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하나가 되는 길
서로 하나 됨은 평화처럼 구원의 완전한 표징이다. 마음 생각 행동이 서로 다른 우리는 분열된 존재로 비구원의 상태이다. 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세상의 분열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주 가끔 서로 하나가 되곤 한다. 경기장에서 응원가를 부를 때, 만장일치로 결정할 때 등이다. 유치하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나 됨을 체험하니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되기를 바랄 수 있다.
너와 나 사이 하나 됨은 너도 나도 아닌 제3의 존재 안에서 이루어진다. 너와 나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소유나 폭력일 가능성이 높다. 육체적으로 그 경계가 아주 뚜렷한 둘은 마음이나 사고방식에서도 그런 거 같다. 가끔 의견이 일치하거나 한마음이 될 때가 있지만 잠시고 또 그때뿐이다. 사랑은 본성상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데 나를 너에게 기꺼이 완전히 넘겨주지 않는 이상 둘은 하나가 되지 않는다. 그대신 둘은 한 곳에서 만나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서로 하나가 되는 제3의 존재, 우리 밖 그 한 곳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문화 언어 피부색이 완전히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됨을 체험한다. 우리를 하나로 만드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작은 이들이 있는 곳 또는 그들 안으로 초대하신다. 하느님을 믿고 섬기고 사랑한다면 가장 작은 이들에게 잘해주어야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동정과 연민들이 서로 만나 그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된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했다.
가장 작은 이들을 대할 때는 갓난아기를 만지는 거처럼 아주 조심해야 한다.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순종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한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로마 12,9-10.15-16) 서로에게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런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가신다.
예수님, 주님은 저희를 하나로 만드신 게 아니라 그것조차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시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니 이보다 더 완전한 일치는 없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만들어주셔서 저희가 하느님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으로 기도하는 모든 이를 아드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