우주의 원인이 지적인 존재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안쓰러울 정도로 무능력하고 오류를 범하는 존재자, 전적으로 평범한 창조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우주생성적 과업을 실패할지도 모르는 그런 종류의 존재자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정통 신자들은 린데의 것과 같은 시나리오에 이렇게 말함으로써 항상 대응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 물리학자 해커를 창조했습니까?" 위로 끝까지 올라갔을 때 그것이 해커가 아니기를 희망
합시다.
"
무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여행
"
영원하고 보편적인 듯 여겨지는 의문에 대해, 근대 시대까지 아무도 명시적으로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고 묻지 않았던 것은 기묘하다.
그 의문을 참으로 근대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의 "무(無)"라는 부분일 것이다.
전근대적 문화들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나름의 창조 신화가 있지만, 그런 신화들은 결코 순전한 무
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실재가 비롯된 어떤 태초의 존재자들 또는 재료를 항상 전제한다. [...]
세계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창조 신화가 전혀 없는 문화들은 드물지만 알려져 있다. [...]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이론은 우주생성론(cosmogony)이라고 불린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창조 신화들에 의해 예증되는 신화 서사시적 변양태에 대립되는 합리적 우주생성론의
선구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왜 도대체 무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결코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우주생성론들은 항상 어떤 종류의 출발 물질―일반적으로 꽤 혼돈스러운―을 포함했다.
이런 원시적 혼돈에 질서가 부과되었을 때, 즉 카오스가 코스모스가 되었을 때, 자연 세계가 생성되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
이 원초적 혼돈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그리스 철학자들은 다양하게 추측했다.
탈레스의 경우에, 그것은 물, 일종의 근원적 대양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경우에, 그것은 불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경우에, 그것은 더 추상적인 것, "무한정한 것"이라고 불리는 미결정적 물질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 그것은 전과학적 공간 관념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무형의 기체(基體)
였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근본 물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관해 그렇게 많이 걱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영원하다고 가정되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확실히 무(無)―그리스인들은 생각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관념―가 아니다.
또한 무(無)는 아브라함적 전통에도 이질적이었다.
창세기는 무(無)가 아니라 "형상과 공허가 없는" [...] 흙과 물의 혼돈으로부터 세상을 창조하는 신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기독교 시대 초기에 새로운 사유 방식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신이 세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종류의 재료를 필요로 했다는 관념은 무한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창조
능력을 한정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삼 세기 무렵에, 교부들은 본원적으로 새로운 우주생성론을 제시했다.
세상은 그것을 구성하는 그 어떤 선재하는 재료 없이 오직 신의 창조적 말로써 생성되었다고 그들은
주창했다.
이런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교리는 나중에 이슬람 신학의 일부가 된다[...].
또한 그것은 중세 유대 사상에도 편입된다. [...]
신이 "무(無)로부터"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無)를 신성한 것들과 동등한 수준에 있는 하나의
존재자로 격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 무언가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 중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렇게 역설했다.
그래도,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교리는 무(無)라는 관념을 진정한 존재론적 가능성으로 인정하는 듯
보였다.
그것 덕분에 왜 도대체 무가 아니고 세계가 존재하는지 묻는 것이 개념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리고 몇 세기가 지난 후에 마침내 누군가가 물었는데[...]
그는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miz)였다.
그 해는 1714년이었다.
그때 라이프니츠는 육십팔 세였으며, 그의 터무니 없이 생산적인 긴 경력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뉴턴과 같은 시기에 그리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고안했다.
그는 단신으로 논리학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무한히 많은 "모나드"라고 불리는 영혼 같은 단위들과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들 가운데
최선의 것"이라는 공리[...]를 기반으로 하는 환상적인 형이상학을 만들어내었다. [...]
라이프니츠는 건강이 쇠약해지고 있었다. 이 년 내에 그는 죽을 것이다[...].
라이프니츠가 "이성에 근거한 자연과 은총의 원리
라이프니츠에게 표면상의 대답은 쉬웠다. 승진을 이유로 그는 항상 종교적 정통을 따르는 척했다.
