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수도가 얼어 터졌다
참았던 말,
들어주지 않으니 손목을 그었다
혹한을 흘러내린 흰 피, 빙판이 되었으니
너무 혼자 오래 두었구나
울다 끈을 놓았구나
발목을 덮는 두께
차디찬 통곡이었을 것이다
그 위에 누워본다 (후략)
- 이규리 '동파' 일부
외로운 것들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너무 조용해서 그걸 알아채지 못할 때가 있다. 소리 없이 마음에 금이 그어졌을 때 몰랐던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 동파되어 얼어 터진 수도관을 보며 우리네 슬픔을 간파하는 힘이 놀라운 시다. 날이 추워지고 마음이 꽁꽁 얼어도 옆 사람 손을 잡아주며 새해를 열자. 눈길을 녹이는 건 이름 모를 이의 발자국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구인가 스쳐지날 때 닿는 희미한 눈빛, 더듬어보지만 멈칫하는 사이 이내 사라지는 마음이란 것도 부질없는 것 우린 부질없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친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낯낯이 드러나는 민낯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날 듯 말 듯 생각나지 않아 지날 수 있었다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더욱 부질없어질 뻔하였다 흩날리는 부질없음을 두고 누구는 첫눈이라 하고 누구는 첫눈 아니라며 다시 다듬어보는 허공, 당신은 첫눈입니까
오래 참아서 뼈가 다 부서진 말
누군가 어렵게 꺼낸다
끝까지 간 것의 모습은 희고 또 희다
종내 글썽이는 마음아 너는,
슬픔을 슬픔이라 할 수 없어
어제를 먼 곳이라 할 수 없어
더구나 허무를 허무라 할 수 없어
첫눈이었고
햇살을 우울이라 할 때도
구름을 오해라 해야 할 때도
그리고 어둠을 어둡지 않다 말할 때도
첫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