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 금선대의 두 도인---닦는 마음 밝은 마음 묘향산 금선대란 조그마한 암자에 육십이 좀 지난 두스님이 열심히 정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분이 서울 구경을 하겠다며 바랑을 짊어지고 나섰다. 절을 벗어나 안주, 박천 쪽으로 내려오다 푸주간에서 백정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백정이 뼈와 살코기를 따로 나누고 뼛속 깊이 붙어 있는 살점까지 다 발라내는 모습을 보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분별도 저렇게 샅샅이 닦아야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은 백정도 한번 해보아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스님은 그날 밤에 당장 몸을 벗어 버렸다. 법法이 선만큼 마음에 일으킨 생각도 즉각 실현된다 얼마 후 젊은 백정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는 너무나 총명하고 일하는 소견이 보통이 아니었다. 스님이 몸 받아 오신 것이다. 백정이 되어 보겠다는 원으로 태어났기에 그 일에 너무 열심이어서 그 집은 부자가 되었고, 어느덧 그의 나이 19세가 되었다. 한편 묘항산에 혼자 남아 공부하던 도인의 나이도 팔십이 넘어 몸 바꿀 때가 되셨다. 그때 비로소 20년 전에 서울 간다는 도반이 어디에 갔는가 살펴보니, 가까운 박천 땅에서 백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암자를 친구에게 맡기고 다시 몸 받아 오셔야 되겠기에 그가 스스로 찾아올 수 있을까 하고 혜안으로 보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올 수 없는 것을 아시고 데리러 박천으로 가셨다. 백정의 집 앞에 가서 안을 들여다보니 스무 살 남짓한 기골이 장대한 젊은이가 푸주간 일에 열중하고 있다. 목탁을 쳐도 쳐다보지 않고 자기 일에 열중이다. 좀 지나 다시 목탁을 치니, 그 젊은 백정은 설마 자기같이 천한 사람을 점잖은 도인이 찾을리 있을까 하고 의심하면서도 '나를 찾느냐' 는 뜻으로 일하는 칼끝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도인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순간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이 집에 무슨 인연으로 태어나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나. 내가 본래 가는 길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일면서, 일할 때 입던 앞치마를 벗어 놓고 스님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아이들이 동무들과 어울려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며 애착을 가지고 흙장난을 정신없이 하다가 해가 져서 어머니가 저녁 먹으러 가자고 부르시면 모든 것을 다 팽개쳐 두고 아무 미련도 없이 어머니 뒤를 따라가듯, 도인이 '그렇소, 당신을 찾소.' 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는 순간 백정 일은 다 잊어버리고 저이를 따라가 본래 내가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친구를 데리고 가려는 도인의 법력이 미쳐서일까? 아니면 수많은 생을 부처님 향해 닦던 이라 도인을 보는 순간 홀연히 자기 모습이 깨쳐진 것일까? 마침 목탁 소리를 듣고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이 밖으로 나왔다. 젊은 백정은 가족들을 한번 죽 훓어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저만큼 걸어가는 도인을 따라갔다. 그러나 가족들은 아무도 그를 잡지 못한다. 그 집에 주고받을 인연이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까 봐 백정질을 잠깐 해보려 태어났기 때문에, 출가하려는 강력한 서원이 서는 순간 아무도 그 서원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 시간을 '어디로 가십니까?' '왜 따라오느냐?' 라는 말도 없이 묵묵히 걸어갔다. 수많은 생을 태어나 출가하여 부처님 찾는 일이 너무나 몸에 배인 수행자이기에 이미 습관에 달해 있었다. 어느 산기슭을 지나 계곡을 계속 오르는데, 생전 처음 오는데도 낮익은 모습들이다. 암자에 도착하니 포근하기 그지없다. 마당과 절구, 부억 등이 모두 보던 것이다 . 배가 고프니 부억에 들어가 밥을 지어 먹고 저녁에는 깊이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종성과 목탁 소리가 그저 좋기만 하다. 삼 일이 지났을 때 마음이 안정되고 조용하더니 숙명통이 열렸다 그때 그 젊은이는 팔십 된 노인 보고 반말로 친구에게 하듯 이야기한다. "너 왜 이제야 날 데리러 왔니?" 백정질은 마음 닦는 데 도움이 되라고 한 것인데 과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13살이 되면 스승과 도량을 찾아 출가를 하는데 7년을 더 허송세월하게 내버려 두었다는 원망과 같은 이야기다. 팔십 노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내 마음 들여다보고 내 공부하기 바빠서 널 생각할 틈이 없었단다.'' 얼마나 자기의 마음 살림살이에 철두철미하고 진실한 태도들인가? 우리들은 마음을 부모, 형제, 친구에 붙여 보내고 돈, 명예, 물질에 붙여 보내는데, 이 도인은 공부에 충실하다 보니 친구의 일엔 신경 쓸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19살 청년과 팔십 노인이 친구들처럼 반말을 한다. 전생의 친구인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으니 말이다. 그 젊은이는 공부 잘하고, 그 노인은 새 몸을 받아 금선대에 출가했을 것엔 의심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