따라서 그는,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이유는 무한한 선함에 의해 고무되어 자신의 자유 선택을 통해 세계를
창조했던 신이었다.
그런데 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설명은 무엇이었던가? 라이프니츠는 이 의문에 대한 대답도 갖추고 있었다.
우연히 존재하는 우주와 달리, 신은 필연적인 존재자이다.
그는 자신 속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포함하고 있다.
그의 비존재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제기되자마자 해결되었다.
우주는 신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신은 신 때문에 존재한다.
신만이 존재의 불가사의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고 라이프니츠는 공표했다.
그러나 존재의 불가사의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해결책은 오랫동안 효과가 있지 않았다.
십팔 세기에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필연적인 존재자"라는
관념을 존재론적 사기라고 공격했다.
확실히 그것들의 존재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존재자들―예를 들면, 네모난 원―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존재자의 존재도 순수한 논리의 문제로서 보증되지 않는다는 점에 흄과 칸트는 동의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고 흄은
적었다.
"그러므로 그것의 비존재가 모순을 함축하는 그런 존재자는 전혀 없다." 신을 포함하여.
그런데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적으로 새로운 형이상학적 가능성이 제시된다.
절대적 무(無)―아무 세계도 없고, 신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는―의 가능성. 그렇지만, 기묘하게도, 흄도
칸트도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흄의 경우에, 이 의문에 대한 제안된 그 어떤 대답도 "그저 궤변이고 착각"일 것인데, 그것은 결코 우리
경험에 근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경우에, 존재 전체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는 우리가 우리의 경험 세계를 구성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들―인과율과 시간 같은 개념들―을 이 세계를 초월하는 실재, 즉 "물자체의 실재"로 부당하게 확장
하는 것을 부득불 포함할 것이다.
그 결과는 오류와 모순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칸트는 생각했다.
아마도 그런 흄적인 압박과 칸트적인 압박에 의해 억제당했던 후속 철학자들은 대체로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대면하기를 피했다.
존재의 불가사의가 "형이상학의 시계가 계속 작동하게 하는 균형 바퀴"라고 공표했던 위대한 비관주의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그럼에도 그것을 해결한 척하는 자들을 "바보들", "공허한 허풍선이들",
그리고 "사기꾼들"이라고 불렀다.
독일의 낭만주의자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은 "모든 철학의 주요 기능은 세계의 존재에
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셸링은 곧 존재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최대한 말할 수 있는 것은 세계가 파악할 수 없는 도약으로 영원한 무의 심연에서 발생했다는 것
이라고 그는 느꼈다.
헤겔(Hegel)은 "존재의 무로의 소멸과 무의 존재로의 소멸"에 관한 많은 모호한 산문을 저술하였지만,
그의 변증법적 조작은 풍자적인 덴마크 사상가 쇠얀 키르케고르(Soren Kierkegaard)에 의해 "향료 판매
상의 설명"에 불과한 것으로 일축당했다.
이십 세기 초에, 주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덕분에, 존재의 불가사의에 대한
관심의 온건한 부활이 있었다.
"나는 왜 우주가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고 베르그송은 자신의 1907년 책 창조적 진화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도 사이비 의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흥을 깨는 결론은 확실히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아무 인상도 남기지 않았는데,
그에게 무(無)란 너무나 실재적이고, 소멸로 존재의 영역을 위협하는 일종의 부정하는 힘이었다.
1935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행해졌던 일련의 강연들의 바로 그 시작에서 하이데거는 "왜 도대체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모든 의문들 가운데 가장 심층적이고", "가장 광범위
하며",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강연이 진행됨에 따라 하이데거는 이 의문과 관련하여 무엇을 행했는가? 많이 행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것의 실존적 비애감에 관해 장황하게 말했다.
그는 아마추어 어원학에 손을 대어 "존재"를 가리키는 독일어 낱말인 자인(Sein)과 관련된 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 낱말들을 수집했다.
