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도나도 캠프 티셔츠에 이세돌 명인의 사인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바둑꿈나무들. |
클래식 애호가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 한토막부터 하고 들어간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 1915∼1997)는 소련시절 세계가 알아주는 피아노 거장이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그는 비행기 여행을 기피해 해외연주도 육로와 해로를 이용했다. 자국 연주여행을 다닐 때도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가다 날이 저물면 중간에 묵었다 가곤 했는데 워낙 러시아 국토가 넓다보니 오지 마을에서 숙박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피아노가 있다면 촛불을 켜고서라도 마을주민을 위해 즉석 연주회를 열곤 했다고 한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가 한갓 이름 없는 시골마을에서 기꺼이 음악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때 그의 연주회를 접하고 무한한 감동을 잊지 못해 음악가의 길을 걸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바리톤 가수로 명성을 드날리게 된 소년이 있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독주회를 연 적이 있는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Dmitri Hvorostovsky 1962~ )다.
▲ 캠프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초청기사인 이세돌 명인과 김성진 2단이 무대에 올라 간략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41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꿈나무 바둑캠프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한백산 골에 자리한 강원랜드에서 10월5일~6일 이틀간 열렸다. 국내 유수의 바둑도장으로 꼽히는 유창혁, 충암, 장수영, 골든벨, 유재성, 박지훈, 양천대일 7개 도장에서 각 8명씩 56명과 서울 광진구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다문화가정 어린이 11명을 비롯해 부모까지 모두 100여 명이 참가했다.
1. 프로기전 주최사에서 바둑꿈나무를 위해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 캠프를 열어주는 것은 명인전이 유일하다.
2. 이 캠프에는 명인 이세돌 9단이 참가해 지도다면기를 두어주고 사인을 하는 등 바둑꿈나무들에겐 꿈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7개 도장 대표로 온 어린이들도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다투는 실력자 위주로 선발한 게 아니다. 지난해 이 캠프에 오지 못한 어린이 우선으로 보냈다. 경쟁하는 대회가 아니라 신나는 바둑프로그램으로 즐기며 배우고 함께 뛰어노는, 그야말로 바둑캠프다. 세계최고의 기사 이세돌 명인이 손수 함께 하며 가르치니 바둑마스터클래스이기도 하다.
올해로 41기를 맞은 명인전, 사람나이로 치면 불혹(不惑)의 연륜이다. 그간 딱 7명(조남철-김인-조훈현-서봉수-이창호-이세돌-박영훈)의 명인이 탄생했을 뿐, 바둑의 대명사인 명인의 자리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41기 명인전은 현재 이세돌, 백홍석, 박영훈, 최철한 4강이 결정된 상태다). 그런 명인과 함께 시간을 보낸 이 아이들 중에 훗날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같은 대가가 나올지 누가 알랴. 아이들은 거장을 보며 꿈을 품는 법이다.
캠프 첫날인 5일 오후2시, 이세돌 명인을 소개하는 순서에서 아이들의 박수소리는 두드러지게 요란했다. 명인의 표정도 더없이 환했다. 아이들은 거장을 보며 설렜고 명인은 꿈나무들을 보며 모처럼 ‘힐링의 시간’을 누리는 듯했다. 명인은 인사말에서 “경쟁보다는 즐기세요!”라고 당부했다.
▲ 바둑꿈나무들과의 시간이 무척 즐거운지 환한 웃음을 짓는 명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햇살 같다.
3. 두번째 바둑캠프에 바둑을 배우는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초청한 것은 누구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참말 참신하고 꽉찬 생각이다. 바둑의 교육적 효용 말고도 사회적 효용가치로 상당한 역할모델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다문화 어린이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일이고, 이는 국가가 그 필요성을 더 인정해 지원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하이원리조트 홍보팀 허은구 대리는 바둑캠프를 구상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그간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이벤트는 지역 동호인이나 고객, 임직원을 대상으로 주로 다면기를 위주로 한 성인용 프로암 행사였고 나름 호응도 좋았습니다. 명인전 본선에 오른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십수명씩 대거 사북까지 내려오는 기회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명인전이 이제 불혹의 나이를 맞이하면서 지역 애호가를 위한 서비스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미래 바둑계를 짊어지고 갈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해서 작년부터 바둑캠프로 전환했고 올해는 여기에 다문화가정까지 초청하게 된 거죠. 캠프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온라으로 공개접수할까 고려 중입니다. 올해는 6일 서울시의 '차없는 거리 홍보대사' 행사관계로 늦은밤 상경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난해 이세돌 명인이 둘쨋날까지 함께 해주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 행사장 한 벽면에 나란히 걸린 역대 명인의 걸개그림 아래서 도장대항전을 벌이고 있는 꿈나무들.
바둑캠프는 5일 첫날 스위스리그로 7개 도장대항전(8명 단체전)과 김성래 4단의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위한 바둑교실, 정석 사활 바둑상식 등 부문별 로테이션 강의와 김성진 2단과 나누는 대화(멘토링) 시간을 가졌으며 저녁식사 후에는 바둑골든벨 게임에 이어 불꽃페스티발 관람으로 신난 하루를 보냈다.
도장대항전에서는 양천대일이 3전 전승으로 우승해 하이원리조트 숙박권과 이세돌 9단, 김성진 2단과의 다면기 티켓을 획득했다(2위는 골든벨도장이 차지). 캠프 이틀째에는 하늘공원 트래킹과 미니올림픽(운동회)으로 한나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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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 명인은 내내 아이들 숲을 왔다갔다 하며 유심히 바둑을 지켜보았고 대국이 끝나면 봐두었던 대목을 자상하게 되짚어주었다.
▲ 관전중에도 아이들의 사인공세는 그칠 줄 몰랐고 그때마다 온화한 표정으로 응해 주었다.
▲ 아이들은 물론
▲ 스탭아저씨들까지 사인행렬에...
▲ 어때요? 사인 지워질까 빨지도 않을 거에요. ^^
▲ 사진을 찍을 때는 아이 키높이에 맞춰주는 명인의 센스와 서비스정신.
▲ 다문화가정 바둑꿈나무들과 한 컷.
▲ 도장대항전에서 우승한 양천대일도장과 시상 후 기념촬영.
▲ 2위한 골든벨도장에 대한 시상은 김성진 2단이.
▲ 우승팀 8명 선수 중 4명은 이세돌 명인과 지도다면기를 두는 행운을 얻었고
▲ 또 4명은 김성진 2단과 지도다면기 기회를 우승상품으로 얻었다. 김2단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바둑을 잘 둔다."고 말했다.
▲ 미래의 명인은?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이 매년 선사하는 꿈나무 바둑캠프 참가자 중에서 나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