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공포의 전력 대란? 진실은 이렇다! [초록發光] 바캉스는 프랑스 식, 전력 대란 걱정 없다 2012. 10. 25.
요란스러운 가을비가 내린 후 온도가 급강하 한, 그제(23일)는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 상강(霜降)이었다. 전국적으로 서리가 내릴 정도는 아니지만 갑작스레 추워진 탓에 무더위의 기억은 벌써 까마득해진 듯하다.
오늘의 전력 예비율을 살펴보니 가장 전력 수요가 적은 오전 3시 50분경에 1616만 킬로와트로 31.06퍼센트였고, 18시에서 19시 사이에 655만 킬로와트인 10.6퍼센트로 예상된다고 한다. 귀가한 직후 조명기와 난방기를 가동하고 식사를 준비하느라 전력을 하루 중 가장 많이 쓰기는 하겠지만, 오늘의 예비 전력 상태는 '정상'이다.
두 달 여를 되돌아보면, 비상 전원 상실과 은폐 사고로 가동이 중단되었던 핵발전소 고리1호기의 재가동이 발표된 것이 8월 6일이었다. 이날 마침 예비 전력이 300만 킬로와트 밑으로 떨어져 '주의' 단계가 발령되었고, 지식경제부는 부족한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해 고리1호기의 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지경부 장관은 "고리 1호기가 재가동되도 휴가 시즌이 끝나는 8월 3째 주에는 전력 수요를 감당해 내는데 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8월말까지도 일간 최대 전력 수요는 8월 첫 주의 수준을 넘지 않았고 더운 계절은 이내 지나갔다. 그리고 처서를 지나 상강이 되도록 여전히 고리1호기는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고리1호기는 전력 대란 대비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볼 때, 핵발전소 증설이나 가동 확대로 전력 피크에 대처하는 게 효과적인 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의 경우 사계절에 따라 에너지 수요 편차가 클 뿐 아니라 낮과 밤으로도 전력 사용량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전력 사정이 '주의'에 이른 지난 8월 6일에도 오후가 지나자 전력 예비율은 급격히 늘어났고, 다음 날 새벽 3시 50분경에는 37퍼센트 이상까지 올라갔다. 이날 한국의 핵발전소들은 낮 시간이라고 가동률을 올린 것도 아니고, 새벽 시간에 가동률을 낮춘 것도 아니었다. 대표적인 기저부하 발전원으로서 같은 출력을 내는 핵분열을 묵묵히 일으켰을 따름이다.
한국의 전력 피크는 8월의 일주일 그리고 1월의 1주일 정도에 국한된다. 그것도 하루 중에도 냉난방 기기가 집중 가동되는 낮의 몇 시간에 해당할 뿐이다. 그래서 기저부하 발전원을 증설하는 것보다는 특히 피크 시간대에 대도시의 수요 관리가 중요하고 더욱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6월 21일 실시된 대규모 정전 대비 훈련에서 잘 드러난 바다.
이날 오후 겨우 20분 동안 관공서와 일부 기업이 참여한 정전 대비 훈련의 결과 전력 예비율은 평소의 두 배 수준인 960만 킬로와트, 예비율로는 15.2퍼센트를 확보하게 되었다. 부문별로는 피크 점유율의 54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업체가 387만 킬로와트를 절감하여 절감분 중 71퍼센트를 기여했다. 대략 화력발전소 10기, 그리고 핵발전소로는 5기 정도를 가동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분량이다.
조금만 전력 소비 절감 협조 요청이 있으면 10퍼센트 정도의 예비율 추가 확보는 어렵지 않다는 것인데, 지식경제부가 선택한 것은 전체 전력 생산량의 1.2퍼센트를 차지할 뿐인 고리1호기의 재가동이었다. 전력 피크와 핵 발전 생산 전력이 구조적으로는 전혀 무관하다는 이야기는 지식경제부에게 천기누설에 해당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
전력 대란이 정말 우려된다면 해법을 다시 정리해 보자. 일단 전체 전력의 55퍼센트를 쓰는 산업체의 한여름 일주일, 낮 시간의 전력 소비가 관건이다. 이를 절감하거나 분산하면 된다. 정말 지식경제부 장관이 노동자들이 휴가에서 돌아오는 8월 셋째 주를 걱정한다면, 노동부 장관과 논의하여 대기업의 여름 휴가를 두 주 더 늘리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협력 업체와 하청 업체도 일거리가 없으니 휴가를 늘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수출 경쟁력에 큰 타격이라도 있을까 우려하는 분들이 있다면, 주5일 근무는 어떻게 시행되었는지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어차피 한여름의 폭염에 노동자들을 작업장과 사무실에 더 붙들어두어 작업 능률이 오르지도 않거니와, 경쟁력 확보는 기업주들이 달리 고민할 일이다.
프랑스는 핵발전으로 전기를 80퍼센트나 얻고 있어서 유럽에서도 유독 '탈핵'의 길에서 멀어있지만, 프랑스처럼 한 달 쯤 한여름 바캉스를 갔다 오면 전력 대란 걱정은 확실히 덜 것 같다. 이제까지 유럽에서 좋은 제도와 정책을 많이 배워왔는데 이제는 한데 모아서 외쳐보면 어떨까? 교육은 핀란드 식, 선거 제도는 독일 식, 바캉스는 프랑스 식으로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