그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과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시적 미덕들에 관해 열광적으로 이야기했다.
마지막 강연의 결론에서 하이데거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은 기다릴 수 있다는 것, 심지어 한
평생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의문의 여지 없이, 유럽 대륙에서 이십 세기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였다.
그러나 영어권 세계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지배적이었던 사람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었다.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는 같은 해(1889)에 태어났다.
성격에 있어서 그들은 꽤 많이 대립적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용감했고 금욕적이었던 반면에, 하이데거는 변덕스럽고 허영심이 강했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이 존재의 불가사의에 매혹당했다.
"불가사의한 것은 세계 속에서 사물들이 어떠한지가 아니라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 비트겐슈타
인은 생전에 그가 출판했던 유일한 저작 논리-철학 논고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충동을 "대단히 존중했"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그 의문이 무의미하다고 믿었다.
<논리-철학 논고>의 명제 6.5에서 그는 그 점을 또렷히 서술한다. "
그 수수께끼는 존재하지 않는다."
[...]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으로 영미의 많은 철학자들에게 존재의 불가사의는 대단한 시간 낭비인 듯
보였다.
그들의 부정적인 태도를 전형적으로 나타낸 철학자는 A. J. "프데디" 에이어(A. J. "Freddy" Ayer)였는데,
그는 논리실증주의의 영국인 지지자였고, 형이상학의 공공연한 적이었으며, 자칭 데이비드 흄의 철학적
상속자였다.
1949년 BBC 라디오 방송에서 열렸던 신의 존재에 관한 토론에서 에이어는 예수회 신부이자 철학사가인
프레드릭 코플스톤(Frederick Copleston)과 논쟁을 벌였다.
에이어-코플스톤 논쟁의 많은 부분이 [...]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과 관련된
것이었다.
코플스톤 신부의 경우에, 이 의문은 초월적인 것에 이르는 통로, 즉 신의 존재가 어떻게 "현상에 대한 궁극
적인 존재론적 설명"인지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그의 무신론자 적수였던 에이어의 경우에, 그것은 비논리적인 헛소리였다.
[...]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의 의미성에 관한 에이어와 코플스톤의 의견 불일치는
결국 철학의 바로 그 본질을 둘러싼 논쟁이 되었다.
그리고 최소한 영어권 세계에서는, 대다수의 철학자들이 이 논쟁에서 에이어를 지지했다.
정설에 따르면, 두 종류의 진리―논리적 진리와 경험적 진리―가 있었다.
논리적 진리는 낱말들의 의미에만 의존했다.
모든 총각들은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문장처럼, 논리적 진리가 표현하는 필연적인 것은 언어적 필연성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논리적 진리는 실재에 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험적 진리는 감각들에 의해 제공되는 증거에 의존했다. 경험적 진리는 과학적
탐구의 영역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과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인정되었다.
결국 과학적 설명은 실재의 다른 조각들의 견지에서만 한 조각의 실재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실재 전체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계의 존재는 단순한 사실일 수 밖에 없었다.
버트란트 러셀은 그런 철학적 합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우주란 그냥 존재할 뿐이라고 말해야 한다."
대체로 과학도 같은 의견이었다.
우주가 항상 존재했다고 가정한다면, 존재를 단순한 사실로 여기는 것은 꽤 편안한 태도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이 근대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들 대부분―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그리고 뉴턴을
포함하여―이 믿었던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란 영원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1917년에 그가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시공간 전체에 적용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들이 본원적으로 다른 것―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해야 한다―을 함측한다는 점을 깨닫고 당황했다.
이것은 그에게 기괴하다는 인상을 남겼고, 그래서 그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우주를 허용하도록 자신의
이론에 하나의 보정 요소를 덧붙였다.
대담하게 상대성을 자체의 논리적 결론까지 밀어붙였던 사람은 서품을 받은 성직자였다.
1927년에 벨기에 루뱅 대학의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itre)는 공간이 팽창하고 있는 아인슈타
인적 우주 모형을 고안했다.
