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놀러갔다 왔습니다
별이랑 점박이는 추석연휴이후 첨 가는 드넓은 강가였지요
세시간가량 실컷 뛰놀라고 하고 책읽다 왔습니다 ^^
그 중에 한둘..
고선생네 개
내 이웃에는 고선생이 산다.....(변형 중략)
고선생은 개를 키운다. 개 이름은 두만인데, 고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자 술을 마시면 소리쳐 부르는 '두만강 푸른물에'로 시작하는
노래의 맨 앞을 따왔다. 두만이는 세퍼드다. 세퍼드는 사냥,사역,목양,
경비,수색등에서 만능인개이고 품위에서도 개 중의 개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고선생의 두만이는 일백 퍼센트 세퍼드는 아니고 토종개의 피가 2할5푼쯤 섞였다. 좋게 말하면 세퍼드의 능력과 토종개의 적응력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람의 배설물도 서슴지 않고 먹는
토종개의 먹성에 주인이 사냥,사역,목양,경비,수색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농부이므로 매일 처먹고 자빠져자는 게을러터진 성격을 가진 개로
보이기도 한다. 하긴 가져갈것도 거의 없는 우리 동네에 도둑이 들 리
없으니 개가 특별히 지킬 것도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우리 동네를 감돌고 흐르는 강변에 소위 전원주택이라는게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은 그 집들에는 예외없이 서울같은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살았다. 한씨도 삼 년전에
잡지 화보에서 오려낸 듯한 하얀 이층집을 짓고 우리동네 끄트머리에
살게 된 사람이다. 당연히 한씨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주말마다 자신의 영지라도 되는것처럼(물론 마을 안의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우리는 농노로 보일 것이다) 순시하는게 일이었다.
그런데 개는 주인을 닮는다더니 한씨가 키우는 개가 꼭 제 주인처럼 행
세하는게 못 봐줄일이었다. 한씨는 자신이 키우는 개가 북한의 최고, 최
대의 풍산개 연구소인 '김일성농장'에서 극비리에 유출되어 연변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종자라고 했다. 한씨가 털이 희고 길다는 것만 빼면
동네에 흔한 토종개 비슷한 그 개를 안고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때만
해도 우리 마을에서는 풍산개를 본 사람은 커녕 이름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풍산이 어디 안동 아래쪽이냐고 물을 정도였으니까.
한씨는 그 풍산개를 연변에서 인천으로 들여오기까지 무슨 정보기관과
긴밀하게 협조를 했으며 그 개가 유출됨으로써 북한에 큰 파장이 일어
개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또 그 풍산개는 사람에게는 절대 복
종하는 성질이라 도둑이 와도 짖기는 커녕 꼬리를 흔들 정도이지만 짐
승에 대해서만은 자신과 맞서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말을 하고도 그 개를 풀어 길러 동네방네 돌아다니게 하는 처사
는 참 모를 일이었다. 마을에 짐승이 없으면 몰라도.
내가 보기에 한씨는 어떤 짐승, 특히 개는 감히 그 개와 맞설 수 없다
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 개를 무시한 적이 없었고
가짜라고 의심한 적도 없었고 그 개에 맞설만한 사연이며 핏줄을 가진
개를 키우지 않는데도. 그 풍산개의 이름은 희고 긴 털에 어울리는 '백
호'였다. 흰 호랑이라는 의미였고 실제로 풍산개는 호랑이앞에서도 굴
하지 않는 용맹성을 지녔다고도한다. 그러나 그 개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우리동네 인구의 95퍼센트쯤에 해당한다, '백야시(백여우)'라고 불렀다.
그 사건은 내가 고선생과 함께 그의 밭에 고추 모종을 내고 돌아와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일어났다. 두만이는 늘 그랬듯이 밥을 기다
리며 제 집 앞에 앉아 졸고 있었다. 두만이는 한번도 사람이든 다른 짐
승이든 물어본 적이 없었지만 덩치때문에 밖에 내놓을 수 없어서 늘 줄
에 묶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도 어김없이 흰 그림자가 얼씬거리더니 한씨의 백야시가 나무판자로 엮은 야트막한 담 너머로 지나가는게 보였다. 보통은 백야시가
별일없지, 하는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쳐들고 사오 초 만에 지나가곤
했다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호랑인지 여우인지의 꼬리가 고선생의 대문
문턱을 넘어섰다. 짐승끼리는 사람이 모르는 신호나 감각이 있는 법이다.
졸고 있던 두만이가 눈을 뜨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침 백야시와
눈이 마주치자 두만이는 어딜 감히,하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백야시는 평소에 두만이가 줄에 묶여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뭘 그러시나, 하고는 느긋하게 돌아서서 가려고했다.
그런데 두만이가 고개를 툭 젖히자 왠일인지 말뚝에 묶여있던 줄의
고리가 훌렁 벗겨지는게 아닌가. 목을 구속하던 줄이 느껴지지 않자
두만이는 잠시 어리둥절한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쏜살처럼
내달려 돌아서서 가고 있는 백호의 뒤를 쫓아가더니 목을 냅다 물었다.
