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장
1. “집값, 오늘이 제일 싸다”
부동산 시장을 보면 늘 집값이 오른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은 이번에도 오르고, 계속 오르고, 더 오르고, 떨어지다 곧 또 오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집값 오늘이 제일 싸다”는 어느날 명제가 됐다.
그들은 “이러다 서울 아파트 영영 못 살 수도...”라고 말한다. 집이 없는 사람은 너무 불안해진다. 하다하다 김 모씨라는 전문가는 공중파 방송에 나와 “집은 어쨌든 빨리 살수록 좋다”고 말한다. 듣는 귀를 의심했다. “제 동생이 지금 집을 사지 않는다면 알밤을 한 대 쥐어 박겠어욧!”
그들의 말을 듣고 영끌로 주택을 구입한 수많은 소비자들은 이제 시세하락과 급등한 이자부담을 모두 짊어져야한다.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이들의 ‘고통지수’나 ‘통곡비용’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 말한다. “이럴 때가 더 집을 사야할 때예요!”
우리는 라면물의 끓는 온도나 건물이 지진에 버틸 수 있는 임계점, 얼룩말의 평균수명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미래 가격 결정에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변수가 들어간다. 가격예측은 그래서 사실상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주택이 부족해서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의 특징이 있다.
일사천리 달변이다. 앵커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이 술술 나온다. 그리고 예전엔 어떤 직업에 종사했는지 과거가 없다. 그냥 무슨 달달한 그럴듯한 이름의 연구소장이다. 자신이 유리한 팩트만 참으로 잘 가져다 설명을 한다.
이런 뜨내기 전문가들은 곧 방송작가들의 수첩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런데 더 위험한 사람들은 무슨 무슨 교수와 제법 공신력있는 직함을 가진 전문가들이다. 나는 그들이 지난 10여년 넘게 무슨 주장을 해왔는지 기억한다. 그 주장은 정확하게 토건업계의 이익과 일치한다. 이건 우연일까.
오랜 출입기자로서 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나는 그들이 어떻게 도시계획위원이 되고, 대형 건설사의 사외이사가 되며, 건설사가 출자한 연구소가 마련한 컨퍼런스에서 발제를 하는지 알고 있다. 사실 그들은 오늘도 점심을 함께한다. 그러니 그들이 오늘도 “집값은 계속 오를 거예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도 올랐잖아요”라고 외쳐야한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오염된 주장은 오늘도 검증에 게으른 언론에 등장해 주택 공급을 부추긴다. 이들은 뜨내기 전문가들과 주장이 비슷하지만 사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들이다.
(바쁘거나 이미 집을 소유한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된다)
2. 공급
그래서 이들이 제시한 해법은 늘 ‘집을 더 지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늘 집이 부족했는데, 지난 6월부터 주택 가격이 급락 조짐을 보이면서 주택 공급론이 쏙 사라졌다. 6월 한달새 수도권에 수십만 채가 들어선 것일까. 사람은 그대로인데 집은 늘 ‘부족했다’ ‘넘치다’를 반복한다.
사실은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가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었을 뿐이다. 이게 제일 큰 이유다 (지난해 5백 만호가 부족하다던 미국의 주택시장은 지금 또 빈집 2천 만호가 남아돈단다... 나는 이 주장을 오래전에 똑같이 경험했다)
서울에는 해마다 2~5만가구의 아파트가 새로 공급된다. 여기서 공급이란 분양일까 입주일까? 정확히 한해 몇 가구가 순증했는지 계산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체 주택에서 일반 아파트의 분양 수치와 준공수치, 입주수치가 제각각이다. 여기에 또 멸실된 주택 수를 빼야한다.
업계는 서울시 주택국 통계를 잘 믿지 않는다. 서로 못믿으니 정확한 통계가 없고 그래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를 가져다 주장을 만들고 언론은 그냥 그것을 받아 적는다. (도대체 내가 이 계산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결론은 2018년부터 해마다 서울은 0가구에서 많게는 2만 가구 정도 공급이 적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부동산 업체는 훨씬 더 공급이 많이 줄었다고 하고 서울시는 오히려 늘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중앙일보도 지난 정부기간 주택 공급이 절대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 정부 들어 주택수가 적지 않게 늘었다. 2017년 이후 2020년까지 서울 주택 준공물량이 연평균 8만가구로 2011~2016년 연평균(7만4000가구)보다 8%가량 더 많다. 같은 기간 아파트는 3만2000여 가구에서 4만4000가구로 36% 늘었다./ 2022년 1월 2일 중앙일보]
부족한 공급이 집값을 올렸다는 주장은 그래서 일부분만 맞다.
예를들어 MB 정부 5년간 서울에는 32만가구가 공급됐다. 문재인 정부 5년간 38만 가구가 공급됐다(이건 대한민국 정부 통계다. 지금 e나라지표 주택건설인허가지표/주택건설인허가 실적을 들어가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오직 기자들만 잘 확인 안하는 지표다)
그런데 왜 MB정부때는 집값이 계속 내렸을까. 왜 그때는 다수의 전문가들과 언론이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큰일”이라고 매일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예를들어 2020년(4만9천가구)부터 올해(2만가구)까지 서울의 ‘아파트 입주물량’은 오히려 떨어졌다. 그럼 집값이 올라야 하는데 지금 집값은 왜 내려갈까.
