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방해(?) 꼬마와 따뜻한 한때연합뉴스 입력 2013.10.31 16:02 수정 2013.10.31 16:13
단상 뛰어들고 다리 부둥켜안고…천진난만 행동에 '흐뭇한 웃음'
당시 광장에는 가톨릭 가정대회를 맞아 약 15만명의 관중이 운집해 있었고, 단상 가장자리에는 초대받은 할아버지 할머니 신자들과 그 손자 손녀들이 앉아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에게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자 정치적 결정권을 갖는 통치권자이다.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Tenzin Gyatso)는 1935년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티베트 동북부 암도 지방의 탁처라는 곳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라모 톤둡이었다. 1937년 티베트의 섭정은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기 위해 고승들을 지방으로 파견했다.
고승들은 티베트 불교전통에 따라 여러 차례 시험과정을 거쳐 어린 소년 라모를 13대 달라이 라마의 화신임을 인정했다. 이때 달라이 라마의 나이는 만 3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시험과정을 거쳐서 달라이 라마의 화신임을 증명받기는 했지만 그 전부터 소년 라모는 항상 달라이 라마가 살았던 포탈라 궁전이 있던 티베트의 수도 '라사'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린 소년은 달라이 라마의 화신을 찾으러 관리로 변장하고 왔던 고승들을 '라마' 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 달라이라마의 호칭
티베트불교(라마교)의 가장 대표적 종파인 겔루크파[黃帽派]의 수장(首長)인 법왕(法王)의 호칭.1642년 이후 티베트 원수가 된 역대의 전생활불(轉生活佛)에 대한 속칭이다.초대 원수를 다라이 라마 5세라 하고, 1세까지 거슬러올라가며 이 칭호를 붙인다.이 칭호는 제3세로 꼽을 수 있는 소남 ?초(1543∼1588)가 몽골 토메토의 알탄 칸의 초청을 받고 1578년 칭하이[靑海] 지방에 갔을 때 받은 것이다. 그이름의 뒷부분 ‘?초’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다라이’로서 ‘바다’를,‘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한다.제3세는 원래 데푼 대승원(大僧院)의 관주(貫主)인 활불이었는데, 선대인 겐둔 ?초(1475?∼1542)가 겔루크파의 정치적 지도자로서 대립하는 카르마파(특히 紅帽派)와 다투었기 때문에 같은 행동이 기대되어, 스스로 몽골 부족 사이를 유세하며 신자를 얻어야 했다. 그가 죽은 뒤 새로운 활불로 알탄 칸의 증손 윤텐 ?초(1589∼1616)가 선출되자, 외국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노골적인 위협정책이라 하여 카르마파의 증오심이 확대, 군사적인 대결만을 남겼다.제5세 가완 로잔 ?초(1617∼1682) 때에는 몽골정권에 큰 변동이 생겨서 겔루크파는 흔들리고, 소남 라프텐을 중심으로한 정치세력은 새로 카르무크와 동맹하여, 결국 구시 칸의 군대를 티베트에 끌어들여 신샤크파 정권을 전복, 사실상 티베트의 정치 ·종교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리하여 1642년 다라이라마 정권이 수립된 후, 데푼 활불은 티베트 국왕의 신분과 간덴 좌수(座首) 위에 올라앉는 황모파 법왕의 지위를 얻었다. 제5세의 제자이자 섭정이던 상게 ?초(1653∼1705)는 다라이라마의 국가 원수로서의 정당성을 《문수리근본의궤경(文殊利根本儀軌經)》의 예언을 인용 증언하며, 티베트는 원래 관음보살의 교화의 땅으로 정해져 있고, 다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하면서, 그 제1세를 총카파의 제자 겐둔 두파(1391∼1472)까지 거슬러올라간다는 주장도 추가 확인하였다. 연애시인인 제6세 찬얀 ?초(1683∼1706)가 청(淸)나라의 간섭으로 폐위되어 베이징[北京]으로 연행되려 할 때, 일반 승려와 민중은 이에 저항하여 다라이라마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나타내 보였다.1750년 이후 청의 지배 아래서는 다라이라마의 선출방법이 흐트러져, 제9세부터 12세까지는 어렸기 때문에 권력투쟁의 희생이 되었다. 제10세는 난을 피해서 정권을 잡고 독립과 근대화를 꾀했으나 실패하였다.제14세는 중국군의 진주로 한때는 새체제에 복종하였으나, 그러나, 중국으로부터의 티벳의 독립을 위해 1959년 측근과 함께 인도로 탈출, 망명정권을 수립하여 티벳 독립운동의 선봉에 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국 공산군의 점령이후 14대 달라이 라마는 UN의 티베트 문제 개입을 호소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중국의 종주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17개 조항의 협정안'이 중국 당국의 강요에 의해 강제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중국군의 동부 티베트 지역 탄압과 달라이 라마의 신변문제를 계기로 1959년 수도 라사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자 달라이 라마와 그를 따르는 티베트인들이 인도로의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티베트는 중국의 자치 구역으로서 중국과 동일한 체제로 가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사유재산이 몰수되거나 아주 소수의 사원만을 남겨 둔 채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대부분의 승려들은 투옥되거나 강제로 환속당했다. 이처럼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자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16세의 나이로 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하고 UN에 티베트 문제를 호소했으나 엘살바도로만이 UN 총회에 티베트 문제를 의제로 상정하는데 지지했고 나머지 국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 UN 총회에서 다뤄지지 못했다. 이에 달라이 라마는 베이징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협상하고자 하였지만 중국의 강압에의해 오히려 라사에 중국군 진주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17개 조항"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1954년에는 중국을 방문하여 모택동, 주은래 등 중국의 지도자들과 티베트 문제를 협상하고자 노력하였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아편이라고 믿는 당시 중국 지도자들의 시각하에서 또한 "티베트는 불교라는 독약에 물들어 있고, 중국은 이 티베트를 해방하기 위한 어머니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티베트 점령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이후부터 지방에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민중봉기가 계속되었고 1959년에 티베트에 유례없는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티베트인들은 중국군이 달라이 라마를 납치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캄과 암도지방의 주요 라마승과 지역 지도자들이 중국 문화공연과 행사에 초대되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고통스러운 경험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중국군이 3월 10일 달라이 라마를 경극에 초대하면서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의 안전을 더욱 염려하게 되었다. 