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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부터 뉴스를 보지 않아서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까지 공부는 열라 하고 있는데 그래서 어쩔 것인가에 대한 뾰쪽한 대안이 없어 스스로도 적잖이 당혹스럽습니다. 트럼프 발 '관세 전쟁'이 장기 전으로 갈 것 같고 금값이 진행형 고공행진을 하는 걸 보면 불확실성이 끝나길 바라는 건 텍도 없는 것 같아요. 달러(1.428)도, 위안화(19.541)도 다 못 믿겠다는 것 아닙니까? 2025년 표류하고 있는 조국은 이제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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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이 끝났고 삼국지 33회차에 진입한 가운데 '신야'의 유비가 관우-장비-조자룡에 이어 책사 제갈공명이 합세했으니 천군만마로 날개를 단 격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30년 이상 배웠는데 '삼국지'가지고 국면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믿음 사이에 ‘철학’이 있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끝없이 진화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우리 건물 주는 재주가 좋은 양반인 것 같아요. 지금 시기에 가게 두 개가 동시 입주해 집세를 내겠다고 서로 '쿵따리 바라봐'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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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발원지는 원래 서양이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교차 점이라고 합디다. 신자 분들, 혹시 서양사를 깊이 있게 공부해 보셨나요? 서양의 문명은 크게 두 개의 사상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하나가 그리스의 헬레니즘이요, 또 다른 하나는 히브리인들의 헤브라이즘입니다.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철학, 자연과학 등의 인간 중심의 문명입니다. 이에 반해 헤브라이즘은 현재 기독교 신자 분들이 그토록 절대시 하는 기독교적 신 중심의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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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초기 문명인 미케네 문명을 근간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도 여타 민족과 마찬가지로 신화가 있었고 그게 그리스신화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신관은 기독교의 신관과는 틀린 다신교적 신관이었습니다. (공통점은 시기하고 질투하는 신이라는 점) 그리스인들에게는 신은 단지 인간과 같이 고민하고 호흡하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관심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 보일 수 있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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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의 정체인 제한적인 민주 정으로 인해 생산 활동에서 자유로워져서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도 마련되어 있었던 점도 크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질의 근본을 ‘물’이니, ‘불’이니, ‘원자’라는 주장도 하게 되고 만물의 상대성을 강조한 ‘소피스트’가 등장할 수 있는 토양도 마련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정말로 눈부신 철학, 과학, 수학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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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하여 피타고라스 정리를 밝힌 피타고라스 시기는 좀 후입니다만 부력의 존재를 밝힌 아르키메데스 등등 상당히 많은 천재들이 등장하여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이때까지 기독교의 예수는 태어나지도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그런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거치면서 약화되었고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마케도니아의 필립 왕과 알렉산더대왕에게 정복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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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는 그리스에 그치지 않고 동족으로 정복을 계속하여 페르시아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 서북부까지 진출합니다. 그의 제국으로 말미암아 동서 문화의 융합이 이루어지고 인도의 굽타왕조의 간다라 문명이 발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후 이탈리아반도의 조그마한 소국에서 출발한 로마가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 등을 거치면서 서양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로마 공화정 말기 즉 기원 전후에 로마가 최전성기의 시작에 도달했을 때쯤 유대의 한 지역에서 예수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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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시어저),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폼페이우스 등의 인물들과 동시대 인물이죠. 이때까지만 해도 서구의 문명은 동양의 진, 한 문명, 인도의 제 문명 아라비아반도의 문명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이었습니다. 건축, 법률학, 철학 등 일부 분야에서는 오히려 앞서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서서히 로마에 퍼져 가면서 고대 서구의 찬란했던 인간 중심의 문명은 퇴조의 길로 접어듭니다.(로마제국 멸망 원인 중 기독교라는 사학자도 있습니다만 패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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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시기에 기독교의 근간이 마련됩니다 만 우습게도 현재 기독교인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교리 중 상당 부분이 종교 회의라는 인간들의 회의에서 그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일반 기독교 신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전통적인 시대구분 논에 따르면 중세라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보통 이 시기를 사학자들은 서구의 암흑 시기라고 해요. 