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방해되는 건 상(相)·착(着)
수행자가 안식 끌려 놀아나면
정의 흥취로 사물 본질 못 봐
동요 없이 번뇌 속박 끊으려면
항상 경계하며 정진해야만 해
안동 보광사 원통보전 / 글씨 청심 이헌주(淸心 李憲柱)
花恒有笑不喧擾 鳥而啼淚不見見
화항유소불훤요 조이제루불견견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죽영소계진부동 월천담저수무흔
(꽃은 늘 웃어도 시끄럽지 아니하고/ 새는 울지만, 눈물을 볼 수가 없네./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먼지일지 아니하고/ 달이 못을 뚫어도 흔적이 없다네.)
이 시문은 출처를 알 수 없다. 더러는 당나라 말 운문종(雲門宗)을 창시한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의 오도송으로 알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운문 선사의 어록인 ‘운문록(雲門錄)’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조차 없다. 운문 선사와 목주도명(睦州道明 780~877) 선사의 법거량(法擧量)이라고도 하지만 이 역시도 출처가 없으며 후대에 지어진 이야기다. 목주 선사와 운문 선사는 나이 차이가 84세나 되는데 법거량은 제쳐두고 서로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짐작하자면 앞의 두 구절은 누군가가 덧붙인 것으로 보이나 독창적이진 못하다. 뒤의 두 구절은 선문에서 예부터 자주 표현되는 시구다. ‘진각국사록(眞覺國師錄)’ ‘채근담(菜根譚)’ ‘오등전서(五燈全書)’ ‘염팔방주옥집(拈八方珠玉集)’ 등에 유사하게 나타난다. 시문의 전체적인 구절을 냉정하게 보면 선지(禪旨)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 서정적으로 흘러가지만 이를 쫓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에 빗대어 풀이하고자 한다.
꽃이 웃는다는 문자가 빠지면 이 구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수행자가 안식(眼識)에 끌려 마음이 놀아나면 이(理)는 사라지고 정(情)의 흥취(興趣)를 일으켜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 꽃은 피어도 소란스럽지 않다는 것은 상(相)을 내지 않음이다. 수행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자 오히려 7일씩 일곱 번이나 자리를 옮겨 법열삼매(法悅三昧)에 드셨음도 이와 같다.
새가 지저귀는 것을 여기서는 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새가 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눈물을 보려고 함이 오히려 이식(耳識)으로 인해 착심(著心)되는 것이다. ‘고승전(高僧傳)’에 보면, 법공(法空) 선사가 처음으로 난야(蘭若)를 마련하여 수행하는데 밤만 되면 암자 밖에서 ‘공선(空禪)’이라고 계속 불렀다. 문을 열고 나가 보면 종적이 없었다. 훗날 법공 선사가 깨닫고 나서 그 소리는 마음의 경계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이후 소리는 사라졌다고 했다.
중생은 보고 들음으로 인하여 망상을 일으킨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했다. 물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과 같아서 물이 얼음과 다르지 않고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스님의 ‘망기음(忘己吟)’에 보면 “청산은 백운의 변함에 개의치 아니하고, 백운은 청산의 일관됨을 개의치 않는다. 백운은 항상 청산에 있고, 청산도 백운에 있나니, 청산은 스스로 한가하고, 백운은 스스로 느긋하도다. 이는 모두 일심의 도성을 비유한 것이니 지(智)와 경계가 한가하고 한가로울 뿐”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일심의 도성(道性)은 유유자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인을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고 한다. 굳이 대나무를 표현하여 말한 것은 대나무는 속이 비었으므로 공심(空心)을 말하며 공심은 집착함이 없다.
진각국사는 ‘월광천해낭무흔(月光穿海浪無痕)’이라 했고, ‘채근담’에서는 ‘월색천담수무흔(月色穿潭水無痕)’이라 했다. 응암담화(應菴曇華) 선사는 ‘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 ‘염팔방주옥집’에서는 ‘월화천수낭무흔(月華穿水浪無痕)’이라 하였다. 표현은 거기서 거기다. 월(月)은 만월(滿月)을 나타내므로 곧 마음, 심월(心月)이다. 달이 못을 뚫어도 그 흔적이 없다고 함은 심정(心靜)을 나타낸 것이므로 이를 세속에서는 마음의 평화라고 한다.
시문의 전체 흐름은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을 말한다. 수행자가 깨달음을 향함에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고 걸리적거리는 것은 상(相)과 착(着)이다. 이를 늘 경계하며 정진해야 한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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