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관광하는 풍향고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다뉴브 강변에 설치된 Shoes on the Danube Bank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1944–45년 유대인 학살을 기념하는 공공 기념물로 2005년에 만들어졌다. 강변에 놓인 60켤레의 철제 신발은 인물상이나 폭력의 장면을 재현하지 않은 채, 사라진 몸의 흔적만을 남긴다. 이 작품은 관광 동선 위에 놓여 있으며, 방문객들은 국회의사당과 다뉴브 강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이 신발 앞을 마주하게 된다. 방송에서 유재석의 대표 묵념 장면이 잠시 비춰지고 곧바로 아름다운 도시 경관으로 화면이 전환되는 장면을 보며, 나는 경산코발트광산 학살지에서 촬영된 고무신 사진을 떠올렸다. 그 사진은 “유류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기록 속에 남아 있으나, 실물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두 장면은 서로 다른 기억의 형식을 드러낸다. 하나는 국가가 공공 공간에서 학살을 시인하며 부재를 가시화한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사라진 유품이 사진이라는 매개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례이다. 이러한 대비는 학살의 재현 여부가 아니라, 부재가 어떻게 형식화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도르노는 『미학이론』에서 "밀폐적 형식을 지닌 작품이 기존 질서를 더 급진적으로 비판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의 침묵은 인간의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 자연의 품위를 모방하며, 이러한 형식적 절제 속에서 관람자는 자기보존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다뉴브 강변의 신발은 설명을 최소화하고 부재를 통해 침묵을 유도함으로써 일정한 형식적 긴장을 유지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관광 공간 안에 위치하며 소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반면, 경산코발트광산의 고무신은 공공 기념물로 전환되지 못한 채 기록 속 이미지로만 남아 있으며, 그 부재는 또 다른 침묵을 형성한다.
(이 문장을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았다. 내 생각을 미리 작성하여 챗지피티에게 보여주었고 생각이 혼재된 부분은 나누어주었다. 이 내용을 적은 이유는 미학강의 세미나를 듣고 배운 내용 중에 내 생활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써보고 싶어서 챗지피티에게 아도르노이론의 미학강의 내용과 작성한 글을 주어 내가 생각한 부분과의 일치성을 보았다. 여기서 부재의 개념이 중심인데 내가 경산코발트광산 고무신의 아이디어를 냈고 다뉴브강변의 신발은 챗지피티가 추가해주었다)
첫댓글 고무신의 부재, 밀폐된 형식, 급진적.. 이라는 낱말에 대해 그들의 연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존재하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고무신이 눈에 훨씬 더 깊이 박히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