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밑줄
저녁을 일찍 하니 저녁이 길어졌다
외등도 조곤조곤 곁을 더 내주고
접어둔 갈피를 헤듯
책등들이 술렁였다
등불과 친해지면 말의 절도 잘 짓는지
하품 같은 농 끝에도 코가 쑥 빠지지만
저녁에 길게 들수록
행간은 더 붐비리
가을의 질문 같은 동네 책방 창문들도
길어진 모서리를 모과 모양 밝히고
누군가 밑줄을 긋다
별로 솟곤 하리라
윤슬 농현
보았는가, 저 꼼질은 틀림없는 물이렷다
다가서면 스러지는 모래 노래 아니라
사막 속 윤슬을 켜는 신의 미소 같은 것
무현의 농현처럼 사물대는 물비늘들
가히 흘린 눈썹을 술대 삼는 신기루에
다저녁 물때를 놓치듯 버스도 지나칠 뻔!
잡아보려 다가서면 고만큼씩 멀어지던
시라는 술래 같은 아지랑이 멀미 속에
줄 없는 거문고 타듯 물의 율을 탐했네
정수자
경기 용인 출생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1984년 세종숭모제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시집 <<탐하다>> <<허공우물>> <<비의 후문>>
<<파도의 일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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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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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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