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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 신앙
요한계시록 22:16~21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여러분들은 절망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절망을 느껴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때 절망이 생기나요? 일반적으로 자기의 꿈이 사라질 때 그리고 성취한 것이 실패할 때 깊은 절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강원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려고 입시를 치렀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재수를 하여 도전하였지만, 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방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울면서 절망을 삼킨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의 절망은 교회를 개척하여 7년 만에 교회건축을 하여 모든 것이 잘 되는 느낌이 들고 기뻐하였는데 그만 8년째 되던 해에 교회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깊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절망은 무지에서 오는 무모(無謀)함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나의 실력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강원도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서울에 있는 아이들과 비교하여 나의 실력이 어떠한지를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을 모르고 행한 무모함이 실패를 가져왔고 저를 절망하게 한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 실패하여 절망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을 몰랐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가 겁 없이 믿음이라는 것을 빌미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뒷 처리를 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행한 무지가 실패를 가져왔고 절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미국의 미쉬칸대학의 사회학과 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현대 미국인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일 년 내내 절망 속에 빠져 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최고로 발달된 나라에서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살아야 할 미국 사람들의 1/3이 절망 가운데 빠져 있다면 믿기 힘든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절망에 빠지는 주요 원인은 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나의 정체성, Identity가 분명히 서 있지 않을 때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모르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르지 않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나를 알 수 있냐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나를 알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믿음에 바르게 서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통달하시느니라’를 우리말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자세히 살피시는 분이십니다.”이라고 하였고 NIV 성경에서는 ‘searches all things’ 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알고 계신 성령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을 깊이 아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이해하시는 성령과 신부가 사람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부란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에 속하여 있던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하였던 진리를 성령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서 ‘듣는 자’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음에 바로 서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기초는 삶의 철학이 아닙니다. 도덕과 윤리의 규범에 의해서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기초를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세상의 지식을 가졌더라도 그것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교만이라는 독극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진리에 바탕을 두지 않은 세상의 성공은 그의 영혼을 허무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됩니다.
‘목마른 자’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담겨 있어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땅의 흙으로’ 는 ‘the dust of the ground’ 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아파르’ 라고 하였는데 이는 ‘먼지, 티끌’ 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출처는 바람이 불면 날아갈 수밖에 없는 먼지, 티끌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의 오직 하나님의 생기인 영으로 채움을 받아야 가치가 있고, 견고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안에 텅 빈 가슴을 안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 그 안에 채운다고 하더라도 전혀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생은 늘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목마름에 견딜 수 없는 모습으로 절망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암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원하는 자’ 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는 ‘the one who wishes’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소원이 깨지면 절망에 이르게 되고 이 절망을 사람을 파멸시키고 맙니다. 단테는 “지옥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갈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입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값없이 생명수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탈북자 출신 김북한 목사님이 신앙계에 실은 내용 중에 흥미로운 기사가 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 성경이 5만 원에 팔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돈이면, 4인 가족이 한 달 먹을 양식과 석탄을 살 수 있는 돈인데 그렇게 비싼 비용을 들이고 사는 이유가, ‘뭐를 해도 무조건 안 되는 북한 사회에서 무언가 다른 집이 있었다.’는 겁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다른 집들은 온갖 저주 속에 빠져서 사는데, 그 집은 병도 낫고 무슨 일이든 잘 되는 그런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집에는 성경이 있다더라.”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 이름 불러봐라. 병이 낫더라.” “장사할 때 예수 이름 불렀더니 잘 되더라.” “위기의 순간에 예수 이름 불렀더니, 무사히 넘어갔다”는 등, 뭐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면 달라지는 ‘만능 예수’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임을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은 누구이신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주님은 교회들을 위하여 주의 사자들을 보내셨다고 하였습니다. 지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구성원을 철저하게 보살피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예언대로 세상에 오셨고,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시던 날 밤의 별은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했다면, 진정한 새벽 별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인생의 광야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고 희망의 등불이 되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르게 맺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전하시고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진실함과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계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485년전 즉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비덴베르그 성당 대문에 카톨릭의 부패에 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부착한 것을 기화로 시작된 것입니다. 참된 종교개혁은 말씀에 의한 개혁입니다.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바르게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말씀에 의한 개혁이 계속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들 외에 더하면’ 이라는 말씀과 19절에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이란 말씀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판단으로 더하지도 빼지도 말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하는 핵심은 예수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그분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붙잡고 이것을 믿음으로 기초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믿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삼상 16: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셨습니다. “People look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중심입니다. 즉 하나님께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냐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라는 것을 함께 나눴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하나님과 절대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를 알고 이제는 주님을 알아야 하는데 주님은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그분은 우리의 절대 소망을 이루는 ‘광명한 새벽 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알고 주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다면 나의 태도에서 증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바른 태도라는 것은 ‘마라나타’ (Μαραναθα) ‘Our Lord has come’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신앙입니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속히 오십니다.
과학자들은 크게 4 가지 경우로 인류의 종말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핵전쟁, 둘째는 기후 재앙, 셋째는 전염병, 넷째는 태양 폭풍이나 초신성, 행성과 충돌 등과 같은 외부의 힘에 의해 지구는 끝이 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인류의 멸망을 알리는 “지구 종말의 날 시계”가 있습니다. 올해 종말 시계는 100초 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1947년 생긴 이래 종말에 가장 근접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핵무기· 기후변화· 새로운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설정했다고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 보다 더 확실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속히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진실로(나이)라는 말은 강한 긍정을 표현하는 말로 “확실히 그렇다”라는 뜻입니다. “속히”라는 말은 임박함을 말씀하지만 시간적 의미인 '곧'보다 '번복되거나 취소됨 없이 반드시 이루어 질 일'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확실하게 속히 오신다는 약속은 역사의 계시를 마감하면서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세 번이나 강조해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시니까 어떻게 반응합니까? “주 예수에 오시옵소서”라고 반응합니다. 신속히 오실 것을 강하게 염원하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지금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핍박을 받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이 재림신앙을 전파한다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유배당하여 있습니다. “예수님 곧 오신다고 하였는데 왜 이렇게 오시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고난을 당하여야 합니까? 왜 이런 고난당하여야 합니까?” 원망하거나 회의하지 않았습니다. 재림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마라나타”라는 말은 당시 성도들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성찬식 공도 기도문에 들어가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얼마나 성도들이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까? 황제 숭배를 거역한다고 감옥에 갔습니다. 화형을 당합니다. 십자가 형을 당합니다. 사자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재림 신앙을 가지고 이기는 것입니다. 재림 신앙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재림신앙으로 인간 문제의 해답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다스리시는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 가난, 기근, 질병, 고통, 한숨, 눈물의 문제가 주님 오시면 다 해결될 것입니다. 식량, 환경, 부의 불균등, 전쟁, 질병, 정의, 아버지 찬스, 엄마 찬스, 지역감정, 진보 보수의 갈등, 불의한 정권의 핍박 문제가 예수님이 오셔서 완전하게 해결됩니다.
고난 가운데 살았던 그들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오신다 해도 저는 기쁘게 주님을 맞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과학문명이 발달된 세상에 살면서 재림 신앙을 가지면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마라나타 신앙은 우리를 절대 절망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마라나탄 신앙은 우리에게 어떤 환경에서도 소망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