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몽융(狐裘蒙戎)
여우 갖옷의 털이 흐트러져 있다는 뜻으로, 부귀한 사람이 난폭하고 방자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짐을 비유한 말이다.
狐 : 여우 호(犭/5)
裘 : 갖옷 구(衣/7)
蒙 : 입을 몽(艹/10)
戎 : 오랑캐 융(戈/2)
출전 :
○시경(詩經) 패풍(邶風) 모구(旄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값비싼 호구(여우 가죽옷)가 갈가리 찢기었다는 뜻으로, 예의범절(禮儀凡節)을 모르는 상류 계층의 난행(亂行)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혼란해짐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춘추시대 여(黎)의 임금이 오랑캐 나라인 적인(狄人)의 습격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위(衞)나라로 가서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위(衞)나라는 회피적이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여(黎)의 신하들이 위(衞)나라를 책(責)하면서 부른 노래 모구(旄丘)에서 연유한다.
毛詩序: 旄丘, 責衞伯也. 狄人迫逐黎侯, 黎侯寓於衞, 衞不能脩方伯連率之職, 黎之臣子以責於衞也.
시경(詩經) 패풍(邶風) 모구(旄丘)
(모구에서)
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모구의 칡덩굴이여! 마디가 어찌 그리 엉성하게 넓은가!
叔兮伯兮, 何多日也.
아저씨! 아저씨시여! 어찌 이렇게 여러 날 소식이 없는가!
何其處也, 必有與也.
그곳의 형편은 어떠하신지, 반드시 함께할 이 있으리라.
何其久也, 必有以也.
어찌 그 일이 길어지는가, 분명 까닭이 있으리라.
狐裘蒙戎, 匪車不東.
여우가죽 갓옷이 다 헤어져도, 수레는 동으로 오지 않는구나.
叔兮伯兮, 靡所與同.
아저씨! 아저씨시여! 함께할 이 아무도 없구나.
瑣兮尾兮, 流離之子.
부셔졌구나, 사라져버린 것이구나, 마음이 흩어진 사람들이여.
叔兮伯兮, 褎如充耳.
아저씨! 아저씨시여! 소매로 귀를 막고 있구나.
호구(狐裘)가 몽융(蒙戎)하다 한 것은 위(衛)나라 대부(大夫)를 가리켜서 그 궤란(憒亂; 마음이 어수선함)함을 기롱한 뜻이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조(條)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애첩(愛妾)인 여희(驪姬)가 자기의 아들 해제(奚齊)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헌공에게 모략을 해서 태자 신생(申生)을 죽게 하고, 그 동생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도 핍박해 국외로 도망치게 했다.
진헌공이 사자를 노(魯)에 보내와서 태자 신생을 죽인 일을 고하였다.
晉侯使以殺大子申生之故來告.
당초, 진(晋)나라의 군주인 헌공(獻公)은 공자(公子)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위하여 대부(大夫) 사위(士蔿)를 시켜서 포(蒲) 땅과 굴(屈) 땅에 성을 쌓게 하였다.
初, 晉侯使士蒍為二公子築蒲與屈.
그는 그 일에 대하여 신중하지 않아, 흙 속에 불 때는 나무를 넣어서 쌓았다. 공자 이오가 이 사실을 군주인 헌공에게 호소하였다. 헌공은 사위의 불손한 태도를 책망하였다.
不慎, 寘薪焉. 夷吾訴之. 公使讓之.
이에 사위는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에 '상(喪)을 당하지 않고서 슬퍼하면 근심 걱정이 반드시 닥쳐오고, 전쟁이 없는데도 성을 쌓으면 원수가 반드시 그곳을 보루로 삼는다고 하니, 원수의 보루를 무엇 때문에 신중하게 쌓겠습니까?
士蒍稽首而對曰: 臣聞之, 無喪而慼, 憂必讎焉, 無戎而城, 讎必保焉, 寇讎之保, 又何慎焉.
