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들이 인적(人跡)을 반기다 / 송상욱
어둠이 제집으로 드는 시간이다 허물어져 가는 옛집에 들러 모퉁이를 돌아 뒤안으로 갔을 때 어둠을 삭질하는 쓰르라미 소리가 적막을 수놓는다
벌레들이 하얀 실을 풀어내듯 우는 소리에서 귓속 가까이 그간의 소식을 주고받는 서로의 숨결을 잇는다
어둠이 한 발자국씩 깊어간다
댓닢 술렁이는 소리 나는 곤핍한 뒤안, 굼탱이를 비찰하는 달빛이
봉창에
누구의? 초상을 그린다
달빛 일렁이는 바람 때문이었을까, 헛잠을 자다말고 어멈 속앓이 앓던 시절 낯피질 같은 검정 비닐봉지가 둥둥 떠 저 세상으로 간다
마구간 두엄 쪽을 돌아 마당을 질러 새랍 쪽으로 막 나서려는데 풀벌레들 울음소리가 잠시 뚝 멈추었다가는 다시 온 마당이 떠내려가듯 운다
인적을 반겨 맞는 것일까, 부엌 안쪽에서 끼니를 앉히려는지, 풀벌레들 울음소리가 솥 씻는 소리로 들려온다
-『광대』, 발견, 2017.
감상 – 송상욱(1939?~2024)는 전라도 고흥 출신으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가 퇴임 후 인사동에 방을 얻어 인사동 사람이 되었다. 기타와 노래에 출중하여 인사동 음유시인으로 불렸으며 특히 자신의 음반 첫 번째 곡이기도 한 <부용산>을 즐겨 불렀다. 시집 『광대』의 해설을 쓴 송재학 시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부용산> 목록에 서정춘, 안치환에 이어 송상욱을 간직하게 되었다고 말문을 연다.
송상욱은 자신의 이름을 딴 《송상욱 시지》를 계간 혹은 반년간으로 꾸준히 출간할 정도로 시에 진심이었는데 『광대』의 시편에서 그런 정성이 느껴진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옆에 두고 우리말 어휘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하더니 시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물들이 인적(人跡)을 반기다」를 보더라도, 고유어와 사투리까지 두루 활용하며 언어 선택에 고심했던 흔적이 뚜렷하다. 삭질하는(삽질하는? 지우는?), 굼탱이(곰팽이? 행동이 굼뜬 사람?), 낯피질(낯의 겉 상태?), 새랍(대문) 등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사라져가는 어휘들을 한껏 살려서 시의 의미를 돕도록 하고 있다.
시인은 이미 폐가가 된 고향 옛집에 왔을 것으로 보인다. 자전적 내용의 다른 시편을 보면 시인은 고향을 떠난 뒤 돌아보는 데 인색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바로 오지 못한 곡절이 시인에게 한으로 남아 있다. 봉창에 그려진 초상은 그런 어머니 모습일 수도 있겠다.
폐가 풍경과 그 폐가를 둘러보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무명 화가의 화첩을 넘기듯 서정적으로 환기되는 것은 시간의 힘일 것이다. 사랑도 원망도 바래지면 시간은 그리움의 정서만 키우는 속성이 있다. 시인은 풀벌레 소리가 자신을 반겨 맞는 것으로 듣는다. 또 그 소리를 어머니가 아들을 반기며 솥부터 씻는 소리로 듣는 데서 모르긴 몰라도, 시인은 반가움과 회한의 눈물 한 점 쉬이 맺기도 했을 것이다.
박기동 시인이 일찍 죽은 동생을 기려 썼다는 <부용산>의 한 구절은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다. 이제 송상욱 시인도 그렇게 가고 말았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