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youtube.com/watch?v=9OQjMt2UoH8
괜찮은 동영상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날부분은 단단하게 날등쪽은 무르게하는 가공은 결코 좋은 칼의 제조법이 아니란 것입니다.
칼재질은 검신전체가 균질하게 가공된 것이 더 좋은 가공입니다.
그리고,
http://www.youtube.com/watch?v=NXVgtDqwPSM 을 보시면 중국칼또한 검신재질의 균질성에서 나오는 굽힘이 분명하죠.
중국영화인 무사:4대문파의 혈투라던가
http://cafe.daum.net/Pointer/DhC1/1444?q=%BF%B5%C8%AD%2C%20%C1%DF%B1%B9%2C%20%C0%CF%BA%BB%B5%B5&re=1에서 배형도와 육각구조, 사각구조의 글을 보면 한국과 중국의 칼과 일본도의 칼구조의 차이가 나오는데, 그러한 구조는 한국과 중국의 일본도디자인을 모방한 칼은 균질하게 제조된 칼임을 의미한다고 봐야 될거 같습니다.
육각구조자체가 망치질을 했다라는것이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hgnsdhkdwk&logNo=100177040630를 보시면 일본도의 제조과정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게 다 뻘짓거리죠.
위의 카페글에 성호사설에서 우리나라사람이 일본도를 얻으려면 경사면을 갈아내서 배형 구조로 만들어서 사용했다는데, 그게 무슨말이냐면 균질검신의 칼 그라인더(당시엔 숫돌)에 갈아서 외날도로 만들어 썼단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디자인이라도 장군검이라던가 환도따위가 적어도 검신은 더 좋은거였단 결론이 나올수도 있죠.
다만 한국제 검의 경우 일본디자인을 배길정도로 디자인면에서 진보는 무척이나 낙후되어 있었던 점또한 고려해야합니다.
태조대왕어도의 개안습한 (존재하지 않는)칼날막이랑 손잡이를 봅시다;;;;;
일본도가 진정우수한 것은 적어도 동양권에서는 검신과 손잡이와 코등이부분이 조립식인 점에서 나머지 3국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하면 한국은 검신끝에 가죽붙여서 휘두르고 다녔습니다.;;;;;
중국칼또한 검받이같은 것은 전혀 진화하지 않았죠.
아마도 일본도또한 몽골침입기라던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검신에 가죽때기 풀로 붙여서 휘두르지 않았을 법은 없다고 보지만 적어도 임란시점에서는 디자인면에서는 일본도>>넘사벽>>한국제입니다.
그러므로 일본도의 장점은 검신이 아니라 츠바, 츠카, 시토도메카나쿠의 우수성에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임란이후의 환도는 그러한 일본도의 디자일을 차용했을거라고 보면 임란이전의 환도는 그립이 개판이라서 유럽애들이 까고마는 일본도의 versatility, 복잡한 움직임조차 구현이 안됐을거라고 봐야겠죠.
가장 위의 동영상에서 일본도는 사실상 한가지 바리에이션밖에 없다고 서양애가 욕하지만 반대로 칼디자인이 발달한 유럽애들 입장이라면 폼멜과 손잡이가 제대로 된 유일한 칼이 일본도;;;;라는 상황또한 가능하기 때문에 안습하지만 중국과 한국이 깔 물건은 아닌게죠.
중국의 jin은 구색은 갔추고 있지만 너무 경량이구요.
서양애가 일본칼은 가드가 제대로 된 놈이 없다고 기본적으로 칼로 칼을 막는 무예를 위한 칼이 아님을 지적하고, 실제 검도에서 칼로 칼을 막는 기법은 그닥 발달되어 있지 않긴한데, 환도링크의 흑백사진을 보면 아예 가드가 전혀 확인이 안됩니다.
그게 없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더 심각하게 칼끼리 겨루는 기법과 칼디자인자체의 발달이 미미했다는거죠.
참고로 일본검도에서는 베가본드에서도 묘사되지만, 어디까지나 먼저 베는게 우선이고, 드문경우에 한해서 칼끝으로 쳐내고 내가 벤다거나 아니면 서로 베기힘든 거리로 근접했을때 손잡이 부분에 가까운 검신으로 밀쳐내고 다시 베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롱소드마냥 검신중앙으로 적상단베기를 막으면서 발치기로 낭심후리기 이런 기법은 애초에 불가능하죠. 그랬다가는 칼만 두동강나고 내머리에 박혀버릴테니까요.
=> 사실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일본검도를 좀 더 포괄적으로보면 유도가 있어서 그래플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거죠. 외날도 성격상 지근거리에서 투로가 제한되니까 물러나서 다시 베는 거리를 재는게 아무래도 유리하달까요. 베기위주로 수련한 수련자의 상태까지 감안하면요. 게다가 많은 유파와는 다르게 기법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고 봐야됩니다. 기법이 발달했으면 칼디자인또한 보다 세분화되었겠죠.
첫댓글 애초에 동양쪽은 서로 칼로 방어를 하는게 아니라 베어서 죽이는게 목적이라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찌르는 칼이 아닌 베는 칼이다 보니 찔린거 보단 베어버리면 행동불능 상태이니...
그렇것도 있지만 태종어도와 문관도와 조선후기인 철종어도의 칼받이의 차이를 보라는 것이죠. 조선초기의 칼은 비유하자면 날디자인만 직선인 낫이 다름없다고 해도 될정도로 허접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는 임란이후로는 나름 칼디자인이 진화하지만 겨우 그정도라는 거구요.
실제로 낫과 칼의 클라스차이가 거기서 거기다보니인지는 몰라도 승병들같은 경우에는 낫가지고도 적잖은 군공을 올렸습니다. 조선중기까지는 낫이나 칼이나 닥치고 휘두르는 놈에 불과해 비슷한 무기를 쓰는 상대와 부딫혔을때같은 상황은 그닥 고려되어 있지 않죠. 대책은 낫이건 칼이건 먼저 칼빵놓으면 승.
조선후기 교본인 무예도보통지만 봐도 칼계열의 위상을 알수있죠 병과에 칼이름을 갖고있는 병종이 없음 팽배수인가 원형방패를 든 방패병이 짧은칼을 찬다는게 고작이죠 오히려 방어를 깰수있는 도끼가 더 선호된 느낌이고 낭선등의 무기를 보면 접근전에서도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한게 느껴지는게 창종류는 꽤 됐던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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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글은 웹상에서 흔히 보이는 '카타나가 킹왕짱존나센칼이라능!' 이라고 우기고 다니는 놈들을 까려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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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없어서 두드려댄건 아닙니다. 좋은 철광석이없고 사철뿐이었기에 그렇게라도 한거에요 ㅠㅠ 일본도 좋은철이 생산됬다면 이렇게 이상하게 만들지는 않았겠지욤.
동양쪽은 검이 아니라 칼 아닌가요? 그러니까. 도(刀)요. 휘둘려서 벨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바로 그 도를 만드는데 한국이나 중국은 검신을 갈아서 만들었고, 반면 일본은 두들겨서 만들었는데 날성능스펙은 한중이 더 좋아야될거같지만, 그립이라던가 나머지부분을 감안하면 한중의 도는 무자게 허접이고, 심지어 한국제초기형 도들은 낫만드는 장인이 만들었나 싶을정도로 심각하게 공정이 그런 쪽인거 같음을 감안하면, 태반의 한국형 도들은 생산도구와 연관성을 뗄레야 뗄수없는 허접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검신성능조차 일제와 비교해서 우위를 의심케한다고 볼 수 있단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