벼슬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군왕의 명령을 어김은 불경(不敬)이옵고, 적의 보루를 견고하게 쌓는 것은 불충(不忠)인데, 불경스럽고 불충스러워서야 어찌 군왕을 섬기겠습니까?
守官廢命, 不敬; 固讎之保, 不忠; 失忠與敬, 何以事君.
시경(詩經)에 이르길 '덕을 생각하고 있다면 나라가 안녕하고, 적자(嫡子)는 나라 지키는 성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詩云, 懷德惟寧, 宗子惟城.
군왕께서 덕을 닦으시고 그리고 적자의 지위를 단단히 하신다면 무슨 성이 이보다 낫겠습니까?"
君其脩德而固宗子, 何城如之.
三年將尋師焉, 焉用慎.
그는 헌공의 앞을 물러 나와,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었다. "여우 갖옷이 난잡(亂雜)하여 한 나라에 세 군주(公)가 셋이니, 아아! 내 그 누구를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退而賦曰: 狐裘尨茸, 一國三公, 吾誰適從.
(春秋左氏傳/僖公 5年)
여기서 일국삼공(一國三公)이란 진헌공(晉獻公) 공자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가리킨다.
포(蒲)와 굴(屈)은 국도와 맞먹는 큰 성이기 때문에 헌공이 두 공자와 더불어 세 발 솥처럼 삼공(三公)이 되었다는 말이다.
◼ 시경(詩經) 패풍(邶風)
12. 모구(旄丘)
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
何其處也, 必有與也.
何其久也, 必有以也.
狐裘蒙戎, 匪車不東.
叔兮伯兮, 靡所與同.
瑣兮尾兮, 流離之子.
叔兮伯兮, 褎如充耳.
(解釋)
其一
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언덕의 칡은 어찌 마디가 긴가?
叔兮伯兮, 何多日也.
숙(叔)과 백(伯)과 같은 대부들이여, 구원병 어찌 많은 날 걸리는가?
(註)
興也. 前高後下曰旄丘.
시체는 '흥'이다. 앞은 높고 뒤는 낮은 걸 모구(旄丘)라 한다.
誕, 闊也. 叔伯, 䘙之諸臣也.
탄(誕)은 넓다는 것이다. 숙백(叔伯)은 위나라의 여러 신하들이다.
舊說, 黎之臣子, 自言久寓於衞, 時物變矣.
옛말에 여나라의 신하들이 스스로 말했다. 오래 위나라에 더부살이 하니, 당시의 사물들이 변화했다.
故登旄丘之上, 見其葛長大而節疎闊, 因託以起興曰旄丘之葛.
그러므로 언덕에 올라 칡이 길어졌지만 마디가 텅빈 것을 보고, 의탁하여 흥을 일으켜 말했다.
何其節之闊也. 衞之諸臣, 何其多日而不見救也.
"언덕의 칡이 어째서 마디가 긴가? 위나라의 여러 신하들은 어째서 많은 날이 걸리도록 구원병을 보지 못하는가?"
此詩本責衞君, 而但斥其臣, 可見其優柔而不迫也.
이 시는 본래 위나라 군주를 꾸짖은 것이지만 다만 신하만을 질책했으니, 부드러워 박절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其二
何其處也, 必有與也.
어째서 그리 편안한가? 반드시 함께 할 나라가 있음이로다.
何其久也, 必有以也.
어째서 그리 오래 걸리는가? 반드시 이유가 있음이로다.
(註)
賦也. 處, 安處也.
시체는 '부'다. 처(處)는 '편안히 거처한다'는 것이다.
與, 與國也. 以, 他故也.
與는 함께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以는 다른 까닭이라는 것이다.
因上章何多日也而言. 何其安處而不來, 意必有與國, 相俟而俱來耳.
윗 장의 '어째서 많은 날 걸리는가'를 이어 말했다. "어째서 편안히 거처하며 오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반드시 함께 할 나라가 있어 서로 기다려 함께 오려할 뿐이다."
