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진보연합 용혜인
@yong_hyein
《10년 만에 알게 된 국정원 사찰》
10년 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제 고향이던 안산은 커다란 슬픔에 잠겼습니다.
같이 자라왔던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은 가까운 이의 부고 소식을 접해야 했고, 저 역시 제 동생의 선생님이 참사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고,
저와 비슷한 마음을 안고 있었던 참 많은 국민들께서 함께 추모해주셨습니다.
당시 검찰은 추모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카카오톡에서 저의 지인 1800여명과 열흘치 대화내역을 통째로 압수수색 했습니다.
6년여 간의 지난한 법정 싸움 끝에, 저의 침묵행진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대법원은 검찰의 카카오톡 압수수색 역시 위법부당했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사찰했던 기무사 간부들은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너무나 늦었지만, ‘추모는 죄가 아니다’라는
당연한 상식을 바로 세워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가 당시 국정원에 1년동안이나 사찰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입수된 국정원 첩보 자료에는 “‘가만히있으라’ 추모침묵행진 주도자”인 저 용혜인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국정원은 제가 “세월호 참사 수사결과는 진실 은폐 시도에 가깝다고 주장해 대학생들을 선동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세월호 관련 반정부 여론을 확산 시도하고 있는 바, 관련 동향을 계속 파악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은 2015년 3월입니다.
2014년 4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이후로 1년이 넘도록 사찰을 해온 것입니다.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10년 전, 마구잡이로 국민을 사찰하던 경찰과 검찰의 불법적인 정보활동에 대해 지난한 문제제기를 하던 와중에도 불법사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참담합니다.
공개된 자료에만 적어도 1년 이상 사찰을 당한 정황이 있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오랫동안 끈질기게 사찰당했을지,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우리 사회는 민간인 사찰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중한 범죄임을 인정하고, 그간 이뤄진 민간인 사찰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자 처벌로 정의를 바로 세웠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연된 정의로 인해, 여전히 국가가 국민을 사찰하는 부정의가 10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첫날, 유가족을 고립시켜야 한다는 정보보고서를 떡하니 작성했던 경찰의 행태가 이를 증명합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국정원의 사찰이 지금이라도 밝혀진 만큼 여기 계신 유가족분들과 시민분들과 함께 참사 피해자와 국민에 대한 사찰 문제를 정확히 짚고, 국가의 공식적인 책임인정과 사과를 받아내겠습니다.
참사 피해자들에게, 참사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일은
당연히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국가가
피해자를 위로하기는 커녕, 도리어 감시하고 사찰하며
‘반정부 세력’이라는 낙인을 붙였던 시간들, 그 자체였습니다.
그 시간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바로 세워나가겠습니다.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오래된 요구가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저 역시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2024년 2월 21일
새진보연합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용 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