과거로 추론함으로써 르메트르 신부는 과거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우주 전체가 에너지가 무한히 집중
된 원시 원자에서 비롯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제안했다.
이 년 후에 르메트르의 팽창하는 우주 모형은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에 의해 입증
되었는데, 캘리포니아 마운트 윌슨 천문대에서 얻었던 허블의 관찰 결과는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 있는
은하들이 사실상 물러나고 있다는 점을 확증했다.
이론과 경험적 증거 둘 다 같은 평결을 가리켰다.
우주는 시간적으로 갑작스럽게 시작되었음에 틀림없다.
성직자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창조에 관한 성경의 설명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자신들에게 굴러 들어왔다고 믿었다.
1951년에 바티칸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한 교황 피우스 7세는 우주적 기원들에 관한 이 새로운 이론은
"물질과 더불어 무로부터 빛과 복사의 바다가 터져나왔던 그 순간에 진술된 "빛이 있으라(Fiat lux)"는
최초의 말에 대한" 증거라고 공표했다.
"그러므로 창조는 시간적으로 일어났고, 그러므로 창조주가 존재하며, 그러므로 신이 존재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반대편 극단에 있던 사람들―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갈았다.
그것의 종교적 아우라는 제쳐놓고, 그 새로운 이론은 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공리들 가운데 하나였던
물질의 무한성과 영원성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모순되었다.
그 결과, 그 이론은 "관념론적인" 것으로 부정되었다.
마르크스주의적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그 이론의 개발자들을 "반역적인 것을 과학으로 사실상 바꾸고,
과학적 사실들을 가톨릭 교회에 편리한 결론들에 이르기 위해 과학적 사실들을 포기한 과학자들"이라고
비난했다.
비마르크스주의적 계보의 무신론자들도 저항적이었다.
"일부 젊은 과학자들은 이런 신학적 조류에 매우 화가 나서 자신들의 우주론적 원천을 그냥 차단하기로
결심했다"고 우주 팽창의 뛰어난 탐구자인 독일 천문학자 오토 헤크만(Otto Heckmann)이 언급했다. [...]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경은 이렇게 적었다. "내게 기원이라는 관념은 불쾌하다.... 나는 사물들의
현재 질서가 한 번의 폭발로 시작했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는다...팽창하는 우주는 기괴하고...믿을 수 없
으며...그것은 나를 맥빠지게 한다."
몇몇 신자 과학자들도 심란했다.
우주론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 경은, "케이크에서 튀어나오는 파티 걸"처럼 폭발이 세계가 시작하는
품위 없는 방식이라고 느꼈다.
1950년대에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호일은 그 가상적 기원을 "빅뱅"이라고 빈정대듯이 불렀다.
그 술어가 남았다.
1955년에 죽기 얼마 전에 아인슈타인은 빅뱅에 관한 자신의 형이상학적 거리낌을 극복해내었다.
그는 임시방편적인 이론적 장치로 그것을 교묘히 피하고자 했던 이전의 시도를 "내 경력에서 가장 큰 실수"
라고 언급했다.
호일과 나머지 회의주의자들의 경우에, 뉴저지 소재 벨 연구소의 두 과학자가 빅뱅의 메아리로 판명된
도처에 존재하는 마이크로파 소음을 우연히 탐지했던 1965년에 그들은 마침내 설득당했다. [...]
우주에 창조자가 있든 말든, 우주가 과거 유한한 시간―최근의 우주론적 계산 결과에 따르면, 137억 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발견은 우주가 존재론적으로 자기충족적이라는 관념을 비웃는 듯 보였다.
자체의 본성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영원하고 불멸의 것임에 틀림없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당한 듯 보인다.
이제 우주는 결코 이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애초의 빅뱅으로 단박에 생성되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주는 어떤 먼 미래에 소멸시키는 빅 크런치
(대수축)로 단박에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우리 각자의 삶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삶도 두 무(無) 사이의 단순한 간주곡일 것이다.