又言何其久而不來, 意其或有他故而不得來耳.
또한 말했다. "어째서 오래도록 오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혹 다른 이유가 있어 올 수가 없을 뿐이다."
詩之曲盡人情, 如此.
시가 인정을 곡진히 한 것이 이와 같다.
其三
狐裘蒙戎, 匪車不東.
여우가죽옷 해져도 수레는 동쪽으로 오지 않네.
叔兮伯兮, 靡所與同.
叔과 伯과 같은 대부들이여, 함께 할 이 없어라.
(註)
賦也. 大夫, 狐蒼裘.
시체는 '부'다. 대부는 여우의 푸른색 갖옷을 입는다.
蒙戎, 亂貌, 言弊也.
몽융(蒙戎)은 어지러운 모양으로 해졌다는 말이다.
又自言客久而裘弊矣, 豈我之車不東告於女乎. 但叔兮伯兮不與我同心, 雖往告之, 而不肯來耳.
또한 말했다. "객지에 있은 지 오래되어 갖옷이 해졌으니, 어찌 나의 수레가 동쪽으로 가서 너에게 알려지 않았겠는가. 다만 대부들이 나와 마음이 같질 않아, 비록 가서 알리더라도 기꺼이 와주질 않을 뿐이다."
至是, 始微諷切之.
이 구절에 이르러 처음으로 작게나마 풍자한 것이다.
或曰狐裘蒙戎, 指衞大夫而譏其憒亂之意; 匪車不東, 言非其車不肯東來救我也, 但其人不肯與俱來耳.
혹자는 호구몽융(狐裘蒙戎)은 위나라 대부를 지적하여 어지럽히는 뜻을 꾸짖은 것이고, 비거부동(匪車不東)은 수레가 기꺼이 동쪽으로 와서 나를 구원해 주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만 사람이 기꺼이 함께 오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今按黎國在衞西, 前說近是.
이제 생각건대 여나라는 위나라 서쪽에 있으니 전자가 옳음에 가깝다.
其四
瑣兮尾兮, 流離之子.
부서졌어라! 사라졌어라! 유리걸식하는 사람들이여.
叔兮伯兮, 褎如充耳.
숙(叔)과 백(伯)과 같은 대부들이여 웃으며 귀를 막은 듯하구나.
(註)
賦也. 瑣, 細. 尾, 末也.
시체는 '부'다. 쇄(瑣)는 '가늘다'는 것이다. 미(尾)는 끝이다.
流離, 漂散也. 褏, 多笑貌.
유리(流離)는 표류하며 흩어진 것이다. 유(褏)는 많이 웃는 모습이다.
充耳, 寒耳也, 耳聾之人, 恒多笑.
충이(充耳)는 귀를 막은 것으로 귀 먹은 사람은 항상 웃음이 많다.
言黎之君臣, 流離瑣尾, 若此其可憐也, 而衞之諸臣, 褎然如璽耳而無聞, 何哉.
"여나라 군신이 유리걸식하고 연약함이 이와 같이 가련하지만, 위나라 여러 신하들은 웃으며 귀를 막은 듯 듣지 못함은 어째서인가?"고 말했으니,
至是然後, 盡其辭焉.
여기에 이른 후에야 말을 다한 것이다.
流離患難之餘, 而其言之有序而不迫, 如此.
유리하며 환란을 겪은 후에도 말이 차례가 있고 박절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
其人, 亦可知矣.
그러니 그 사람을 또한 알 만하다.
(毛詩)
旄丘, 責衛伯也.
모구(旄丘)란 시는 위나라 방백을 꾸짖은 것이다.
狄人迫逐黎侯, 黎侯寓于衛,
적인이 여후를 내쫓아 여후는 위나라에 더부살이 하니,
衛不能脩方伯, 連率之職.
위나라는 방백과 연솔의 직책을 닦을 수 없었다.
黎之臣子以責於衛也.
여나라 신하들이 위나라를 꾸짖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