티베트인들은 중국군이 경호원도 없이 오라고 한 점을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1959년 3월 10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가 중국 경극에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블링카 궁을 둘러쌌다. 그후 며칠동안 중국이 티베트를 단념하고 완전한 독립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대중집회를 열었다. 이에 달라이 라마는 이 대규모 집회의 폭발적인 결과를 염려하면서 노블링카 궁 앞에 있는 수많은 티베트 군중들에게 해산할 것과 중국군의 노여움을 삭이고 폭력을 막기 위한 일환으로 중국군 장군에게 편지를 써 티베트인들의 희생을 막고자 하였다. 이때 상황을 달라이 라마는 자서전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양측의 화를 식히기 위해 그리고 라사의 시민들에게 절제하도록 요구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장군의 모든 편지들에 답장을 했다. 당시 나의 가장 시급한 임무는 비무장한 나의 국민들과 중국군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라사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전면적인 대치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이 실패하고 중국군의 진압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자, 달라이 라마는 그의 국민을 보호하는데 국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인도로 망명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통해서 볼 때 당시 1959년 3월 10일 하루동안 시위에 참석한 티베트인들 중에 1만 5천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사살되었으며, 티베트인들의 민중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6,000여개의 불교사원 파괴와 12만명의 티베트인들을 학살하였다. 현재 티벳트의 망명정부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기슭 다람살라에는 '작은 라사'로 일컬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다람살라에는 망명한 10만 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으며 3만 여명의 티베트인들이 네팔과 부탄의 티베트 정착촌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다람살라에 망명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지금까지 죽음을 무릅쓴 티베트인들의 망명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중에는 중국에서는 티베트 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부모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 자식을 다람살라로 보낸 경우가 많다. 현재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티베트 언어, 역사, 종교, 문화 전반에 걸친 티베트 교육체계가 수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현지의 티베트 전통문화가 중국인들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티베트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1959년에 티베트 공연예술기관을 설립했고 한편으로 중앙고등티베트학연구소를 설립해 인도에 있는 티베트인들을 위한 대학으로 만들었다. 또한 티베트인들의 생활방식의 핵심인 티베트불교의 방대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200여개 이상의 사원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티베트 망명정부에는 14대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종교, 문화, 내무, 재정, 교육, 방위, 보건, 정보, 국제관계 등을 관할하는 행정부와 사법부로서 티베트 최고사법위원회가 있고, 입법부로서 티베트 국민대표의회는 지역과 종파를 대표하는 46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뉴델리, 뉴욕, 런던, 파리, 제네바, 부다페스트, 모스크바, 카트만두, 캔버라, 도쿄, 타이페이 등에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 : 출처카페 : 뮤류찻집*불교참선*한뫼님
영적 올림픽, 세계교회의 신앙 축제 WCC 총회 개막 ▶1-3-2 날짜, 기자2013-10-31 09:28 | CBS노컷뉴스 고석표 기자
'기독교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제10차 부산 총회'의 개막예배가 30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진행되고 있다. WCC총회 주관 방송사인 CBS 중계팀은 다음달 8일까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를 주제로 역대 최대 규모인 8500여명이 참가한 WCC총회의 개막예배와 개막식, 폐막예배를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 한다. 황진환기자
"생명의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여,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나이다.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순례의 행진을 하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기독교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제10차 부산 총회'의 개막예배가 30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진행됐다. WCC부산총회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를 주제로 역대 최대 규모인 8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1월 8일까지 계속된다. 황진환기자
지구 생명 공동체가 파괴된 아프리카를 회복시켜 달라는 아프리카 대륙의 기도에 이어 아시아와 카리브,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중동과 북미, 태평양 등의 순서로 진행됐는데 아시아를 위한 기도에서는 여성과 토착민, 소수민족에게 가해지는 집단폭행과 강제노동, 인종적 착취 해방을 위해 기도했다.
