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르본대학에 다니던 영국인 백인여성이 마사이족 남자에게 반해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 평원 움막에 신혼 살림을 차린다. 올해24 세인 콜렛 아만드는 광업회사 임원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라났다.
그녀 본인도 “내 인생이 이렇게 특이한 행로로 가게 될 줄 예상치 못했다고 말한다.(never expect her life to end up on such an unusual path)”
마사이족 전사인 메잇키니(왼쪽)와 콜렛 아만드 사랑에 빠진 많은 젊은 여성들처럼 (like many young women in love)아만드는 장래의 남편을 처음 보는순간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남자는 광활한 아프리카 평원의 움막에 있는 마사이족 전사였다
마사이족 추장의 동생인 메잇키니 ( 23 세) 였다.
마사이족의 먹거리는 땅에서 뜯어낸 것이나 창으로 잡은 것들 뿐이다. 수돗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만드는 3년 교제 끝에 자신의 인생을 메잇키니의 인생과 영구히 합치기로 결심했다
서양 생활방식의 모든 안락함을 포기했다 (abandon all the comforts of her western lifestyle).아만드는 약혼자인 메잇키니와 키스 같은 것도 나눠보지 못한 상태다. 마사이족 규칙이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접촉을 금지하고있기 때문이다.아만드는 앞으로 다른 여성들과 남편을 공유해야 할 지도 모른다. 마사이족 전통은 얼마든지 부인을 둘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그가 다른부인을 취하지 않는 선택을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절충을 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학문적 재능을 타고난 아만드는 17 세때 이미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21세가 되면서 학업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 연애 실패로 인한 상처도 깊었다.모험을 해보면서 자신을 시험하고 재발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아만드는 오래 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아프리카로 가기로 했다. 케냐에서 고아원들을 운영하는 단체의 일자리를 구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모든 예금을 인출해 나이로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만 말했다. 엄마는 기껏 쌓아온 학업을 내던지겠다는 딸의 말에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만드는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아만드는 24시간도 안돼 아파트의 편안함을 고아원 바닥의 깔개와 바꾸게 됐다.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없는 곳이었다. 고아 중에 아만드가 도착하기 이전에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9살짜리 소년이 있었다.그런데 그 아이가 어느날 아만드를 향해 엄마”라고 말을 했다 .
커다란 충격이었다. 고아원의 모든 이들은 아만드에게 마법적인 치료능력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 말이 널리 퍼지면서 며칠 후현지 마사이족 추장이 그녀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그 부족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수시간 자동차를 달려야 하는곳에 살고 있었다. 아만드는 그 곳에 가서 큰 환영을 받았다.마사이족이지만 영어를 잘 해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추장은 그녀에게 며칠 머물 것을 권하며 그녀가 묵을 움막을 보여줬다고아원의 궁핍한 생활을 겪은 후였지만 첫날밤은 불면의 불편함 속에서보내야 했다. 움막에는 문도 없었다. 언제든 뱀이 기어들어올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 아만드는 마사이족 삶의 혹독한 현실에 더 많은 충격을 받았다 물이라고는 뱀과 악어들이 사는 진흙투성이 작은 하천에서밖에 구할 수 없었다. 무서워서 목욕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불에 데운 물로 임시변통 씻는 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아만드는 부족의 그 단순한 생활 리듬을 이내 좋아하게 됐다. 부족의 전형적인 하루는 오전 4시에 시작돼 오후 6시에 끝났다.모두가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요리를 하고 대화를 하다가 7시면 잠자리에들었다. 아침이 되면 남자들은 사냥하러 나가고 여자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들판에 나가 일했다. 모닥 불 곁에서 커다란 아프리카의 달 아래 앉아있는 것이나 평원 너머로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름다움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2 주가 흐르자 마사이족은 그녀에 대한 환영 선물로 염소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그녀를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표시였다. 그녀에겐 크나큰 영예 (a huge honor) 였다. 그들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염소를 도살했다. 그녀에게 마시라며 따뜻한 피를 컵에 부어주었다. 역겨운 맛이었지만 마실 수 밖에 없었다.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할 것 같았다.견디기 힘든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느날 밤에는 이른 새벽 시간에 소변을 보러나갔다가 (answer the call of nature) 몇 미터 바로 앞에 머리를 치켜든 커다란 독사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기도 했다.하지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아만드는 들판에서 커피 원두를 따고 있다가추장의 동생인 장래 남편 메잇키니를 처음 만나게 됐다. 사냥을 위해 수 주동안 마을을 떠나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한 눈에 반해버렸다. 사자 한 마리를 데리고 성큼성큼 다가오는그가 엄청난 남성의 힘으로 다가왔다. 추장의 소개로 그와 인사를 나눈 그녀는 자신의 분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영리했고 말도 또렷했다. 메잇키니도 아만드에 대해 똑같이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자신들의 감정을 인정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사이 족 에겐 사랑으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지위를 위해 결혼하는 관습이 있었다. 아만드에겐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손님 입장이었다.
그들과 달리 행동하는 것은 그들에게 크나큰 모욕 이 될 수도 있었다. 아만드는 마사이족이 점점 신뢰 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5개월 뒤 마침내 마사이족이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마을에서 영원히 살아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마지막 장애가 남아 있었다. 케냐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에 앞서 고국에 돌아가 학업을 마저 마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메잇키니는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2008년 10월 또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민간 폭동이 케냐를 휩쓸었고 백인 여성인 아만드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됐다. 메잇키니는“ 피신도 할겸 영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마치고 오라”고 했다 아만드는 영국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런던 동남부의 한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박사 과정 입학 허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겐 서양 생활이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3 주 동안 그녀는 방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온 문화 속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도시생활 소음은 빠개지는 듯한 두통을 가져왔다. 그녀는 이미 아프리카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돌아갈 결심을 했다. 케냐로 돌아간 아만드는 현재 이틀에 걸친 행사가 될 결혼식 최종 계획을 준비 중이다. 그녀는 결혼식이 끝난 후 아프리카 평원 움막집에 살면서 사냥 나간 남편을 기다리거나 커피 원두를 따는 일상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