그러므로 빅뱅의 발견은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훨씬 더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주가 항상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면, 과학은 그것의 존재를 설명할 필요에 대면할 것"이라고 [...]
아르노 펜지어스(Arno Penzias)가 주장했다.
본래의 왜라는 의문이 살아있는 의문일 뿐 아니라, 이제 그것은 어떻게라는 의문―무(無)로부터 무언가가
어떻게 생성될 수 있었을까?―으로 보충될 필요가 있었다.
종교적 호교론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것 이외에, 빅뱅 가설은 우주의 궁극적 기원에 대한 새롭고 순전히 과학적인 탐구의 기회를 제공했다. [...]
결국, 이십 세기 물리학에서 두 개의 혁명적인 발전이 있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주가 시간적으로 기원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머지 하나인 양자역학은 훨씬 더 본원적인 함의들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라는 바로 그 관념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양자론에 따르면, 미시적 층위에서의 사건들은 우발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 [...]
이런 이유 때문에 우주의 씨앗 자체가, 초자연적이든 아니든, 아무 원인 없이 생성될 수도 있다는 개념적
가능성이 열렸다.
세계는 순전한 무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되었을 것이다.
모든 존재자는 공허 속의 무작위적인 요동, 무(無)에서 존재로의 "양자 터널링" 때문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정확히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때때로 "무(無) 이론가들"이라고 불리는 작지만 영향력이 있는
일단의 물리학자들의 연구 영역이 되었다.
형이상학적 대담함과 소박함이 뒤섞인 이들 물리학자들―스티븐 호킹을 포함하는―은 자신들이 여태까지
과학이 다룰 수 없다고 여겨졌던 불가사의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과학적 흥분에 고무되어 철학자들은 더 많은 존재론적 대담성을 보여왔다.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무의미한 것이라고 일축해버렸던 논리실증주의는
1960년대에 쇠퇴하였는데, 그것은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실행 가능한 구분에 이를 수 없는 자체적
무능력의 희생물이었다.
그 여파로, 형이상학―실재 전체를 특징짓는 기획―이 부활하게 되었다.
앵글로색슨 세계에서도 "분석"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 쟁점들과 씨름하는 데 더 이상 거북해 하지 않았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존재의 불가사의를 대면한 많은 직업적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대담한 인물은 2002년에 육십삼 세의 나이로 사망한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이었다.
자유방임주의의 고전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Anarchy, State, and Utopia)>의 저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노직은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그의 후기 저작 <철학적
설명들(Philosophical Explanations)>의 50쪽에 이르는 한 절을 그것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한 대답들에
할애하였다[...].
그는 가능한 모든 세계들의 동시적 존재를 허용하는 "다산성의 원리(principle of fecundity)"를 상정했다. [...]
오늘날 사상가들은 왜 무(無)가 아니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여전히 세 집단으로 나누어
져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비관주의자들"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결코 확실히 일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거부주의자들"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이유가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 바로 그 의문은 무의미
하다고 계속 믿고 있다.
이런 집단들 가운데 하나에 가입하기 위해 철학자나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자격이 있다.
예를 들면,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비관주의자들에 속하는 듯 보인다. [...]
"철학에서, 순수 논리는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데 무력하다."
그런데 여러분이 낙관주의자라고 가정하자.
존재의 불가사의에 대한 가장 유망한 접근방식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자의 필연적인 원인과 지속시키는 존재로서 신 같은 존재자에 기대는 전통적인 유신론적 접근
방식인가?
우주가 왜 공허로부터 느닷없이 생성되어야 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양자 우주론의 관념들에 기대는 과학
적 접근방식인가?
추상적 가치 고려들로부터, 또는 무의 순전한 불가능성으로부터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연역하고자
하는 순수하게 철학적인 접근방식인가?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우주적 이유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종류의 신비
주의적 접근방식인가?
짐 홀트(Jim Holt),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실존적 탐정 소설(Why Does the World Exist?: An Existential Detectiv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