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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モーセを召された創り主の神。(2026년 8월 30일 주일예배)
https://youtu.be/1j-6FLLgIUw?si=z-KJ3cbJQiCJyW7Q
본문: 출애굽기 3장 1절~12절
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2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5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6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8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9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10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12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에, 너희가 이 산 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1 モーセは、しゅうとでありミディアンの祭司であるエトロの羊の群れを飼っていたが、あるとき、その群れを荒れ野の奥へ追って行き、神の山ホレブに来た。 2 そのとき、柴の間に燃え上がっている炎の中に主の御使いが現れた。彼が見ると、見よ、柴は火に燃えているのに、柴は燃え尽きない。 3 モーセは言った。「道をそれて、この不思議な光景を見届けよう。どうしてあの柴は燃え尽きないのだろう。」 4 主は、モーセが道をそれて見に来るのを御覧になった。神は柴の間から声をかけられ、「モーセよ、モーセよ」と言われた。彼が、「はい」と答えると、 5 神が言われた。「ここに近づいてはならない。足から履物を脱ぎなさい。あなたの立っている場所は聖なる土地だから。」 6 神は続けて言われた。「わたしはあなたの父の神である。アブラハムの神、イサクの神、ヤコブの神である。」モーセは、神を見ることを恐れて顔を覆った。 7 主は言われた。「わたしは、エジプトにいるわたしの民の苦しみをつぶさに見、追い使う者のゆえに叫ぶ彼らの叫び声を聞き、その痛みを知った。 8 それゆえ、わたしは降って行き、エジプト人の手から彼らを救い出し、この国から、広々としたすばらしい土地、乳と蜜の流れる土地、カナン人、ヘト人、アモリ人、ペリジ人、ヒビ人、エブス人の住む所へ彼らを導き上る。 9 見よ、イスラエルの人々の叫び声が、今、わたしのもとに届いた。また、エジプト人が彼らを圧迫する有様を見た。 10 今、行きなさい。わたしはあなたをファラオのもとに遣わす。わが民イスラエルの人々をエジプトから連れ出すのだ。」 11 モーセは神に言った。「わたしは何者でしょう。どうして、ファラオのもとに行き、しかもイスラエルの人々をエジプトから導き出さねばならないのですか。」 12 神は言われた。「わたしは必ずあなたと共にいる。このことこそ、わたしがあなたを遣わすしるしである。あなたが民をエジプトから導き出したとき、あなたたちはこの山で神に仕える。」
지난 주일에는 이사야서 51장의 본문을 통해서 광야를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으로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사실적인 눈에 보이는 광야를 기름지고 유복한 땅으로 개간하는 토목사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세계를 채우는 마음이나 인생이 광야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주님의 말씀이 채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기 입으로 읊조리고, 그리하여 자기 귀로 들음으로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풍성하고 축복으로 충만한 인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른 어떤 지식과 정보, 그리고 세속의 가치관과 시대정신보다 주님의 말씀과 손잡고 걸으며 살아가는 놀라운 권능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영상을 보면 자주 만들어지는 장면인데요. 저는 여러분과 세 가지 측면의 내용으로 함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음성을 듣고 마음 밭에 씨앗으로 심어 품기를 원합니다.
먼저 주목할 것은 모세가 불이 붙은 떨기나무를 보았지만, 실제로는 불에 타지 않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 떨기나무를 본 것은 “호렙”이라는 이름의 산입니다. 이 호렙산을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산”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나중에 이스라엘이 붙인 이름이구요. “호렙”의 문자적인 뜻은 “폐허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동물이나 사람이 살기는 할 수 있지만, 그다지 편한 곳이 아니어서 매우 불편하고 먹을 것도 거의 없는 빈약한 목초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 호렙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대부분 알다시피 모세는 원래 히브리인 부부의 아기로 태어났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집트의 공주가 양자로 삼아서, 왕실에서 장성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자 자신의 힘으로 이집트 사람에게 차별 받던 히브리 사람을 도와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그것이 발각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40년을 숨어 살던 도망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양도 없어서 장인이었던 이드로의 집에서 얹혀 살면서 양을 대신 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폐허와 같던 호렙산에 양을 몰고 왔다가 느닷없이 신비로운 광경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인생가운데 낙심과 후회, 그리고 한숨만 가득하고 소망이 없어서 나이만 늘어가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수도 없이 많은 가시덤불과 떨기나무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수많은 떨기나무가 건조하고 메마른 기후와 날씨 때문에 갑자기 불이 붙어 순식간에 불타 없어져버리는 광경을 보았을 테지요. 마치 자신의 신세처럼 처량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모세가 발견한 그 떨기나무는 분명히 불이 붙어 있는 모양이었지만, 불에 타서 사라지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불은 붙었지만, 타서 사그라들지는 않는 떨기나무였습니다.
이런 신비로운 광경을 가까이 가서 보기 위해서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그 때 이 떨기나무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자 그는 곧장 대답을 합니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이 대답은 모세의 내면세계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모세도 갈망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비록 어린 아기 시절부터 40년 동안 이집트의 왕궁에서 양육과 교육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아는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출 2:11)
모세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이집트 공주에게 발견되어, 친 어머니에게서 어린시절의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출생배경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지요. 그래서 히브리 사람이 자신의 형제, 즉 동족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애착을 히브리사람은 알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이집트의 파라오가 모세를 죽이려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
그는 그 길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서 40년이 흐른 지금… 폐허라는 이름의 산에서 폐허처럼 망가진 그의 마음에 마치 불은 붙었으나 그 불에 사그라들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서 자신을 부르는 그 소리가 주 하나님의 음성임을 직감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을 부르는 음성을 향해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바로 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를 폐허와 같은 산, 호렙에서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폐허처럼 방치되어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하고 갈급한 모세의 내면세계와 그 심령에 한 그루 떨기나무에 불꽃으로 임하셔서 모세를 부르고 계시는 분이 창조주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우리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세가 먼저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호렙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그저 양을 치다가 조금이라도 풀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 헤매다 발길이 닿은 곳이 호렙산이었습니다. 그저 일상 가운데 있는 너무도 평범한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갈급함을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였지요. 그 바짝 마른 떨기나무의 모습으로 서 있는 가시덤불 가운데 불꽃의 모습으로 선재적으로 임재하시고,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저와 여러분도 부르고 계십니다.