혹자는 주택 공급은 늘었는데 가구수가 더 늘면서 공급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신규가구는 대부분 1~2인 가구다. 이들이 진짜 서울의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을까(1인가구의 78%가 연소득 3천만 원 이하다). 진짜 공급부족이 집값 상승의 핵심 요인일까?
사실 진짜 원인은 집을 사겠단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집을 사겠단 사람들이 줄어서 그렇다. 공급은 (인간의 마음에 비하면) 가격을 결정하는 매우 작은 부분이다.
그런데 주택공급을 계속 해야하는 토건업계에선 1)주택이 너무 많이 부족하고 그래서 2)문제가 심각하다는 주장을 키워야한다. 어떻게 부풀릴까.
예를 들어 전세시장은 투기수요나 가수요가 없다. 나도 부자가 되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가격에 끼어들 여지가 매우 작다. 그러니 전셋값은 장기적으로는 오직 수급이 결정한다. 그런데 주택이 부족하니 전셋집도 부족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전세값이 오르니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따라온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비교적 넉넉했던 서울의 전세 주택은 2015년부터 갑자기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부 규제가 주택 공급을 가로막기 때문에 규제를 공격해야한다. 예를 들어 ‘전세계약갱신청구권’도 결국 서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해야 한다. “전월세 혼란, 2년 뒤엔 대란!” “2022년 전세값 폭등 불보듯 뻔한데...” 같은 기사 수천 건이 쏟아졌다. 지금 전세시장은 어떤가? 그 주장을 한 전문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압권은 “계약갱신청구권으로 2년뒤 전세를 올리지 못할 것을 우려한 대치 A아파트 집주인은 미리 전세값을 5천만원 더 올리기로 했다” 같은 기사다. 이게 가능하다면 “내년 반도체 시장 불황을 예상한 삼성전자, D램 반도체 가격 미리 10% 올리기로”도 가능해야 한다. 이런 시장경제는 없다.
문제는 이런 기사가 나오면 실제 A동 집주인은 전세값을 2~3천만 원 더 올려 내놓는다. 공원을 낀 B동 집주인은 여기에 1천만 원을 더 올려 내놓는다. (전세는 자신도 모르게 집주인들의 일시적 담합이 가능한 시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른 가격이 다시 우리 소득에 맞춰 내려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전세값 거품은 순전히 엉터리 전문가와 언론의 받아쓰기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재건축 안전진단도 풀고 분양가상한제(나는 개인적으로 이 제도에 반대한다)도 풀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풀고 용적률도 풀어주자고 한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을 옥죄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베를린시가 집주인의 임대료를 맘대로 정해주거나 캘리포니아는 20억 주택을 갖고 있으면 보유세가 1년 5천만원에 육박하거나 프랑스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계약이 끝난 세입자도 쫓아낼 수 없다(트레브 이베흐날)는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 런던에서 92만파운드(14억원) 이상 주택을 구입하는 다주택자는 취득세를 얼마쯤 낼까? 정답은 13%다. 14억 주택을 구입하면 1억8천만원의 취득세를 낸다)
그래서 잠실 주공5단지도 대치 은마 아파트의 용적률도 뻥뻥 올려줬다. 그럼 그동안 용적률 상향이나 종 상향 없이 재건축을 한 주민들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용적률 상향은 사실상 조합원 한명 한명에게 현금 수천에서 수억 원을 쥐어주는 정책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왜 대치 은마아파트는 용적률을 올려주고 신림동 ##아파트는 용적률을 안올려주는가? 왜 명지대 앞 4층 연립은 6층으로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는가?
그렇게 계속 skyscraper로 가득찬 높고 빽빽한 서울을 만들면 이제 머지않아 천안과 목포와 포항과 삼척의 주택에는 누가 살 것인가? (‘아파트공화국’의 저자 쥴레리 발레조가 한강변 아파트를 보고 처음엔 북한이 침략하면 넘어뜨리는 거대한 철골구조물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디스아바바나 방콕처럼 마구마구 층고를 높여주는 게 좋다면 도대체 왜 선진국 전문가들은 이 좋은 것을 외면하고 용적률을 꼭꼭 누르고 있는 것일까. 이들 나라는 제대로된 도시 전문가가 없는가?
세계 어느 대도시나 주택이 부족하다. 집이 부족하면 결국 중산층과 서민이 피해를 본다.(인구밀도 세계 최강인 뭄바이같은 도시도 수십년간 용적률을 133%로 규제했다. 이해는 안되지만...) 그래도 선진국 대부분은 수도의 일정 지역만 상업화와 고층화를 허용한다. 그래야 지방이 살고 수도의 과밀화를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아무리 용적률을 풀어도 부동산 투기를 향한 인간의 욕망을 막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집값이 올랐다 내린다. 모든 자산시장이 그렇듯 시장이 (높아진 부가가치만큼의 가격인상을 제외하고) 균형가격을 되찾으면, 뒤에 들어온 10명의 자산이 앞에 선제적으로 들어온 두세명의 부유하고 전문적인 계층으로 이전된다. 쉽게말해 자산시장이 출렁이면 힘든 사람들의 돈이 넉넉한 사람들의 주머니로 이전된다. 늘 그렇다.
이 악순환을 알면서 앞장서 나팔을 불어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렇게 토건업계가 흘리는 빵 부스러기를 먹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렇게 토건업계가 흘리는 빵 부스러기를 먹는 자들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