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마르 5,21-43)
한적한 시골 마을에 요즘 갑자기 아기들 울음소리와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오고 있습니다. 메르스 공포 때문에 도시에서 피신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부모들이 아기들만이라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으로 보낸 것입니다.
‘메르스 사태’가 커지면서 저희 본당 신자들도 서울이나 다른 큰 도시에서 온 이들과의 악수나 대화를 은연중에 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외면하는 현실을 보면서 너무나 괴롭습니다.
‘이런 상황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실까? 교황님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라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참다운 가치를 더 강조하시면서 그 가치를 몸소 실천하셨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랑, 정의, 존경, 평화, 용서, 진리 같은 가치들을 말씀하시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시고 서로의 지혜를 모아 가장 피해가 크고 힘들어할 사람들부터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교황 주일에 생각나는 교황님들이 있습니다. 한 분은 눈에 보이는 가치와 변형된 권위를 중요하게 여겨 교회와 많은 사람에게 피와 눈물을 흘리게 하셨고, 다른 한 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참다운 권위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주신 분입니다.
저는 교회 역사상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고 가장 큰 어려움을 겪게 했던 교황은 제217대 교황 레오 10세(재위 1513~1521)라고 생각합니다. 본명은 조반니 디 로렌초 데 메디치로 당대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피렌체에서 ‘위대한 메디치’라고 불렸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차남으로 태어나서 1489년 14세의 나이에 부제급 추기경이 됩니다. 돈, 명예, 가문이 세계 최고였습니다.
예술을 사랑해 라파엘로(화가)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교회 건축에도 관심을 보인 레오 10세는 베드로 대성전을 완성하도록 종용하며 일명 ‘면죄부’(면벌부, indulgentia. ※편집자 주 - 주교회의 용어위원회가 편찬한 용어집에선 ‘대사’로 바로잡았다. 지면에선 그 뜻이 크게 어긋남이 없어 저자의 글을 그대로 실음)를 발행했습니다. 1513년에는 독일 마인츠 마그데부르크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8년 동안 면벌부에 대한 권한을 줬고,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 요한 티첼에게 권한을 일임합니다.
면벌부로 인해 교회는 분열되고 독일은 농민전쟁이라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종국에는 수백만 명이 사망한 유럽 최초 국제전쟁인 ‘30년 전쟁’(1618~1648)이 벌어집니다. 레오 10세는 인문학과 예술을 사랑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지만 눈에 보이는 가치와 화려함을 중요시하며 주변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화를 단절해 이처럼 참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에 반해 261대 교황 성 요한 23세(1958 ~1963)는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가난한 소작인 농부의 집에서 1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성 요한 23세는 교황 선출 후 교도소, 비행청소년 학교, 소아마비 병원 등을 방문해 대화를 통해 소외된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셨습니다.
또 「지상의 평화」라는 회칙을 발표해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세계 평화, 빈부 격차 문제, 노동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회개와 쇄신’을 주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해 교회가 정체성을 되찾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교황 주일입니다. 베드로 교황은 예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스승의 모습을 따랐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2베드 1,5-7)라는 가르침을 통해 진실한 가치의 실천을 권고하십니다. 진실과 열정으로 위기를 극복해 도시 사람들과 시골 사람이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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