모세에게 너무도 놀라운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셨고, 이제는 때가 되어서 부르고 계십니다. 메마르고 푸석한 호렙산에서 마찬가지 마르고 마르다 못해 금새 바스러지고, 삭아 없어질 것 같은 가시덤불 떨기나무 한 가운데 불꽃으로 임하고 계십니다. 그 나무를 불살라 없애지 않으시고 불꽃으로 함께 임재하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이 모세처럼 무기력하고 패배감으로 그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을 마주한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앞으로 더 나아가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주님의 역사하심과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꼭 응답하신다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지요. 이 말씀으로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아무리 메마르고 빈약하여 박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불꽃처럼 우리에게 임재하고 계시는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불에 타 사그라져 없어질 것처럼 보이는 치열한 일상 가운데 나를 아시고, 나의 이름을 기억하시며,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구절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네가 선 곳이 거룩하니 네 신을 벗어라.
무척이나 유명한 구절인데요. 이 말씀을 듣고 모세가 신을 벗었다거나, 혹은 거부했다거나 하는 직접적인 구절은 없습니다. 그래서 실재로 모세가 물리적인 신을 벗었는 지의 여부를 오늘 본문에서 확인할 수는 없는데요.
당시에 “신을 벗는다”는 것은 종이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을 벗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신을 벗었는가? 모세가 그 자리에서 자기 신을 벗어서 하나님 앞에 순종을 맹세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망설임과 변명을 반복한 끝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데릴사위의 처지에서 벗어나는데요. 이로 볼 때 그는 결국 주님 앞에서 “신을 벗고 주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현존 앞에 서자마자 먼저 신을 벗으며, 순종을 서약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매우 끈질기게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며 종이 되기를 주저했고, 또한 꺼려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포함해서 4장 17절까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변명에 답을 주시고, 기적을 행할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그런 뒤에 모세는 마지못해 순종을 합니다. 순종을 한 후에도 모세는 계속해서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변명하고 불안함을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미 당신의 종으로 삼으셨고, 그 종을 통해 이루실 일들을 반드시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이 자주 흔들리고 또 때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연약해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도 모세처럼 내면에 패배감이라는 폐기물이 적지 않게 쌓여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며 반성해 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내가 지금의 시대에, 바로 오늘 서 있는 여기 이 자리에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을 맡겨 주시는 것이지요. 내가 아닌 다른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의 자리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마음에 유쾌하지 않고, 지겨울 지도 모릅니다. 뭔가 지지부진하고 눈에 띄는 어떤 성과가 없어서 마음 한 곳이 무겁고, 찝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하나님은 종으로 삼으시고, 사명자로 세워주십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랑할 만한 어떤 업적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뭔가 많은 재정적인 이윤을 폭발적으로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이끄시는 주인이 되어 주시는 자리와 그 시간을 채우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주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편지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1)
이 종의 자세와 태도를 오늘 우리도 함께 마음 깊이 새기고 그 씨앗을 내면에 심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단 번에 흔쾌히, 기꺼운 마음으로 응답하지 못했던 모세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의문을 품고 계속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의 질문이지만, 실은 이후에도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의 사명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출 5:22)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와중에도 백성들에게 분노하고 화를 낸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나아갈 지도자의 성품이나 인격에 충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 단 한 마디로 인해 모든 불신은 사라지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결코 그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백성들이 모두 애굽을 탈출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이끄실 때, 그것이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개역성경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드시”라고 하셨습니다. 일본어 성경에도 “わたしは必ずあなたと共にいる。”라고 번역하고 있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는 한, 완성되는 것이 분명하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1)
하나님께서 나에게 임재하고 계시고, 예수님께서 함께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것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가장 최고의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이 모세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약속하시는 것이 곧 주님과의 행복한 동행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 그리고 원칙을 굳게 지킬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남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알아 주어야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며 행복하다고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의도대로 성공해야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함과 독특함을 구현해 내야 행복하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많이 모아야 안도감을 느끼며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규정된 룰을 잘 지켜야 행복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룰을 깨고 재미 있고 즐거운 것을 느껴야 행복하다고 주장합니다. 남들에게 지시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지금 있는 이대로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내는 것이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각자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와 방향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하나님이 없이는,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과 축복을 누릴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어떤 목표를 향해 살고 있더라도 진정 나답게 살고, 사람답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사랑의 능력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 영향력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한결같이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과 형편을 보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이 채우시는 열매를 거두는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헤매지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찾고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예정하시고, 예비하신 그 사람을 찾아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그 자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뭔가 대단한 성취물과 성공을 이루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임재 안에서 예배하는 자의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리를 성실하고 신실하게, 그리고 마음을 활짝 열어 기꺼이 그 시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맡기시는 하루의 사명을 늘 기억하며 세속의 가치기준과 일방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분별하지 않는 믿음과 영성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영성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님과 동행하며 행복한 소명을 이루는 주인공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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