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Blesser
2024년 9월 11일 개봉
제작 애즈필름, 프로덕션 SFS
감독 이상철
출연 김재화, 성도현, 빈주원
배급 영화로운 형제
1
발단은 서이초 사건이었다. 2023년 7월 여름방학을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 서이초 학습준비물실에서 한 20대 여선생님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였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적인 문제, 학생관리의 문제, 그리고 학부모와의 갈등 등.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알 것이다. 그중에서 무엇 때문에 가장 힘들어했을지를. 눈에 보이지 않는 가해자가 분명 있었지만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으며 그 사건 이후로 몇몇의 선생님이 세상을 등졌다.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은 서이초가 부유한 이들이 많이 사는 강남의 한복판에 있었고 고인이 된 선생님은 아직 꽃을 피우지도 못한 여리고 여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론은 이전과 달리 학생과 학부모 편이 아닌 교사 편으로 적지 않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주호민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특수학생을 자식으로 둔 그가 특수교사를 고소하고 심지어 아들로 하여금 녹음기를 교실에 몰래 가져가 교사의 말을 녹음하게끔 했던 일들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요지는 특수교사가 본인의 자식에게 짜증을 내고 정서적인 가해를 해 왔다는 것인데 불법으로 녹음했던 것은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상한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 서이초 사건을 두 눈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분개하였다.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그를 비난하였다. 무엇보다 돈을 가진 이들이 얼마든지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에 열을 내었다. 분명 이것은 맞는 부분과 틀린 부분이 양존한다. 특수교사의 행위가 한순간 소멸되었으며 주호민을 일반으로 보지 않고 연예인이라는 잣대로 바라본 것, 그리고 서이초와 결부 지은 것들은 다소 과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다시 반대로 생각해 주호민이었기에 가능했던 소송(일반 장애학생의 학부모들은 아이와 비슷한 장애를 겪고 있거나 본인들이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신뢰율이 높음)이고 그가 유투버로서의 모습과 많은 면에서 대조되었다는 것은 비난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아이를 못된 아이처럼 바라본 특수교사를 벌 주기 위해서 그와 가족이 했던 일은 그를 옹호했던 구독자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그의 행동을 인정할 수 없다. 서이초 학부모처럼 그가 가진 자였기 때문에 사건을 유리하게 진행했던 것도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장애를 가진 학생의 학부모이고 정작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학부모라면 어떤 반응을 했을지는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영화 [그녀에게]를 보고.
2
상연(김재화)이 그랬다. 특수학교로 전학 가기를 바라는 같은 반 학부모들의 민원을 듣고 아들 지우(빈주원)의 담임교사는 상연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린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상연은 그 일에 가만히 있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자신이 일했을 때 알고 지냈던 지인을 총동원해 억울하게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대해 기사화 시키려고 한다. 상연의 이러한 대응 방법은 주호민이 그랬던 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미 상연의 입장에 공감하는 과정에 있었기에 그녀의 선택(물론 기사화하는 것을 취소하지만)에 대해 불편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연이 만약 기사화하려고 했던 것이 진행된다면 이것은 아들 지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같은 반 학부모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학부모 입장을 옹호한 채 소수자인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학교를 타깃으로 한 것인가? 과연 그들에게 돌을 던질만한 것인가? 작품 속에서 지우가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온 뒤 상연은 전화를 받고 달려간다. 학부모들은 웅성거리고 담임은 조용히 상연을 불러 이야기한다.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우가 체험학습 내내 어떠한 행동을 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다수의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는 교사는 지우를 달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저학년인 같은 반 학생들은 지우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일반 학교에서 비일비재하다. 통합학급에서의 수업을 장애학생을 둔 부모나 교육부는 아이들의 적응교육을 위해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통합수업에서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제대로 앉아서 수업을 소화해 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다른 학생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나고 역으로 일반 학생들은 그런 일이 있어도 친구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이해를 강요받을 수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장애학생 부모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3
상연은 그나마 재정적 사정이 나은 편일지 모른다. 내가 만나본 장애학생들의 가정은 극중 상연 집안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활교육을 지원해 주는 지자체가 생겨나긴 했지만 사비가 들어가며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번 갈 때마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장애인 활동 지원사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그도 시간적 제약이 있고 상연의 대사처럼 아이의 상황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기에 장애아를 둔 학부모가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더 크나큰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기정사실이다. 그래서 학교에 맡기고 손을 놓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불만이 있어도 주호민처럼 그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일반학생과 어울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주어진 상황에만 만족하지 않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더 큰 꿈을 가진다. 가능성이 희박하겠지만 상연은 그 희박한 가능성마저 열어둔다. 그리고 감독은 적극적으로 장애학생을 둔 학부모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고 만들어야할 정책에 대해서도 건드린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장애인 정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하고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함을 말이다. 이것은 상연과 같은 이땅에 장애아동을 둔 부모나, 그 아이를 교육해야 하는 특수교사 및 담임교사 혹은 학교에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마련해야하는데 그 정답이 있을 것이다.
[출처] [그녀에게] 함께 살아갈 방법은 누가 마련하느냐? ★★★|작성자 카네프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