토종인 어미의 피를 받아 진짜 세퍼드에 비해서는 작은 몸집이었으므로
두만이가 문것은 백호의 목 아래쪽이었다. 느닷없이 기습을 당한 백호는
처음에는 목을 흔들어 두만이를 떼내려고 했다. 그러자 두만이는 바싹
더 다가들며 헐거웠던 부분을 조였고 이빨이 완벽하게 백호의 목을 파고
들었다. 위기를 느낀 백호가 안간힘을 쓰며 두만이를 물려고 했지만 두
만이는 고개를 젖혀 백호의 이빨을 피하면서도 백호의 목은 절대 놓지
않았다. 백호의 흰 목이 자신의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백호
의 저항이 완전히 멈췄다. 고선생은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저놈의 개새끼
가 물 건너 온 남의 비싼 개 삭 물어쥑이겠네이" 하고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야야, 두만아. 너 그러다 그 개 죽으면 네가 몸 팔아서 개 값 물어줄
테냐? 이놈아, 빨리 놓으란 말여."
고선생은 두만이의 다리를 붙잡고 떼내려고 애를 썼다.
"그래가지고는 안떨어지겠네. 물이라도 뿌려요."
내가 말하자 고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거야 저희끼리 좋아서 붙어 있을때 이야기고. 하이고, 이제 어쩔거나."
고선생은 처마밑에 쌓여있던 장작개비 가운데 하나를 집어들면서 중얼
거렸다.
"좀 아프기는 하것다마는."
고선생의 팔이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힘차게 아래로 떨어졌다.
장작개비는 딱, 소리를 내며 백호의 목을 물고 있는 두만이의 이마를
정확하게 맞혔다.
"이래도 안 놔? 못 놔?"
장작개비가 두 번 세 번 두만이의 이마를 맞히자 두만이의 이마에서도
피가 나기 시작했다.가죽이 조금 찢어진 듯했다. 결국 두만이는 백호의
목을 문 입을 풀었다. 백호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주저앉았고 두만이는
이마에 피를 흘리며 끙끙거렸다. 고선생은 자신이 때려놓고도 걱정이
되는지 두만이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밥그릇을 들고 뒤안으로 달려갔다.
평소에 잘먹고 잘살던 백호가 먼저 기운을 차렸다. 백호는 눈치를 슬슬
보며 대문쪽으로 걸어갔다. 백호가 대문근처에 가까이 갈 때까지 가만히
있던 두만이가 갑자기 몸을 솟구쳐 달려가서 백호의 앞을 가로 막았다.
올 때는 네 맘대로 왔어도 갈 때는 네 마음대로 못간다는 뜻같았다.
백호는 두만이가 달려오자 즉시 뒷다리를 꿇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두만이가 낮게 짖었다. 만족스러운 그 소리는 나를 보지 않고 어딜 보느
냐고 세상에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이윽고 고선생이 된장을 그릇 가득 퍼서 가져왔다. 그리고는 두만이의
상처에 된장을 큼직하게 뭉쳐서 바르고 그 위를 쳐매기 위해 자신의 구
멍난 러닝셔츠를 찢었다. 그러는 사이 다시 백호가 슬슬 뒷걸음질로
도망을 갔다. 주인이 된장덩어리를 매주기를 기다리던 두만이는 다시
잽싸게 백호에게 달려가 여지없이 뒷다리를 꿇고 복종을 하게 만들었다.
고선생은 땅바닥에 떨어진 된장을 들고 가서 백호의 이마에 처매면서
연신 "아이구, 내 새끼"를 외고 있었다. 치료가 끝나자 백호가 공손히
일어서서 물러갔다. 두만이는 위엄있게 먼산을 바라보면서 백호가
물러가는 것을 방치했다.
나와 고선생은 잠시 조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우리 동네 개들의 역사에서 백야시의 시대는 가고 두만이의 시대가
시작된게 아니겠는가. 사실 개 이름이 백호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아닌가. 개는 역시 핏줄인데 핏줄하면 세퍼드가 아니겠는가. 순종
보다는 토종의 피가 섞인 잡종이 훨씬 더 생명력이 강하지 않겠는가.
어딜 감히 정체도 불분명한 개를 가지고 동네 어르신네들의 기를 죽이려
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우리가 기죽을 사람들인가. 우리의 입에서 침이
마를 지경이었는데 머리에 아이 주먹만한 된장 혹을 단 두만이가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일분도 되지 않아 갑자기 이웃
집에서 세숫대야 뒤집히는 소리와 독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웃이 개는 이제까지 벌어진 일을 모두 귀와 눈과 냄새로 파악하여
잘 알고 있었다. 두만이가 순찰의 일환으로 제 집대문을 통과하자
놀란 나머지 줄이 묶인 집을 끌고서 도망을 가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 서슬에 개집 옆에 있던 세숫대야가 뒤집어지고 화분이 깨지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제 집에 깔려 버둥거리는 이웃집 개를 두만이와 고선생이 나란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두만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팔짱을 낀
고선생은 온 몸이 흐뭇함 그 자체였다. 그 이웃집의 주인은 나였으므로
나는 개와 개주인에게 어떻게 얼마나 변상을 받느냐 하는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우리 셋에게 내리쬐는 햇빛은 환하고 바람은 따사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