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작가 ; 찰스 디킨스
초판년도 ; 1860
줄거리
핍의 매부는 대장장이이다. 영국에서 대장장이는 가장 흔하고 멸시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였는데 매부의 밑에서 핍은 견습공이 되어 매부와 마찬가지로 대장장이가 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치 않게 찾아온 어느 노파와의 만남은 핍의 가치관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게 되고 만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노파의 수양딸인 에스텔러의 아름다움에 미혹되었다고 할까. 핍의 저능한 교육수준과 가여운 지위와 재산, 핍이 지닌 모든 처량한 소유물과 정반대의 것을 소유하는 에스텔러에게 말이다.
핍은 에스텔러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자신을 천히 여기는 그녀 인하여 처지를 비관하며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핍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 모든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예기치 못한 전언을 변호사 제이거스씨에게 듣게 된다. 핍은 사고로 부상당한 누나와 자신의 스승이자 누나의 간병인인 비디와 정중한 작별을 고한다. 또 정겨운 매부이자 자신의 유일한 벗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모든 현실을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 집을 나선다.
유산을 온전히 상속받기 위해 핍이 만족시켜야 하는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바로 신사가 되는 점이였는데 핍은 적극적으로 가르침을 받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핍이 신사가 되려는 이유는 막대한 유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에스텔러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서인지 아리송하다. 분명한 것은 핍은 에스텔러의 사랑을 재산보다는 끔찍히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사가 되려는 핍에게 유산은 에스텔러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일뿐이 아니였을까. 그렇다고해서 그 유산을 경시한다는 뜻은 분명히 아니다. 신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기 위해선 그만한 돈이 필요할 뿐더러 에스텔러의 걸맞는 남자가 되기 위해선 신사의 지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재산 또한 필수불가결하다고 분명히 핍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핍이 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신사의 기준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그 해답은 책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면 신사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핍과 핍에게 유산을 주려는 사람이 고려하는 신사란 자신의 열등한 모습에 부과한 허상아니었을까. 각설하고 핍은 신사가 되기 위한 과정 중 절친이 된 허버트와 조력자이자 조언자 웨믹을 만나고 자신의 임무를 부지헌히 수행한다.
시간이 점점 흘러, 어리숙한 꼬마였던 10대가 지나고 핍은 어느 덧 23살이 되었다. 하지만 유산을 약속한 그(A씨라고 하자.)에게 어떠한 연락은 오지 않고 늘어가는 빚과 근심은 핍을 지치게 한다. 어찌 보면 핍의 상황은 굉장히 큰 도박이다. 어떠한 정보도 전혀 알 수 없는 A씨와 그 협력자 제이거스씨의 말만 믿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의지한 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큰 용기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A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겨 자칫 그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된다면 주인공이 보낸 지난 세월과 빚들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물론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시간동안 자기개발과 수양에 힘썼겠지만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재산 앞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핍은 단지 재산때문에 신사가 되는 길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물질적인 가치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에스텔러의 사랑을 간절히 열망하고 있었다.
드디어 핍은 A씨와 대면한다. A씨는 도대체 누구일까. 바로 핍이 어렸을 적 먹을거리를 가져다준 바로 그 탈옥수다. 이 얼마나 기막힌 우연인가. 그 탈옥수는 자신이 아사로 사경을 헤맸을 당시 자신에게 다시 심장을 불어넣어준 소중한 은인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탈옥수는 비천했던 자신의 행로를 증오하며 자신의 후계자는 꼭 문명의 교육을 받게끔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핍은 자신의 후원자가 종신형이 선고된 탈옥수란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기대했던 정반대의 후원자의 모습에 망연자실한 그는 매부와 가족들을 부끄럽게 여기고 외면했던 지난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에스텔러가 아주 보잘것 없고 우둔하고 어리석은 상대와 결혼을 결심했단 소식을 듣고 절망과 한탄에 빠지게 된다. 핍은 에스텔러에게 절실한 자신의 사랑을 보이며 결혼을 파기하라며 회유해보지만 에스텔러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에스텔러가 도대체 왜 대책없이 결혼을 선택한 것일까. 핍을 불행하게 하려는 노파의 강요이었던가. 결국 핍은 에스텔러의 행복을 진심으로 빈 채 마지막 안녕을 고한다. 진정한 사랑은 비록 이별했을 지라도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줘야 했다고 하던가. 핍은 신사였다. 에스텔러를 향한 핍의 애틋한 연모는 정말 신사였다.
