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성령 강림 대축일) 용서와 평화의 사도
어제오늘 미사 독서들에 나오는 가장 두드러지는 표징은 숨(요한 20,22)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꼭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기원하시고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2,22-23) 그 숨은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당신 모습에 따라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숨을 불어 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셨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창세 2,7) 다른 동물과 식물은 그저 말씀만으로 만드셨지만, 사람만은 당신의 숨을 불어 넣어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 숨은 진흙 인형이 사람이 되게 하고, 사람이 하느님처럼 일하게 하는 원동력 같은 것이다. 사람을 그렇게 특별하게 만드신 것은 세상을 당신처럼 다스리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창세 1,26.28)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숨을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시며 이제는 용서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용서와 평화는 쌍둥이라고 한다. 어리석은 몇몇 정치 지도자들이 힘으로 평화를 이루려고 하니 늘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세상이 평화를 잃어버린 건 그 어리석은 몇몇 지도자들 탓만은 아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를 하느님께 되돌아오게 하시려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느님의 그 간절한 바람을 전하셨다. 그분은 용서와 평화라는 대서사(大敍事)를 이 땅에 만들어 남겨 주시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셨다. 그분은 청하는 모든 이, 용서를 청해야 하는 줄도 모르는 이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불의한 죽임을 당해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청하셨다.
우리가 성령님을 모신다는 건 바로 이 예수님의 삶, 그분이 만들어 남겨 주신 용서와 평화의 그 대서사를 그 열한 제자들처럼 기억하게 됐다는 거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람을 처음 만드실 때 바라셨던 그 모습의 사람이다. 바로 그분의 영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 개인 안에서 살아계시면서 우리를 이끄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 용서! 이 세상에서 가장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행위다. 그래서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 하느님과 함께 살 때에는, 에덴동산에서는 평화만 있고 용서라는 건 없었을 거다. 하느님에게 멀어진 지금 우리에게는 평화를 위해서 용서가 필요하게 됐다.
세례성사로 우리 옛 인간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죽은 옛 인간을 자꾸 소환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에나 나오는 좀비처럼 산 것도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줄 잘 알면서도 자꾸 옛 인간으로, 다투고, 오해하고, 미워하고, 또 그러면 반드시 후회할 줄 알면서도 기어코 복수를 저지르고 마는 그런 비참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다. 참 불쌍하다. 그런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큰 위로가 된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13)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이 모든 걸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신다. 그래서 용서와 평화의 사도인 우리는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하느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다스린다.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104,30)
예수님, 제 안에 주님의 영이 살아계시며 저를 이끌고 계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루 종일 주님 생각만 하며 살 수는 없어도 홀로 있는 시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긴 숨을 내쉬고 더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주님 뜻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하고 제 의지를 주님께 드립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이시니 제가 성령님께 순종하게 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