이때 기독교는 역사상 최고의 극성기를 누립니다 만 대신 인간은 한낱 ‘야훼‘라는 신의 피조물로 전락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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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인간 중심의 문명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문명의 후퇴를 가져왔고 이 시기에 서구는 동양의 수, 당 문명이라든지 이슬람 문명에 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622년 헤지라를 그 원년으로 하는 이슬람의 등장은 서구 기독교 지배층이 여러 가지 이유로 흔들리는 교황권을 다시 세워 보려는 야심에 좋은 도구가 됩니다. 잘 아시는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전쟁은 성전이 결코 아닐뿐더러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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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계기로 서양에는 선진 이슬람 문명과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더 멀리는 중국의 발달된 문명과 접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서구 문명의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그 연쇄반응으로 신 중심의 문명에서 탈피하여 다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인간 중심의 문명으로 돌아가자는 시대적 조류가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단테, 보카치오, 밀턴,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등의 선각자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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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도 그들의 학문이나 작품의 소재는 아직 기독교 중심이었으나 그 접근 방법에 있어선 분명 인간 중심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선각자들이 서구의 입장에서의 지리상의 발견을 하였고 코페르니쿠스를 필두로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들이 기존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우주관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에 더 나아가 인류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천재 뉴턴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천재의 세기인 17세기에 서구의 근대 과학이 기초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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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이 세계 모든 문명에 대하여 서구의 문명은 비교우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는 사회 제도적인 측면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하겠습니다. 그 이후로 계몽주의의 등장과 함께 기존의 폐습과 악습 그리고 고정관념(기독교 포함)을 타파하려는 노력들이 루소, 볼테르 등등의 사상으로 표출되었고 마침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서구의 민주주의 사는 새롭게 거듭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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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세계사적 관점으로 봤을 때 기독교가 서구 문명의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분석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헤브라이즘이 예술 등의 분야에서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 과학 문명의 근간은 헬레니즘임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가 서구를 선진화했다는 주장은 합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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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34회차입니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가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성과가 드러나지 않으면 내면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성경을 보고, 기도하는 일로 그저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인데 고난의 시간을 인내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니 에예공!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이전 내용을 요약하면 어린 손권이 강동의 새 주인이 되자 조조는 그에게 벼슬을 내립니다. 손권과 조조가 친해지는 것을 걱정한 원소는 무리하게 군사를 모아 조조를 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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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패한 원소는 상처를 입고 달아나다 죽고 말아요. 유비는 조조가 전쟁을 벌이는 사이 텅 빈 허창을 치려 합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조조와 중간에서 맞붙게 되고, 크게 지고 맙니다. 유비 삼 형제는 형주 태수 유표에게 몸을 맡기지요. 유표가 유비를 신망하자 이를 시기한 채 씨 남매는 계략을 짜고 풍년제에서 유비를 죽이려 합니다. 구사일생을 목숨을 건진 신야의 유비는 수경과 서서를 만나 조비와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고 협박하는 조조로 인해 유비는 서서를 조조에게 떠나보내고 코가 푹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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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서서로부터 제갈공명을 천거 받고 공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삼고초려 끝에 공명을 얻고 제갈공명의 집에서 천하 평정을 논한 후 제갈공명을 얻고 하산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방통과 공명 모두 유비가 데리고 있었으니 인덕이 많은 것 같네요. 