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하사(恒河沙)는 갠지스강의 모래를 뜻하고 조나 경처럼 숫자의 단위가 되기도 한단다. 불교 경전에서 흔히 나오는 무량수나 불가설은 숫자의 개념을 벗어나버린 그런 단위이지만 항하사도 그에 못지 않게 대단히 큰 단위를 나타낼 때 쓰인단다. 그리고 항하사는 경전에 크고 많은 것을 비유할 때 자주 등장을 한다고도 함.
提 若 善男子 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리 약 선남자 선여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수보리야, 항하(恒河)에 있는 모래 수 만큼이나 많은 항하가 또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대단히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단지 여러 항하만 해도 오히려 무수히 많거늘 하물며 그 모래라면 어떠 하겠사옵니까!"
"수보리야, 내가 지금 진실한 말로서 너에게 이르노니, 어떤 선남선녀가 칠보로,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찰만하게 보시한다면 얻을 복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어떤 선남선녀가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四句偈)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해준다면 그 복덕은 앞서 칠보로 보시한 복덕보다 더 수승하리라."
강설
"수보리야, 항하(恒河)에 있는 모래 수 만큼이나 많은 항하가 또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대단히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단지 여러 항하만 해도 오히려 무수히 많거늘 하물며 그 모래라면 어떠 하겠사옵니까!"
항하는 장장 2511k에 이르는 긴 강으로 인도에서는 갠지스 강이라고 합니다. 희말리아 산맥에서 발원을 해서 벵골만으로 빠집니다. 예로부터 갠지스 강을 의지해서 문명과 많은 종교 사상이 발달해 왔습니다.
인도인 들은 갠지스 강을 매우 성스럽게 여겨 왔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도 갠지스 강을 따라서 설법을 많이 했습니다.
불교와도 인연이 깊은 갠지스 강은 모래가 가늘고 곱기로도 유명합니다.
이렇게 길고 큰 항하에 작은 모래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거기다 모래 숫자 만큼의 항하가 다시 있다면 그리고 그처럼 많은 항하 중에 있는 모래를 다시 합한다면 그 얼마나 많겠습니까?
참 많지 않겠습니까? 수보리존자도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수보리야, 내가 지금 진실한 말로서 너에게 이르노니, 어떤 선남선녀가 칠보로써,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찰만 하게보시한다면 얻을 복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四句偈)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해준다면 그 복덕은 앞서 칠보로 보시한 복덕보다 더 수승하리라."
삼천대천세계가 무엇을 뜻하는지 자주 언급을 했기 때문에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삼천대천세계는 끝없고 광대해서 영역을 알 수가 없는 불가사의한 중생들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런 삼천대천세계가 다시 저 모든 항하의 모래 숫자처럼 많이 있다고 하면 그 얼마나 넓고 크겠습니까.
여기에다 보배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보시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광대하고 어마어마한 보시행을 견주어 비유한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가장 으뜸 가는 보시행을 하는 것을 비유하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받는 과보는 과연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한 생각 아름다운 생각을 일으켜도 결코 헛되지 않는 것이고 가는 것이 있으면 오 는 것이 있는 것은 변함 없는 이치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복이란 허망하다 하면서도 실생활에서 참 중요하게 여기지 습니까? 어떻게 하면 남 보다 떳떳하고 인정을 받으면서 살까, 발버둥을 치지 습니까?
선량한 사람들은 복의 이치를 잘 배워서 "복이란 짓는 것이다. 하고" 복행을 닦게 되지만, 악한 사람들은 그런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필요하면 남의 복을 훔쳐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한술 더 뜨면 강제로 협박공갈을 해서라도 남의 재물이나 명성을 훔치려고 합니다.
복이란 훔쳐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 기어 다니는 뱀이나 쥐까지도 자기 복대로 영역이 있습니다. 복이 있으면 넓은 영역과 먹을 것이 많은 곳에 태어나기도 하고 좋은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 살피면 힘이나 다른 적응 능력도 일종의 복은 복입니다. 힘으로 살아가는 축생이 적응 능력이나 힘이 없다면 곤란하겠지요.
그러나 복이란 개념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힘이 쌔서 동물보다 우위에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지혜 덕 인연, 등 여러 가지가 결합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종합적으로 복이라는 언어를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공덕이란 용어를 사용해서 세속의 복과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악한 무리를 이루는 집단도 복이 남보다 수승한 자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복이 앞서는 사람들이 지혜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복이 미치지 못하면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간에서는 복이라는 것이 저 높은 하늘에서 내리거나 빌고 또 빌어서 생기는 것으로 알기도 하고, 아주 팔자로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에 처음 입문을 하면 복이라는 것은, 전생으로부터나, 또는 금생이라도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으로 알게 됩니다.
복은 빌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잘 쓰고 남을 이익 되게 해서 생긴 다는 말입니다.
