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막바지 해 며칠 동안 지속된 한파와 폭설이 가져다준 동장군의 기세는 대단했었다.
겨울철 날씨라면 영하권의 수은주는 뚝 떨어진 옴짝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계절의 경계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또한 추워야 제맛이다.
자연 생태계의 질서는 인류의 생존과 더불어 보존되어야 할 정의(正義)이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지구상 강인한 식물들을 보라
이들의 놀라운 적응력들은 기후조절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면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조절하는 데에 기여하고 이는 기후 변화를 완화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제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어준다.
또한 혹독한 추위는 해충들의 박멸을 도모 질병을 퍼뜨리지 못하게 하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늘 인간(人間)들이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간사(奸詐)하기 이를 데 없어 그 속을 모른다.
인간은 간사한 마음으로 영욕의 희열을 가슴속에 품고 늘 잘난체하는 행동을 보여주려 애쓴다.
냉한의 겨울이 되면 여름이 그립고 불볕더위의 여름철엔 겨울이 그리운 간사한 인간함
간사한 마음은 배려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남을 이용하려는 간사함
이기적이고 이질적인 자기중심적 배타심은 덕을 손상시키는 교만함의 소치이다.
간사한 지혜가 있는 영웅을 간웅(奸雄)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들 속에서 늘 염주(念呪)하는게 있다.
이는 어쩌면 간절한 염원과 함께 일신상의 안녕과 행복을 구가하는 것일 것이다.
다채로운 사고와 순간의 영역들 속에서 하고 싶은 것들과 하기 싫은 것들의 선택적자율성들은 경험하며 기회적인 착란들 속에 교만함을 내보이기 일쑤이다.
인간 본성의 모순함들은 현실과 이상들 속에 사회 윤리적 고민을 함께 공존하며 평범하고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
인류문명과 종교 그리고 생명이 진화되어 가는 그 몹쓸 산물들도 자연의 순리와 섭리는 거역할 수 없는 것 아니던가?
결국은 깨달음인데 스스로의 제어에 앞서 바라보이고 느껴 생각되어진 그 모든 것들을 개념 없이 기망(欺罔)하며 산다.
한해를 마지막 보내면서 새해 소망과 웅지(雄志)의 포부보다는 나만 내가 최고다라는 나만이즘(Namanism의 팽배와 사고는 독거(獨居)로의 슬픈 자화상 아니고 무엇이랴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전국 대학교수단이 선정 기준인 사자성어를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발표하였다고 한다.
견리망의란 눈앞의 이익이 보이면 의리를 저버린다는 뜻으로,
이익 좇기에 바쁘고 이로움은 뒷전으로 하고있는 세태를 꼬집은 사자성어이다.
새로운 새해에는 푸른 용의 꿈과 희망이 비상(飛上)하는 청운의 한해와 더불어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