훗날 '사마휘'라는 걸출한 인물이 조조의 책사가 됩니다. 유비는 이제 꽃길 일가요? '손책'은 사냥 중 기습을 받고 위독하게 됐고 가면을 쓴 이들이 누군지 알 길이 없습니다. 강동(오나라)의 창업주는 손견이고 그의 두 아들이 손책-손권이며 미망인이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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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를 등장시킨 걸 보면 저자는 범인을 알 것입니다. 결국 동생 '손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면서 18세의 '손견'이 강동의 새 주인이 됩니다. '손책'은 허도를 급습할 계획에 따라 군을 이끌고 북상하였는데, 광릉 태수 '진등' 과의 접전이 먼저 이루어졌고 '진등'은 예전에 '손책'이 격파한 '진우'의 친척으로 진우가 손 책에게 당한 것을 갚고자 했어요. '손책'은 '진등'과 대치하면서 단도에 머물며 군량 수송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피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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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의 이름은 ‘허소’로, 그가 '허공'의 빈객인지, '진등'이 보낸 '엄백호'의 잔당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건강실록에 따르면 '진등'이 '엄백호' 잔당을 활용해 '손책'을 잡으려고 하였으며, '손책'이 이를 파악하고 진 등을 토벌하려고 움직이자 이때 '진등'이 보낸 '엄백호' 잔당 '허소'가 손 책의 얼굴을 피습한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진 등의 계책이 성공한 것이고, 진 등은 조조군 소속이라 손 책 암살의 배후는 조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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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지’는 군을 대치하던 중 사냥에서 손 책이 암살당했다고 평가했어요. ‘강 표전’에 따르면 '손책'은 평소에 사냥을 좋아해서 수차례 사냥을 나갔는데 '허공'의 식객들이 이때를 노려 '허공'의 복수를 하려고 했다고 해요.' 손책'은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그 군졸로 있었던 '허공'의 식객 3명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손책'이 "그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라고 물어봅니다. 그들은 "저희들은 한당 장군의 병사들인데, 사슴을 잡느라 여기 있는 것입니다."라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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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 책은 "개소리 집어 쳐라! 그의 병사들이라면 내가 다 기억하는데, 너희 같은 X끼들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라고 화를 폭파시켰고, 이에 식객들도 정체와 본색을 드러내며 도발하고 공격하자 전투 끝에 한 사람을 활로 쏘아 죽입니다. 겁에 질린 나머지 둘은 '손책'의 뺨과 몸에 화살을 적중시키거나 칼과 창으로 찌르는 등 '손책'에게 제대로 치명상을 입혀서 손 책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다행히 잠시 후에 손 책의 기병들이 도착하여 남은 두 식객들도 마저 다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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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손책'은 어렵사리 목숨을 건졌으나, 하도 상처가 심해서 곧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당히 위급한 상태였습니다. 오력에 따르면 손 책이 상처를 입었을 때,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 의원이 백일 동안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손 책'이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더니 "내 얼굴이 이와 같은데, 아직도 다시 공을 세우고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라며 책상을 치고 화를 내니 상처가 모두 파열되어 그날 밤에 죽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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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책'은 상처가 심 하자, 장소 등에게 손 권을 잘 살펴 달라고 청했고, 아우 '손권'에게 뒷일을 모두 맡겨 후계자로 정하고, 밤이 되어 25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갑이었던 주유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로 정사에는 쇠도 끊을 만한 우애(단금지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녀 자매인' 대교'와 '소교'를 얻었을 때도' 대교'를 아내로 삼으면서, '소교'는 '주유'의 아내로 삼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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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에서는 이 부분이 매우 간략하게 되어 있지만, 청춘 남녀의 사랑이 느껴지는 일화라서 그런지 여러 경극으로 로맨틱하게 각색돼서 널리 퍼졌다고 해요. '손책'이 1년 뒤 요절했기에 '대교'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은 없습니다. 연의에서는 이 때문에 '제갈 량'이 '주유'의 성질을 슬쩍 건드리는데 적벽대전 전 '주유'와 대화에서 "실은 조조에게 뭐만 주면 걘 강동은 뒤도 안 바라보고 갈 거임" 이라고 하자 주유가 그게 뭐냐고 물었는데 이에 '제갈 량'은 '이교'라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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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는 대교와 소교를 가리킨다는 말인즉슨 "조조랑 싸우기 싫거든 '대교'와 '소교'를 바치면 된다" 즉 "조조랑 싸우기 싫으면 네 아내와 전 주인의 아내를 바치라"는 말입니다. 한편 우리 관우와 장비는 '유비 바라기'에 여념이 없는지라 주공이 제갈 공명 에게만 신경 쓰는 것이 영 판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2025.4.24.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