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257장 (구 189장) / 누가복음 22 : 1 – 13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257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22장 1절 – 13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둘 주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아멘!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에게는 늘 붙어 다니는 수치스러운 수식어가 있습니다. 배반자라는 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는 실눈을 가진 음흉스러운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반한 일로 인해서 이처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에 입 맞추는 것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인시키기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과 약속했습니다. 사랑과 애정의 표시를 배신과 비열의 표시로 전락시켰으니 그런 대우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고 교훈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첫째 이유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의하면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 이것은 귀신들렸다는 표현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복음서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은 신체적인 기능장애를 일으키며 정신 이상으로 자학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단이 들어간 즉시 그의 몰골이 이상해지면 악마로 변해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의논할 때도 지극히 정상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유다를 상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파는 배신하는 일에 유다의 생각과 행동이 사단의 통제 아래 있었다는 뜻입니다. 유다가 그 이후로 계속 사단의 통제 아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나중에 예수님께서 정죄 받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기의 한 일을 뉘우쳤습니다. 항상 사단이 그를 지배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단에게 생각을 지배당하면 가룟 유다가 그랬던 것 같이 비열하고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인류의 대적입니다. 결코 그를 미화하거나 영화나 만화에서 하듯이 막강한 권세를 가진 엄청난 영적 존재로 부각시킴으로써 두려움으로 그를 숭배하게 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힘으로 사단과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신 사람만이 마귀를 대적할 수 있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4절 말씀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아멘!
예수님을 배반한 둘째 이유는, 유다가 탐심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만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6일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자 마리아가 고이 간직한 값 비싼 양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가 주동이 되어서 귀한 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지 않고 허비한다고 그녀의 행위를 비난했습니다. 이것은 마태와 마가도 기록하고 있지만, 사도 요한은 그들이 지나쳐버린 한 가지 사실을 부연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돈 생각이 나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일행의 필요를 위해서 사람들이 그분께 드리는 것들을 관리하고 지출하는 일을 맡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씩 횡령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절 - 6절 말씀입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니라." 아멘!
가룟 유다도 다른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만 믿었습니다. 그분을 따르다 보면 그분께서 왕이 되실 때 한 자리 맡게 될 것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받들어주는데도 그 역할을 맡기를 거부하시며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부쩍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실망과 희망의 상실은 한 순간 예수님에 대한 보복 심리를 일으켰는지도 모릅니다. 거기다 오랫동안 키워온 탐심에 마귀 사단이 불을 질러 그분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흥정을 할 생각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유다의 배반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한 후에 취한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입니다. 그가 대가로 받기로 한 것은 은 30냥으로 노예 한 사람의 몸값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대가치고는 너무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적이 단지 돈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철저히 그의 동기는 물질과 세속 권력에 대한 탐욕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배에 참석만 한다고 해서 복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우리가 하나하나 믿음으로 실천하는 중에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이 땅 위에서 물질적인 복을 누리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은 이 땅이 아니고 천국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셋째 이유는, 유다가 거듭 난 체험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택하셨습니다(눅 6:12,13). 제자들을 둘씩 짝 지어 전도하러 보내셨을 때에 유다도 나가서 전도했고 여러 이적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구원받은 적이 없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라."(요 6:70,71)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을 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라.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 13:10,11)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4)
가롯 유다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경고의 말씀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도 다른 제자들처럼 "내니이까?" 하고 질문했는데 주님께서 그렇다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개하기는커녕 악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거듭 난 그리스도인이 가룟 유다와 같이 주님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을 대적하며, 탐욕을 경계하며,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되어 끝까지 주님을 따르며, 잘 했다 칭찬 받고, 금 면류관 쓰는 영광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