오늘 부산총회 개회예배는 1982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합의한 리마 예식서에 근거해 드리는 에큐메니칼 예배라는 점에서 의미를 담고 있다.
예배 앞부분에 등장한 십자가와 성경, 물, 불, 옷, 흙, 물이 담긴 그릇 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베푸신 은총을 상징하는 것.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뜻이 담긴 이 같은 선물들은 그러나 지금 경제정의 불평등과 생태파괴 등으로 제대로 나누어지지 못하고 있는 데 이런 현실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하고 정의와 평화의 선물을 다시 나누기를 간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슬림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 명절 첫날 기도 이슬람권 메카 성지순례 시작…200만명 운집연합뉴스 입력 2006.12.27 15:56
무슬림이 지켜야할 5가지 실천영역(五柱) 중 가장 성스러운 의식인 메카 성지순례(hajj.하지)가 28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원시시대도 아니고 종교는 무슨종교?
종교라는것은 없다.
종교가 당신의 눈을 멀게하여 죽음에 길로 들어서게 하는 마귀,악마.사탄이다.오랜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전래되어 관습화하여 문화화하고 우리 일상 생활에서 행하여진 것이기에,선입관,판단력 부족,사고력 부족,인식자료 부족으로 사람들이 무의식,무비판적으로 받아 드리고 잘못된 길에서 헤메다 죽어간다.
천부인[天符印]이란?
하늘님이 내려와 항상 머물고 계시는 땅을 증명(印)
출처: 석가모니 부처는 단군의 자손이다 [강상원 박사]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라든가 불교의 '미륵'이 동일한 어원 '미트라(태양신)'에서 유래하였다. 미륵의 어원인 '마이트레야(Maitreya)' 라는 말은 본래 '미트라(Mitra)'로부터 유래되었는데, 미트라는 인도·페르시아 등지에서 섬기던 고대 태양신이다.
그런데 대단히 흥미롭고 충격적인 사실은, 기독교에서 구세주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메시아(Messiah)'라는 말도 바로 이 미트라(Mitra)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이것은 '불교의 메테야(미륵) 부처님과 기독교의 메시아가 동일한 한 분' 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삼일신고 三一神誥 중에서
망령(妄靈)의 작용
息芬爛寒熱震濕 觸聲色臭味淫抵
망령(妄靈)의 참은 세가지 길에서 만든다고 답할수 있고,느끼는 것,숨쉬는 것,닿는 것을 말하며,18가지 경계로 이루어져 구른다(참고:6x6x6=216가지 감,식,촉(感息觸)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느끼는것은 기쁨,두려움,슬픔,성냄,탐욕,미움이고.숨쉬는것은 향기,문드러짐,차가움,뜨거움,벼락,축축함이다.닿는것은 소리,빛,냄새,맛,음란,치는(손뼉)것이다.
참고:사람이 잠자고 일어난(깨어난) 순간부터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이 일어나는 하루를 시작해서, 잠들때까지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이 이어지는데, 6x6x6=216가지의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에 빠진다는 것입니다.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작용으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빠져 하루를 보내고 하루가 끝나는 것이 우리 삶인데 이것이 망령(妄靈)된것이 라는 것입니다.우리가 제정신으로 알고 살아가는 삶이 모두 망령된것으로, 너도 미쳤고 나도 미쳤고 모두가 미쳤는데, 미쳐 있는것을 모르고 나는 않 미친것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망령(妄靈)의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인데,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말하며는 불(火)이라 말할수 있읍니다.누구나 망령(妄靈)된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사람이 불(火)입니다,불은 물로 끄지요.당신의 망령(妄靈)된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불을 끌려면 물에 앉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그리고,망령(妄靈)된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불이 꺼지면 정신을 차리게 되고,정신을 차리면 감,식,촉(感息觸) 감정(感情)의 망령(妄靈)속에서 살았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냉수 먹고 정신 차리라는 말이있읍니다.조상님께서 물과 가까이 하면 정신을 차릴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늙으면 누구도 孤老病死에서 벗어날수 없고 벗어나려면,건강할때 건강챙기며 사십시요.
20세이상 나이 들어가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아픈곳이 나타나고 세월가면 갈수록 당신 몸은 병들어 고통뿐이 없다.
세수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앉아만 계십시요(좌욕). 물에 앉는것을 실행하시면,당신의 건강을 지킬수 있습니다. 하루에 오전,오후30분이상 실행하며,매일 습관을 들이는것이 중요합니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좋으며,1분1초라도 더 물에 앉으면 자신에게 좋은 것이나, 힘이들때는 쉬어가면서 하세요)<==이것도 못해 먹겠다고요? 아픈것도 못 아프겠다고 해서 않 아플수 있으면 좋으련만,죽는것도 않 죽겠다고 하면 않죽으면 좋으련만,노력과 극복없이 기쁨은 없는 일이지요.
모든 병든자(者),장애인분들은 현대의학의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과 병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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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물의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물의나라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