노파와 말과 조언자 웨릭씨의 말을 종합하고 여러 정황을 면밀히 추측한 끝에 핍은 에스텔러의 아버지가 자신의 후원자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점점 시련을 딛고 성숙해져가는 핍의 모습은 자신의 후원자의 앙상한 손을 잡으며 감격적인 내면의 외침을 울부짖을 때 절실히 드러났다. 후원자의 해외도피를 계획하였지만 결국 경찰에게 붙잡혀 후원자는 사형선고만을 기다리게 된다. 핍은 자신의 모든 정성을 다해 후원자를 간호하였지만 운명은 거스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핍은 자신의 후원자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새롭게 바뀔 수 있었을까. 증오는 연민으로, 의심은 고마움으로 바뀌면서 그를 보호해야겠다는 책임감이 핍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일까. 혹시 후원자가 에스텔러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핍의 감정에 큰 영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핍은 후원자가 죽고 세상 모든 것을 단념한 듯, 몇날 며칠을 앓아 누웠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 핍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자신의 온 몸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손길을 바로 자신의 매부였다. 핍은 눈물을 흘리며 매부를 부끄러워했던 지난 날을 참회하게 된다.
첫댓글 **찰스 디킨스의 풍자적 해학과 휴머니즘이 가장 탁월하게 구현된 '위대한 유산'은 주인공 핍이 시골 대장간 심부름꾼으로 생활하던 소년 시절, 런던에서의 신사 생활, 은인을 만나고 격정의 세계를 경험한 뒤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기까지의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디킨스가 말하는 신사는 동양의 선비와 닮아 있다. 책을 열심히 읽어 교양을 갖추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그를 통해 부지런히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신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디킨스는 허버트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진정한 신사가 아닌 사람이 행동에 있어서 진정한 신사가 된 적은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왁스칠도 나뭇결을 가릴 수 없으며, 우리가 왁스칠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나뭇결이 더욱 더 잘 드러나게 마련이다.” 강이 자기 본래의 깊이를 가지고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자신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사람의 깊이는 마음의 수양에 비례하며, 깊이가 깊을수록 신사의 품격은 커진다.
이 소설은 핍이라는 주인공이 과거를 반추해 자신의 성장 과정을 그리는 성장소설의 틀을 따른다. 핍은 평민 태생의 고아로서, 시골 대장장이인 매부와 누나의 집에서 성장한다. 자아의식이 강한 핍은 그 마을의 가장 대표적인 신사 계층 집안인 미스 해비셤의 집에서 그 계층을 상징하는 듯한 차가운 소녀 에스텔라를 보고 첫눈에 매료된다. 그녀를 흠모하던 그는 출처도 모르는 유산을 받기로 하고, 그 유산으로 런던에서 신사 교육을 받는다. 신사 계층의 허세와 사치로 무위도식하던 그에게 실제 유산을 물려준 사람이 자신이 생각했던 미스 해비셤이 아니라, 어린 시절 한 번 도와준 적이 있던 죄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통렬한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죄수 매그위치를 몸서리치게 혐오하던 핍은 신사가 되기 위해 매부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자신보다 매그위치가 훨씬 훌륭한 인간임을 깨달으며, 사형되는 죄수에게 최후까지 인간적 충절을 지키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디킨스는 유산상속이라는 물리적 조건과 함께 가능해진 핍의 신사로서의 삶의 실상을 통해 신사 계층의 무위도식성과 신분 차별적 의식구조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디킨스가 작품 활동을 한 빅토리아 시기는 부르주아지 계급이 성장하던 시기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산업 발달이 눈부신 시기이다.
문학에서도 낭만주의에서 시작하여 삶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사실주의로 흘러갔다. 디킨스와 ‘허영의 시장’을 쓴 새커리가 대표적이다. 산업발달에서 유래한 빈민굴, 가난한 자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낭만주의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