남을 이익되게 한다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평생을 봉사했다고 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국민들의 안녕과 화합을 위해서 한 몸 희생을 했다면 어느 정도는 받아드려 지는 것이지만 무슨 주의나 정의 그리고 가치관을 구현하기 위해서 평생을 살았다면 말처럼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뜻을 희생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목적 보다는 가족이나 직장 그리고 수행처에서, 화합을 위해서 노력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한다면 조그만 보시행을 늘 실천을 히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어떤 목적이 강하게 생기면 옳다는 것을 실천하고 밀고 나가느라 자칫 화합을 해치게 되고 남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복이 생길까요.
주장이나 목적으로 대중의 화합을 해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부모나 스승을 공경하고 잘 받들어 배우며 거슬리지 않는 것도 큰 복이 됩니다. 이는 생명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아래 사람을 공경하고 무시하지 않는 것이 또한 큰 복전이 됩니다. 그리고 항상 마음을 온화하고 아름답게 쓰는 것이 또한 복전이 되는 것입니다.
또 평시에 사소한 약속이라도 잘 지키며 신용을 잃지 않는 것이 복전이 됩니다.
능숙 한 것을 개발해서 남을 이익되게 하면 복전이 됩니다.
대충 언급을 해 보았습니다만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그렇지만 복이라는 것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때로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를 옭아 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복이 많다 하지만 무엇을 견주어 많다 하겠습니까!
부잣집에서 기르는 개를 두고 "참, 저 개는 복도 많다." 하지만 복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정토삼부경에, 비유하건 데 인간계에서 더 할 바 없이 복이 많다고 해도 천상의 복에 비하면 거지와 왕의 차이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복도 극락세계의 복에 비하면 다시 왕과 거지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런 대도 사람들은 남보다 좀 더 복이 있을 것 같으면 교만방자 해지고 타락을 해서 다음에는 그만큼 고통 속에 헤매게 .된다는 것입니다.
간혹 복이 조금 있으면 영원할 줄 알고 정신을 못차리기도 합니다. 권력을 쥐거나 명예가 있는 분들이 한껏 탐닉하다가 그 과보를 몇 배 받는 거와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복이 없다 싶으면 상대와 비교를 해서 질시하거나 스스로 비관을 하기도 합니다.
수행을 하는 분들도 복이 적당하면 수행하기 좋으나 지나치면 오히려 수행의 장애가 됩니다.
자기의 행동과 생각에 집착을 일으키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받들기 때문에 자기의 원칙이나 법칙에 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재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때는 복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운 복도 본질은 허망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다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날아가는 화살이 힘이 다 하면 땅에 떨어지듯이.
그에 비하면 집착 없고 물들지 않으며 혼란하지 않는 무위복은 그 보다 뛰어나서 영원합니다.
금강경의 사구게를 받아 수지하고 남에게 설해 주는 공덕이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울 만한 보시행보다도 수승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일반 복은 생로병사를 바탕으로 흥망성쇠를 떠나지 못하는 복이고, 무위복은 생로병사를 초월해서 흥망성쇠에 걸림이 없는 것이니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은 좀더 깨어서 복을 짓는 이치도 알 뿐만 아니라, 수행정진을 하려는 기운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행정진도 좋지만 올바른 정진이 .무엇이며 정진의 목표를 바로 설정을 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똑같은 정진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해도 시작을 하는 바탕과 중간의 이해, 목표 설정이, 결과를 아주 상반되게 나타나게 합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한 정진인지, 아니면 일체의 번뇌망상을 여의려는 정진 인지, 신비한 능력을 보유하려는 정진인지, 더 좋은 과보를 바라는 정진인지, 기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실로 무엇이 진정한 정진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깊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원하는 마음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일생이 달라져 갑니다.
자 지금 자기의 깊은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그리고 무엇이 바른 정진일까요.
첫댓글 항하사 정회원으로 등업됨을 축하한다. 어제 백오리 피니쉬라인에서 들꽃의 표정에서는 여유를, 네 표정에서는 잠시나마 無念無我 읽었다면 나의 오버일까?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축하한다. 더욱 용맹정진하기를
아~ 어지러~ 다음에 다시한번 읽어봐야지...
아~ 눈알 빠져. 담에 일거야지. 호치는 항하사를 잘 받들어야 혀. 모임 왔다 갈 때 항하사가 책임지고 있쥐? 카오스를 컨보이가 챙기는 것 처럼.........
음.. 항하사가 그런 뜻이었구나. 나는 첨에 황하사 인줄 알았네(옛날 군대시절에 황하사가 있었거든..ㅎㅎ) 암튼 첫풀 완주 축하한다.
호치야 항하사랑 같이 들어오는 나한텐 읽은거 없니?...^^~~
항하사 ! 깊은 뜻이 있구나 ! 축하한다.. 그리고 호치의 따듯한 우정도 고맙고...
호치 잘 갔니? 항상 건강해라...가정에도 평안하길....
항하사 추운 날씨에 첫풀 완주 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한번만 발 들여 놓으면 인자 자동빵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