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3대 세습은 고 김주석이 안된다고 했다네요. 그래서 김위원장이 상징적 집단일원으로 존재시키고
실권은 장성택에게 ... 한사 말이 맞다는 최근 연구 결과입니다.
"김정은 보다 장성택에 권력집중 두드러져"
왼쪽이 김정은(30세) 가운데 2열 중앙이 실권자 장성택 앞줄 가운데 군사총 참모장
이승열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은 7일
북한에서 김정은보다 장성택에게 권력 집중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위원은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정은 후계자 공식화에 대한 검토와 전망'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 모든 권력의 중심이 마치 김정은이 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 김정은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책은 선군정치의 계승자로서 상징성만 부각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성택은 이미 노동당대표자회 직전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승진됐고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정치국 후보위원, 당 행정부장, 당중앙군사위 위원에 임명됨으로써 북한의 모든 권력기관에 장악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또 장성택 부인인 김경희가 인민군 대장 칭호와 함께 정치국 정위원, 당경공업부장직에 재임명됐고 장성택의 최측근인 최룡해가 정치국 후보위원 등에 임명된 점을 들며 장성택의 권력기반 강화를 설명했다.
이 위원은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인민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면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인민 대중의 지지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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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은 누구인가?
온건파로 합리주의자
강원도 천내군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69년 모스크바에 유학했다. 김경희와는 대학 동급생으로 만나 사귀게 됐고 1972년에 결혼했다. 놀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김일성에게 미움을 사서 일시적으로 강원도 원산경제대학에 좌천된 적도 있다. 김정일의 중재로 복귀해 김정일의 측근이 됐다. 김경희와 부부 관계가 나쁘다는 이유로 김정일의 노여움을 사서 1978년부터 2년간 가솔린 제철소에서 사상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후로는 마약 밀수를 진두 지휘하고 3대혁명 소조운동을 추진하는 등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권세를 부렸다. 2003년 10월부터 동정 보도가 끊겼고, 2004년 초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의심받아 업무정지 처벌을 받았고, 2년 만에 복귀했다. 나중에는 오랫동안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아내 김경희와 함께 강원도로 요양을 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 등으로 있다가 실각했으나 2006년 복권되었다.[1] 2006년 1월 2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에서 개최한 음력 설 연회에 참석했다고 나와 복권 사실이 판명됐다. 실각되기 전까지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이었지만 복권 후에도 같은 일을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북한 보도에서는 단지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라고만 소개됐다. 2010년 6월 그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부위원장에 임명되어, 삼남 김정은의 후계구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돌고 있다.
실질적 실권자설 [편집]
대북전문가 인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전 국회의원)은 김정일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완벽한 후계구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장성택이 유일한 김정일의 권력대행자라고 평가했다.[2] 미국 정부는 김정일 정권 붕괴후 주목할만한 주요 인물로 김평일과 장성택을 주목하고 있다. 2008년 8월 이후 '김정일 중병설'이 퍼진 와중에 같은해 9월에는 장성택이 김정일을 대행하는 형태로 권력을 장악했다는 후문도 흘러나왔다. [3] 2008년 8월말 장성택이 교통사고로 중병에 걸렸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를 두고 김정남을 후계자로 미는 장성택과 차남 김정철을 후계자로 미는 군부 사이에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는 해석도 나왔다. 2009년 현재, 김정일의 병상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인물도 아들들을 제외하면 김정일의 주치의와 김옥 그리고 장성택 세 사람 정도이다.[4] 2009년 2월 15일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됐을 때 장성택이 김정일의 3남인 김정운을 민다는 보도가 나왔다. 2009년 4월 9일 12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을 4명 더 늘렸다. 장성택은 대한민국의 대북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신임 국방위원으로 임명되었다.[5]
사상.이념.행적 [편집]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에게 북한을 개혁개방하라고 요구했다.
권력구도 [편집]
강선제강소로 좌천된 장성택을 결정적으로 구해준 사람이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이다. 이후 장성택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김정남을 옹립하고 나섰다.[6] 2007년 8월 28일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러시아의 북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김정남의 복귀 소식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첫째 아들인 그가 다른 형제들을 권력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보도했다.[7] 김정남은 이모 성혜랑의 1996년 미국 망명으로 그 위상이 크게 위협받았다.[8] 2009년 현재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9] 장성택은 과거에는 김정남의 후계 옹립을 도왔지만 나중에 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10] 장성택 부장은 각별한 관계인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버리고 삼남인 김정운을 지지하는 대신 권력의 핵심 요직에 자신의 사람들을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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